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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엄은 사랑」마사아끼사마 성언 2024년 8월 4일 세계메시아교 조령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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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73회 작성일 24-10-1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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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메시아교 조령대제마사아끼사마 성언

202484

 

준엄은 사랑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난 7월 초순, 쿄-슈사마를 대리하는 대행으로서, 그리고 여러분과 하나라는 마음으로 아프리카 앙골라에 가서 메-슈사마 성지의 지진제. 성별식(聖別式)을 거행했습니다. 성별식이라는 것은,성스러움()에 나누다이기 때문에여기는 성스러운 장소입니다」「여기부터 여기의 구획은 성스러운 장소입니다라고 정하는, 그러한 기도를 올리고 왔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지구상에 있어서, 메-슈사마께 있어서 유일한 성지, 이것이 아프리카에 생겨난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면아니, 세계구세교는 성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면, 오랜 세월 세계구세교에서는 그 규칙과 교칙에, 쿄-슈사마께서는 신자통합의 상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계구세교규칙교칙5조 제2).

  그렇다는 것은 세계구세교에 있어서는, 쿄-슈사마라는 존재가 전 신도를 쿄-슈사마께서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며, 세계구세교는 그 쿄-슈사마를 쫓아냈습니다. , 전 신도를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세계구세교에서는 오랜 세월, 쿄-슈사마께서는 교조의 성업을 계승하는, 메-슈사마의 성업을 계승하는 입장이라고 정해져 있습니다(세계구세교규칙교칙5조 제1).

  메-슈사마의 다른 교단은 몰라도 적어도 세계구세교에 있어서는현계의 메-슈사마는 쿄-슈사마다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세계구세교는 쿄-슈사마를 쫓아냄으로써, 자신들의 전 신도와 메-슈사마를 쫓아낸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장소에 성지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세계구세교와 연결된 태국과 브라질에 있는 교단도 쿄-슈사마를 쫓아낸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교단들도 자신들의 전 신도와 메-슈사마를 쫓아낸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 교단들빈 껍데기입니다. 메-슈사마와 일절 관계없는 교단. 그런 교단은 메-슈사마의 성지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아프리카 성지가 생기기 전에는, 메시아교든 구세교든 상관없이 전 세계에 메-슈사마께 있어서의 성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그것이 이번에, 지난 달 202477일 인류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아프리카에 메-슈사마의 성지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기쁜 일입니다.

  여담입니다만, 그 지진제·성별식이 거행된 77일 그날 밤입니다. 저는 앙골라의 르완다(수도)라는 곳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호텔 방에서 제가 생각한 것은, 설령 오늘 내가 죽어도(일동웃), 이 지구상에 메-슈사마의 성지를 만드는 신업에 쓰임받았다는 것만으로, 그 영광스러운 신업에 관여한 그 자긍심만으로, 설령 지금 죽어도 후회가 없다, 이런 구제받기 어려운 내가 이런 일에 쓰임받은 것만으로도, 이제 죽어도 후회없다 라고 하는 그런 이상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 결국 그날은 죽지 않았습니다만(일동웃).

  덧붙여서, 오늘도 나오기 전에 복장을 갖추고 있는데, 이 구두(마사아끼님, 자신의 구두를 가르키심)를 신었을 때에(똑같은 두로 지진제·성별식에 임했습니다)- , 흙의 성지를 밟은 구두구나 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렇듯, 이 성지가 생긴 것은 대단히 기쁜 일입니다.

  그 77일이 있었고, 다음날 78일은 주로 앙골라에서 아프리카 전역의 이사, 교구장, 전종자 분들과의 면회가 있었습니다. 앙골라에서의 활동 상황이라든가,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서의 활동 상황 등을 듣고, 그리고 저도 조금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떤 것을 전하면 좋을까 하며, 저는 아프리카에 성지가 탄생기쁨을 아프리카 신도의 대표인 아프리카 전종자 분들과 나눈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면서 그 자리에 임했습니다.

