쿄-슈사마와 마사아끼사마 ~메-슈사마의 마음을 받아서~ 22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조회178회 작성일 23-05-31 16:03본문
쿄-슈사마와 마사아끼사마 ~메-슈사마의 마음을 받아서~ 22
「신이시여, 선악의 나뉘어짐은 당신의 은혜입니다」
《메-슈사마》
관세음보살은 선악무차별적인 구제였지만, 드디어 지상천국이 목전에 다가온 오늘날, 여기서 선악을 나누어 선을 기르고 악을 멸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른바 악의 최후인 것이다. 따라서 구원의 힘도 결정적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그 힘이야말로 메시아가 떨치시는 대신력인 것이다.
아아, 경하할 시기가 된 것이다.
(1950년2월4일 「개교사 세계메시아교 탄생에 대하여」)
《쿄-슈사마》
명주님께서는 「개교사 세계메시아교 탄생에 대하여」 중에서, 「선악을 나누어 선을 기르고 악을 멸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른바 악의 최후인 것이다. 따라서 구원의 힘도 결정적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그 힘이야말로 메시아가 떨치시는 대신력인 것이다. 아아, 경하할 시기가 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나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신께 배반하고 있었는지 어떤지를 알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대단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신께 배반하는 모습이었다는 것, 자신 안에 회개해야 할 죄가 있었던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를 점점 진실에 다가가게 해주고 계시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진실에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회개해야 하는 죄 많은 인간이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요.
(2020년2월5일 「세계메시아교 전국포교구장회」)
《마사아끼사마》
보고 중에 「아직 출발지점에도 서있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명주님께서는 메시아강탄 때, 메시아는 「킹 오브 킹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킹」은 왕관을 받지요.
마라톤에서 승자는 관과 비슷한 것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우리도 사실은 레이스를 해야 합니다. 최종적으로 왕이 되어 관을 받기에 이르는 레이스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출발지점 앞에서 함께 달리는 동료들과 「서로 힘드네요」 「앞으로 힘들겠네요」 라는 것과 같이 단지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에만 시간을 소비하거나, 혹은 출발해서도 손이라도 잡고 「같이 달려 가보자」 라는 식으로 이리저리 빌빌거리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승점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달리는 것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왕관, 생명의 정상에 향한다는 것은 힘든 길입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사이좋게 가고 있어서는 전혀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것은 목숨을 건 레이스이니까요.
달리는 마라톤도 힘들죠.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힘든 레이스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말하면,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여유 따위 우리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자신이 신께서 준비해 주신 최고의 영예인 왕관, 킹 오브 킹스 라고 하신 신의 생명의 왕관을 받고 있다, 라는 것으로 달릴 것인가 어떤가, 그 뿐인 것입니다.
자신이 「달리겠다」고 했을 때, 「아니, 나는 그 레이스는 하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나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에 신경을 쓸 여유 따위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그 레이스를 펼쳐야 할 때가 왔습니다. 왔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이 옆 사람과 함께 달리고 싶다」라든가, 「레이스 전의 준비가 중요하니까」 라든가 하면서 계속 연기시키고 온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그리고 사실은 그 영광스러운 왕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약속되어 있습니다. 갈 길이 어떤 길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 길은 달리지 않겠다」라고 말하고 있거나, 「달리기 전에는 이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벗어 던지고, 자신 혼자이더라도 어떤 일이 있더라고 끝까지 달리겠다고 생각하는가 어떤가입니다.
필사적으로 달리고 달리며, 그리고 문득 돌아봤을 때, 당신 마음에 공명한 사람들이나 동지들이 함께 달려오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도 본래 상관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왕관을 어떻게 해서든 받고 싶다고 생각하는가 어떤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러면 선악의 나뉘어짐인 것으로 출발지점에 두고 온 사람들은 어떻게 되어 버릴까, 평생 구원되지 않을 것일까 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신의 「약속된 레이스를 달려라」라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신께 등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의해서 나중에 「회개할 수 있다」라는 크나큰 은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까요.
신께 배반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사실은. 왜냐하면 그것에 의해서 언젠가 회개하고 정말로 신을 만난다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우리가 걱정할 입장이 아닙니다.
어쨌든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가, 그것뿐입니다. 만약 그 길을 나아가겠다고 결정한다면 그 길을, 설령 자기 혼자이더라도 곧장 왕관을 향해서 달리는 것입니다.
그런 흔들림 없는 마음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이 주변에게 파급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메시아교는 지금 바로 과도기이지요. 지금까지의 신앙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들을 신경 쓰고 있으면 아무리 지나도 출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만이라도 라는 마음으로 출발해서, 그리고 생명의 왕관을 받음에 이르는 레이스를 하고 있는 모습에 공명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 그 분들과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20년10월1일 「교주님 면회(이사·교구장)」)
『글로리』 No.25, 2022/2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