메-슈사마와 성경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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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109회 작성일 24-02-23 17:27본문
메-슈사마와 성경30
〔메-슈사마〕
나는 이전에, 프랑스의 유명한 근대 철학자인 앙리 베르그송씨에 대하여 쓴 일이 있으나, 이번에 재차 써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붓을 든 것이다. 그것은, 흔히 나에게 여러 가지 일을 묻는다든지, 또 내가 이야기를 할 경우, 그 의미를 간단히 이해하는 사람은 매우 적고, 사항에 따라서는 실로 간단하며 알 수 있을 듯하지만, 좀처럼 알지 못한다. 묻는 사람은 상당한 교양이 있으면서 수긍하지 않으므로, 나는 여러 가지 예를 들어서, 정확하게 열거하면 겨우 알게 된다. 그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베르그송의 철학이다.
어찌하여, 간단한 일을 그렇게도 알지 못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베르그송의 소위 찰나의 나가 되지 않기 때문이며, 물론 그것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설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물정을 알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사실을 듣는다든가, 전설이나 기성 학문을 주입하게 된다든가 하기 때문에, 제구실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에는, 그것이 막대기와 같은 것이 되어 마음속에 만들어진다. 때문에 막대기 이외의 설을 들어도, 그 막대기가 방해를 해서 상념 속에 그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때문에 상념 속이 비어 있으면 고통도 없이 들어가므로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백지가 되라고 하는 말을 하는데, 실로 말 그대로다. 그렇지만 막대기 같은 것에 생각이 미치는 자는 거의 없는 모양이다. 때문에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지금부터라도 찰나의 나로 될 일이다. 찰나의 나란, 사물을 보거나 듣거나 하는 때, 순간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전혀 막대기가 방해를 할 틈이 없는, 마치 어린아이같이 한다. 흔히 어린아이가 어른의 말을 듣고 되받아하는 말에 감탄하는 일이 흔히 있으나, 전혀 막대기의 방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그는 또, 직관의 철학이라고도 말하였다. 이 의미도, 왜곡하지 말고 똑바로 사물을 보라, 그것이 바르게 보는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며, 찰나의 나에 부수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의 철학에는, 만물유전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도 제법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만유일체는 일순의 정체도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며, 예를 들면 작년과 금년과는 모두가 어딘가 달라져 있다. 세계도 사회도 마찬가지이며, 자기 자신의 상념도 환경도 그러하다. 아니 어제의 나와 5분 전의 나와는 반드시 달라져 있는 곳이 있다. 그렇다면 옛날부터 말하는 한 치 앞은 어두움이라고 하는 말도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이 무엇이든지 일 초의 정지도 없이 유전하고 멈추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치를 인간에게 적용할 때에, 이러한 일이 될 것이다. 어떤 일에 부딪쳤을 때에, 작년에 본 방식이나 사고방식도, 지금의 그것과 달라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크게 본다면 종전 전과 종전 후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지 않는가. 얼마 되지 않는 사이에 경이적으로 달라졌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몇 백 년 전에 하던 식이나, 몇 십 년 전의 사고방식이, 조상 대대로부터 막대기와 같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현재를 파악할 수가 없다. 이것을 칭하여 봉건적이라든가, 낡은 머리라든가 하는 것일 것이다. 결국 일체가 유전하고 있는데, 자기만은 흙탕물처럼 정체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외면당하거나, 불행한 운명으로 되는 것이다.
(1951년7월18일「재차 베르그송에 대하여」)
〔성경〕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송축하리로다. 그분은 그의 풍성하신 자비하심을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갖게 하셨으며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잔하지 않는 유업을 간직해 두셨으니
너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내려고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잠시 슬퍼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크게 기뻐하는 것은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써 단련될 지라도 없어져 버리는 금보다 훨씬 더 귀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그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며, 지금도 그를 보지 못하나 믿고 있으며, 또 말할 수 없이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으로 즐거워하나니
이는 너희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음이니라.
이 구원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관하여 예언한 선지자들이 열심히 조사하고 살펴보던 것이며,
그들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다가올 영광을 미리 증거하실 때, 그 영이 무엇을, 또 어떤 시기를 지시하시는지 탐구하던 것이니라.
그들이 행한 사역들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임이 그들에게 계시되었고 이것이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으로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이제 전해졌으며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생각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끝까지 바라라.
순종하는 자녀들로서, 이전에 무지하던 때의 정욕에 너희 자신을 맞추지 말고
오히려 너희를 부르신 그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하라.
이는 기록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시기 때문이니라.
또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판단하시는 분을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다면 너희의 이곳 나그네 시절을 두려움 속에서 지내라.
이는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너희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이어받은 너희의 허망한 행실에서 은이나 금 같은 썩어질 젓들로 구속된 것이 아니라,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는 실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에 미리 정해지셨으나 너희를 위하여 이 마지막 때에 나타나셨으며
너희는 그를 통하여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고 그에게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니 이는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 안에 있게 하려는 것이라.
너희가 성령을 통하여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너희 혼들을 정결케 하여 가식 없는 형제 사랑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져도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아 있음이라. 이것이 너희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악의와 모근 속임수와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로서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가 그것으로 인하여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게 함으로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느니라.
사람들로부터는 정녕 버림받았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귀중한 산 돌이신 그분께 나아와서
너희도 산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영적인 제물들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느니라.
(「베드로전서」 제1장 3절~제2장 5절)
『글로리』 No.31, 2022/8월호 게재
※성경출전 :『한글킹제임즈성경』(말씀보존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