  먼저 처음에 1시간인가 2시간 정도 여러 보고를 듣고, 그리고 제가 이야기를 하게 되어, 기쁨을 나누고자 이야기를 시작했는,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니 사전에는 계획하지 않았습니다만, 그 때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그 자리에서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우리 전체에게 있어서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여, 오늘 그 일부를 여러분께 전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아프리카에 성지가 생겼다, 이것은 메-슈사마 신도에게 있어서 유일한 성지이며, 그것 자체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우리는교단 정화가 있어서 소위 옛날에 우리가 성지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나와야만 했지만, 이번에 메시아교로서 성지를 만들게 되었다라는 그런 막연한 이미지가 있는데, 제가 생각한 것은 그런 교단 정화가 어떻다든가는 제쳐두고, 서두에서말했듯이 현재 메시아교든 구세교든 이제는 성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됐냐면, 실은 메-슈사마에 대한 우리의 마음, 메-슈사마에 대한 신앙 방식, 혹은 우리가 성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취급하고 있었는지, 이런 것들을 메-슈사마께서 보시고 메-슈사마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사성지를 메-슈사마께 빼앗긴 것입니다. 저는 아프리카에서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뭔가 이렇게, 교단 정화가 어떻다든가, 세계구세교가 어떻다든가, 그런 외적 요인에 의해 성지를 떠나야만 했고 성지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사실은 우리의 메-슈사마 신, 우리의 성지를 대하는 방법, 사고방식, 파악하는 방법, 이것이 메-슈사마께서 보셨을 때너희는 성지를 갖기에 적합한 존재가 니다라고 메-슈사마께서 생각하셨기 때문에, 메-슈사마께서는 당신신도로부터 성지를 몰수하신, 빼앗아 가신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메-슈사마께서는 성지를 무엇 때문에 만드셨는가? 이것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인류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기억해 내기 위해서입니다.

  신과 천국은 여기(마사아끼님, 미간의 천정(天庭)을 가리키심)입니다. 여기(마사아끼님, 가슴 부근을 가리키심)가 아니라, (미간의 천정을 가리키심)입니다.

  미간 부분이 천국이자 신께서 계신 곳. 가슴 부분이 아닙니다. 가슴 부분은 마음이고, 조상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이 천국이라는, 너희 안에 있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가장 아름다운 세계를 기억해 내기를 바란다 라는 것 때문에 메-슈사마께서는 성지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메-슈사마 승천 후의 우리의 발걸음은, 영의 몸이나 천국보다도 조레이로 병이 낫느냐 안 낫느냐, 내 몸이 건강한지 어떤, 그것뿐이었습니다.

  아니, 확실히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신이나 천국을 떠올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줄곧 기적을 원한다, 기적을 원한다, 기적을 원한다, 세상에서의 기적을 원한다 하며 걸어왔습니다.

  성지에 대해서도, 메-슈사마께서 말씀하신성지에만 가면 된다라는 것은, 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천국을 느껴라 라는 것인데, 우리는 이 눈에 보이는 세계밖에 모르기 때문에, 성지는 대단한 곳입니다, 조레이는 대단합니다, 병이 낫습니다 라는 것만 말해 온 것입니다.

  그 발걸음 자체가 메-슈사마께서 보시기에 너희들 전원, 도저히 내 이름을 붙인 성지를 보유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성지를 뺏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렇게 메-슈사마께서 정하셨기 문에, 그래서 메-슈사마께서는 교단 정화를 일으키시고 여러 분규를 통해 전 신도로부터 성지를 몰수하셨습니다.

  게다가 갑자기 몰수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몇 년 전부터 메-슈사마께서는 쿄-슈사마를 통해 눈에 보이는 성지보다 더 중요한 장소가 있다, 천국이 있다 라는 것을 전해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메-슈사마께서는 쿄-슈사마를 통해 이른바 우리에게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경고에 대해서도 전혀 들을 의사가 없지 았나요? 이것은 누구를 탓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러지 않았나, 이 세상을 주체로 한 삶의 방식이었지 않았나, 그것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계가 와서, 메-슈사마로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하시고, 이번 교단 정화를 일으키시고 그리고 우리의 손에서 성지를 빼앗아 버리셨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세계메시아교 여러분은 교단 정화 때, 눈에 보이는 성지, 눈에 보이는 교회라든가, 여러 가지 그런 눈에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만, 그런 것보다도, 메-슈사마께서 쿄-슈사마를 통해 전하려 하시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가 그것에 진실, 진리가 있지 않은가 라고 해서 일어서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지금 아프리카의 일이나 메시아 성당의 일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좋았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결코 그런 것은 아니지만, 메-슈사마로서는 만약 너희가 그렇게 내가 성지에 담은 마음을 정말로 구한다면, 다시 눈에 보이는 성지라는 것에 관여해도 좋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

