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께서는 알고 계신다」마사아끼사마 메시지 NO. 8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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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128회 작성일 21-11-23 10:55본문
마사아끼사마 메시지
NO. 8
「신께서는 알고 계신다」
2021년 9월
명주님께서는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신앙이 있습니다.
그렇다면「낡은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낡은」것이 뭔지를 모르면, 뭐가「새로운」것인가는 알 수 없습니다.
명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라든가“이런 행을 해야만 한다.”라고 하는데, 그런 도리를 설하고 선한 마음을 갖는 것은, 사실은 종교보다 아래인 것입니다. 즉, 도덕 입니다.
「강화」1953년 2월 15일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대체로 종교라는 것은 종조의 가르침입니다. 인간은 좋은 일을 해야 한다,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부모에게 효행을 다할 것, 물건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라는 건 하나의 도덕입니다. 하지만 그저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강화」 1953년 7월 27일
명주님께서는「이런 마음을 가져라」「이런 것을 실천 하거라.」「선행을 하거라.」라는 것은, 명주님께서 하시고 싶은 일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명주님께서는 그러한 것은 그저 도덕이며, 종교보다 아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명주님께서는, 도덕이 아니라 종교를 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긴 시간「무슨 일이든 감사하시오」「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이런 일을 실천하시오」「실천이 중요하다」「이타애 실천을 하시오」「선행을 하시오」라고 말해 온 것이 아닐까요? 아닙니까?
그리고 긴 시간, 명주님께서 바라고 계신 것, 또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 것은, 이런 것이라고 굳게 믿어 온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확실하게, 이러한 것은 그저 도덕이며, 당신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명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십니다.
인간은 신을 인정하고, 신께서 환히 들여다보신다는 것을 알면 그것으로 좋은 것입니다. 다른 일은 그다지 필요 없습니다. 그것을 까다롭게“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안됩니다. 중요한 신이 있다」라는 것을 외치는 사람은 정말로 없습니다.
「강화」1954년 2월 27일
이것이 명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 말씀과 반대로, 우리는 계속「실천, 실천」「감사, 감사」라고 말해 온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어째서 우리는, 명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바로 정면으로 받아들여 오지 않았을까요?
이런 성언이 쭉 우리 눈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우리는 그것을 오늘날까지 계속 무시해 온 것일까요?
답은 명백합니다. 그것은, 우리는 신께 마음을 향하는 것보다, 이 인간의 세계를 중시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실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보다 더 낫다」「나는 배려가 있으니까 저 사람보다 더 낫다」「나는 저 사람보다 신께 더 진심으로 봉사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만큼 신앙실천을 하고 있는가, 얼마만큼 이타애가 있는가. 라는 것에 가치를 두고, 그것에 의해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과 겨루면서「저 사람은 저 정도로 진심으로 신앙실천을 하고 있으니, 신과 명주님 마음에 맞는 삶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저 사람은 이타애가 넘치며 무슨 일이든 감사를 하고 있으니, 명주님 마음에 맞다」라는 것을 말해 온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신과 명주님, 또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좋은 인간인가를 증명한들,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명주님께서는, 우리가 신이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그리고 신께서 모든 것을 환히 들여 다 보신다는 것을 알면, 그저 그것만으로 좋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마음 속 깊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 모든 것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위 사람들과 신께 숨기고 싶어 하는 추한 마음조차도,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신께 숨길 수 있는 것은 무엇 하나 없습니다. 신의 빛은, 이미 우리 마음속 깊은 곳까지 도달하여, 숨기고 있는 모든 일, 모든 비밀은, 이미 신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포기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신 앞에 알몸이 되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신에게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사명은 괴로워하고 있는 분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명주님께서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요?
그럼 그「괴로워하고 있는 분들」이란 누구인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입니다. 「선한 일은커녕 어처구니없는 짓을 해 버렸다」「타인을 사랑하기는커녕, 증오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해 버렸다」「나는 구원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선행도 이타애 실천도 안 됩니다.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조차 안 됩니다」
우리가 구원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런 마음, 이런 모습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커녕,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을 자신의 향상만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는 추한 목소리, 구원될 수 없는 모습을 떨쳐버리고 싶고, 무시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구원이나 우리 안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향상을 위해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얼마나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명주님께서는 남을 천국으로 구원하려면 먼저 천국으로 올라가거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은 하지 않고「천국 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실천을 해야만 한다.」「천국으로 맞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선행을 많이 해야만 한다.」「적어도 선행을 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라는 것을, 지금도 역시 말하고 있습니다.
노력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 도대체 우리는 언제가 되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천국으로 되돌아갈까요? 우리는「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천국으로 되돌아갈 시기를 뒤로 늦추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명주님께서 먼저 천국으로 올라가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아니면 여러분 중에「나는 죄를 범한 적은 한 번도 없다」「모든 사람을 전혀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사랑해 왔다」
「선행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나는 항상 무슨 일이든 감사해 왔다」「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거나 나쁘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진심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분 계 십니까?
확실히 말씀드려서, 저는 그런 분은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노력해야만 한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절대로 그런 존재로는 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노력해야만 한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위선에 가득 찬 모습입니까?
우리는 신께, 선행 등은 일절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신의 용서를 지금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에베소서」 제 2장 8~9절)
우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해서, 자신이 타인보다도 나은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하지 않을까요? 「행위」를 자랑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는「행위」를 할 능력, 힘이 있다. 라고 말할 건가요? 신의 도움없이「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라고 말할 건가요?
이제는 전 세계, 전 인류를 구하는 때가 온 것입니다.
그 구원되어야 하는 분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입니다. 오늘날까지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존재로 해 두고 싶었던, 우리 안에 있는 구원될 수 없는 마음, 그것을 우리는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
새로운 신앙과 함께, 새로운 세계는 이미 도래한 것입니다.
행위와 인간의 노력으로 상징되는 낡은 신앙으로 되돌아가서는 안됩니다. 신의 이타애를 인간의 이타애로 하고, 마치 인간에게는 이타애를 실천할 힘이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이미 구원되어 새로운 세계로 인도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시해 온, 우리 안에 틀림없이 존재하는 소리 없는 목소리에 구원을 가져오지 않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명주님께서 그리고 지금 교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새로운 신앙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