  메-슈사마께서는 교단 정화를 통해 메-슈사마와 관련된 전 신도의 으로부터 성지를 몰수하셨습니다. 빼앗으셨습니다. 메-슈사마께서신과 힘을 합치면 뭐든지 간단히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되면 그때 메-슈사마께서는 성지라는 것을 천상에서 가지고 계신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의 변천 속에서, 우리의 신앙 자세를 보시고, 메-슈사마께서는, 나의 성지에 담은 목적을 잃지 않는다면 눈에 보이는 성지를 관리하는 신업에 또 쓰임받아도 좋다 라고 해서, 한 번은 이 지구상에서 메-슈사마 이름을 붙인 성지는 모두 몰수하셨지만, 쿄-슈사마의 부단의 노력과 또 쿄-슈사마 안에서 메-슈사마께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여러분의 신앙 자세를 보시고, 렇다면 좋다 라고 해 주시고, 그리고 메-슈사마께서는 어디를 선택하셨느냐 하면 이른바 인류의 발상지로 불리는 아프리카에 다시 당신의 성지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아프리카가 되었다는 것에는 물론 신의 깊은 계획이 있다고 각하며, 분명 이것에 대해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 성지가 생겼다, 흙의 성지가 생겼다, 분명 이것은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메-슈사마께서는 당신께서 태어나신 나라인 일본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성지를 하부하심에 있어 그 최초의 나라라고 할까요, 장소로서 일본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일본인인 저, 일본에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메-슈사마께서 보시기에 일본 신도들의 신앙보다 아프리카 신도들의 신앙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메-슈사마께서는 아프리카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당연히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일본은 메-슈사마로부터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정화가 일어나고 우리는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만약 우리의 마음과 메-슈사마 마음이 정말로 맞았으면 이제 곧 일에 주십니다. 내려주십니다. 성지를.

  하지만 메-슈사마께서 보시면 결국 신앙의 순수성입니다. 이 신앙순수성이 일본의 우리들이 바치고 있는 것보다도 아프리카 신도가 바치고 있는 것이 더 훌륭하다고, 그렇게 메-슈사마께서는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본에 있는 우리로서는 억울해 해야 할 일입니다. 억울해 해야 할 일이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메-슈사마께서는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을 구하고 계시는 걸까요? 이 세상에서 바쁘게 움직여서 메-슈사마께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 메-슈사마의 사상이, 와 훌륭하네요 가 되거나, 오카다 모키치라는 사람은 훌륭하네요 가 되는, 그런 것을 메-슈사마께서는 우리에게 바라고 계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런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정말로 메-슈사마께서 우리에게 바라고 계시는 것은 신앙의 순수성입니다. 신께 한 마음으로 쓰임받겠다는 신앙의 순수성.

  그러니까 아프리카 신도의 신앙의 순수성이 우리보다 훨씬 어났던 것입니다. 신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자세인 것입니.

  그래서 결국, 우리가 먼저 메시아 성당 건설에 대해 시작했지, 아프리카에 순식간에 추월당하지 않았습니까? 아프리카가 시작하, 이런 저런 사이에 추월당하지 않았습니까?

  앙골라 신도들은 정말로 돈이 없습니다. 하지만 메-슈사마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싶어서 열심히 하셨습니다.

  우리 일본인은 어떤가? 일본에 있는 우리는, 저도 포함해 앙골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으로 풍족합니다. 앙골라에 가면 알겠습니다만, 정말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일본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양복이든 식재료든 물이든, 회제도적인 것도 다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오랜 시간, 전쟁 , 많은 일본인의 엄청난 노력과 미국을 비롯한 해외의 여러 원조가 있어서 발전한 것으로, 저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

  하지만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부해졌기 때문에, 대신 중요한 것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간단히 말하면신을 믿는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이 있으니까요. 있는데 어떻게 신을 믿나요. 앙골라 사람은 정말 없습니. 물질이 없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앙골라는 가난한 나라이다 로 끝입니다. 일본은 이미 이렇게 발전해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신을 믿는 진정한 행복이 앙골라에는 있습니다. 물질이 없는 황에서도 신을 믿는 진정한 부, 진정한 행복, 그런 신앙의 순수성을 아프리카 분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난 8, 아프리카 여러분께 말했습니다만, 앞으로 골라도, 아프리카 전체도, 당연히 더욱 더욱 경제적으로는 전해 갈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로 인해, 지금 아프리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이 신앙의 순수성을 잃고 우리 일본인처럼 되면(그것은 일본의 교단 정화에 의해서 세계에 폐를 끼치고 는 것이기에, 우리 일본에 있는 사람의 신앙심 때문에 교단 화는 일어난 것입니다), 만약 아프리카가 일본의 우리처럼 되, 모처럼 생긴흙의 성지, 메-슈사마께서는 간단하게 빼앗으실 것입니다 라고, 그것을 전했습니다. 아프리카 분들께.

  또 전해드린 것은 여러분의 신앙의 순수성에 의해 물질에 사로잡혀 미아가 되어 있는 우리를 여러분이 지금 되살려 주고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 여러분께서 지금 가지고 있는 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않으시길 바란다, 여러분의 그 신앙의 순수성을 그대로 계속 간직해 주시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간직하지 않으면 또 성지는 빼앗겨버립니다 라는 그런 경고도 전해 드렸습니다.

  신앙의 순수성을 잃는 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조금만 물질적으로 좋아지면 바로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내년부터 일본의 많은 여러분, 또 전 세계의 많은 신도들도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지금 성지 건설을 진행하고 있으니까, 그 성지 건설의 봉사단으로서 꼭 많은 분들이 아프리카 앙골라에 가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앙골라에 가서 실제로 성지 건설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 상으로 아프리카 신도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순수성을 접하, 꼭 우리의 신앙을 되살리고 싶습니다.

  이 경험은 문자 그대로 인생이 바뀝니다. 거의 지구 반대편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모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앙골라에 같은 신앙을 하고 있는 동료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단에서 정식으로 발표하면, 한 번 가셨던 분이 또 셔도 좋습니다만, 역시 모두 일생에 한 번은 가 주시길 바라, 또 교단 정화 후의 지금이니까 특히, 우리 자신의 신앙을 되살리, 자기 자신의 신앙을 다시 바라보기 위해, 꼭 가 주시길 바랍니.

  일본의 우리는 아프리카에 지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메시아 성당이라는 명확한 것을 메-슈사마께서 나타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크게 억울해하시고, 또 아프리카를 따라잡아 추월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일본에서의 성지 건설에도 마주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천국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의 복사본을 이 지상에도 나타내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문제는 천국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것, 이것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일본에서의 메시아 성당 건설이든, 아프리카의 성지 건설 봉사단이든, 우리는 그 신업에 참획하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그것은 천국을 이 지상에도 베끼는 것이기에,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을 알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국이라고 하면 자신에게 있어서 뭔가 좋은 일이 있었을 때나,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뭔가 평화롭고 평안한 상황일 때 아, 이것은 천국이다, 이것이 천국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메-슈사마 성언(촌철활인1952220), 이것왜 메시아교가 미술관을 만드는가?라는 것인데, 이것은왜 메시아교가 천국적 세계를 만드는가?라는 것이기 때문에, 메-슈사마께서 바라시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가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가 라는 것이 적혀 있습니다.

  이 성언에서 메-슈사마께서는 천국이 지상에 나타나면 모두 그냥 -라는 느낌으로 평안함이 가득찬다 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천국이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창자가 뒤집히거나, 알이 튀어나오거나, 모두 머리가 이상해져 거꾸로 서서 걷거, 또 숨이 멎는 사람도 나오기 때문에 죽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국이 나타나면 그런 상황이 된다고 메-슈사마께서는 말씀하십니. 이것이 메-슈사마의 천국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랜 세월성지다, 미술관이다라고 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있었나요? 메-슈사마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났나요?

  그런 것보다도 세상 사람들이 가능한 한 저항 없이 우리의 장소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라는 정도의 마음이지 않았나요? 메-슈사마의 천국관과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메-슈사마와의 차이가 너무 크지요.

  진정한 천국이란, 압도적인 빛과 압도적인 진리의 힘에 의해 우리를 강렬하게 비추기 때문에, 우리의 추한 부분은 드러나고 단번에 허점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 사실은 천국 같은 것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 왜냐하면 그런 상황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머리가 미친 듯이 곤두서거나, 숨이 멈추거나, 내장이 뒤집혀 버리거나, 눈알튀어나올 것 같은 상황이 됩니다.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 있나? 그만큼 천국의 빛은 강렬한 빛입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의 깊은 곳의 깊은 곳의 깊은 곳까지 한 번에 드러납니다. 우리는 실은 천국의 빛에 비춰지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우리가천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메-슈사마의 천국이라는 것의 차이가 너무 큰 것입니다. 너무 큽니다.

  천국의 빛이 비추는 것은, 그저 그것으로너희들은 멸망하기를 바란다라는 것이 당연히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본래 이대로 있으면 멸망해버릴 존재인데, 거기서 구원해 주겠다 라는 의미로 비춰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드러나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천국 같은 것 전혀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간이 생각하는보다 좋은 사회가 실현되는 것, 이 정도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천국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

  그렇지만, 천국의 실태를 아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금후 성지건설 등에 관여한다면(시아 성당 건설헌금을 하는 것으로도 이미 관여하는 것이 됩니다. 천국의 복사본을 이 지상에 세우고 있는 메-슈사마 신업의 말단에 쓰임받는 것이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때 적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천국관과는 전혀 다르다, 내가 그저 기분이 좋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라는 것은 알아둬야 합니다.

  대체로 자신이 기분이 좋다 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메-슈사마의 천국이라는 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엉성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천국의 실체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천국관과 메-슈사마의 천국관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천국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나의 천국이 아니라 메-슈사마의 천국이 나타나도록 쓰임받고 싶습니다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뭔지쉽게 알 수 없고, 게다가 진짜 천국을 느끼고 싶냐고 해도, 그것도 우리는 무섭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후 성지 건설에 관여한다면, 역시 적어도 천국이라는 것을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신이시여, 메-슈사마의 천국이라것을 저는 전혀 모르며, 지금까지 저의 형편에 좋도록 천국이라말을 이용해 왔습니다만, 앞으로는 메-슈사마의 천국이 나타나 주도록 쓰임받고자 합니다라는 조심스러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당연히 천국의 주인, 주인은 신이십니다만, 이 신이라는 것도 우리는 매우 만만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 지상에 천국을 나타내 주시는 것도 신의 힘인데, 그 신에 대해서 우리는, 신께서는 사랑이다, 신께서는 무엇이든지 용서해 주신다, 신께서는 큰 사랑을 가지고 계신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것은 틀림없습니다만.

  그 속에서 우리는 신의 음성을 듣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지. 이것이 제 소원입니다만 어떻습니까 라든가, 왜 신께서는 아무 말도 해 주시지 않나요 라든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지요.

  자신이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이 되어 신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 가지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신의 음성은 전혀 들리지 않지.

  아니 만약 들은 분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신께 매일 기도해도 신의 음성은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오늘 배독한 성경(창세기221~18) 중에, 아브라함은 들렸지요. 어째서 아브라함은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요?

  아브라함은 신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럼 그 신의 음성이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말했냐면, 그것은너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고 나에게 바쳐라입니다. 너의 자식으로 번제로 행하라는 것인데, 번제라는 것은 통째로 구워서 신께 바치는 것이니까, 너의 자식을 통째로 구워서 나에게 바쳐라, 그것이 신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설마 신께서는 그런 것을 나에게 말씀하시는 존재가 니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장과 신의 파장이 맞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신께서너는 너의 자식을 죽여서 나에게 바치라라는 것도 말씀하시는 존재라는 신에 대한 압도적인 경외를 가지있었기 때문에, 신과의 파장이 딱 맞았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들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의 음성이.

  그런데 우리는, 아니 신께서는 사랑이다, 왜 이렇게 해 주지 않으시나 라는 그런 느낌으로 신을 생각하니까, 우리의 주파수와 신의 주파수가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우리는 신의 음성 같은 것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은 우리는 신의 음성,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신이시여 왜 답을 안 해주십니까?라고 하지만, 정말신의 목소리가 들리면, 신께서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

  「너의 사랑하는 자식을 바쳐라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다것은너의 목숨을 바쳐라정도는 쉽게 말씀하신다는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무서워서 듣고 싶지 않습니다. 신의 음성은.

  「기도의 말에서그 뜻대로 써 주십시오라고 입으로 말하있지만, 우리는 정말그 뜻대로 써 주십시오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의 형편이 모두 지켜진 다음에그 뜻대로 써 주십시오는 말할 수 있지요. 이것은 쉽습니다. 그렇다고 할까요, 지금 우리는 그런 자신의 형편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 뜻대로 써 주십시오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것 같지, 이것은 저도 포함해서, 자신의 형편이 확실히 100% 들어간 다음그 뜻대로 써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파장과 신의 파장이 맞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기에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신앙의 순수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사랑하는 네 독자를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만, 아브라함은 그 외에도 자식은 있기는 했습니다. , 이 독자로 여겨지는 이삭은 본처인 사라와의 사이에 생긴 자. 그 외에도 하갈이라는 다른 아내과의 사이에 이스마엘이라는 자식은 있었습니다만, 본처인 사라와의 사이에서는 첫 자식이었습니다.

  심지어 이것이 아브라함이 100, 사라가 90세 때에, 설마 이제는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무리라고 포기하고 있던 차에, 신께서 이삭을 하사해 주셨으니 너무나 사랑스러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성서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습니. 번제에 바치기 위해, 아브라함은 이삭과 3일 동안 함께 여행을 하지요. 그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예를 들면 첫째날 밤, 아들과 함께 있는데 아브라함은 이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것입니다. 성서에 그때의 아브라함의 갈등은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지만, 그것은 엄청난 갈등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올려야 했던 그 음은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지요. 당신의 사랑하는 독자를 친다는 것. 게다가 예수님의 경우는 죽어 버렸습니다. 이삭 같은 경우는 죽이지 않아도 됐지만요.

  그러니까 우리는 모릅니다. 신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오르게 해야 했던 신의 마음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브라함에게 일어난 일은 이것은 모형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신께서 예수님께 하신 것과 같은 일을 하도록 시키셨기 때문에. 사랑하는 독자인 이삭을 바치라고 되어 있지요. 예수님도 신의 사랑하는 독자로 여겨지지요. 똑같습니.

  게다가 여기 이삭이번제에 쓸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요?아브라함에게 물었고, 아브라함은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신께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만, 이 대화는 신롭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그 후 수천 년 후에 일어날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성서에는 아브라함의 마음의 갈등은 그려져 있지 않지, 하지만 아브라함의 마음은 너무나 힘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라면 자신의 아이가 고통받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든 자신이 대신할 수 없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이 병으로 고통받을 정도라면 내가 대신 해 주고 싶습니다. 부모라면.

  하지만 아브라함의 경우는 그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를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 신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올려야만 했던 마음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적어도 아브라함이 겪은 것,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쳐야만 했던 것, 그 마음은 우리는 압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살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안에 아브라함도 살아 있으며 이삭도 살아 있습니다. 이삭도 훌륭한 자식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묶어도 일절 저항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인 아브라함을 믿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늘의 아버지이신 신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 속에 신앙의 순수성이 있고, 이 아브라함이 우리 안에 살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은 신께 대한 경외라는 신앙의 수성을 바쳤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신으로부터, 너를 축복해 주겠다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께서는 아브라함에게네가 나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너를 축복할 것이다. 너도 축복하고 너의 자손도 축복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아브라함의 자손은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이 성지도, 우리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의 순수성이 있다면 메-슈사마께서는 얼마든지 축복해 주십니다.

  신앙의 순수성이 있기에 비로소 축복해 주시는 것이며, 이 순서는 반대가 아닙니다.

  이것에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어려움이 있지요. 어렵습니다. 물질적으로 축복받고 있기 때문에. 물론,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면 이렇다 저렇다는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앙골라에 계신 분들과 비교하면 대단한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의 순수성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앙골라 분들보다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신께서는 신앙의 순수성을 가지면 물질적으로도 축복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을 경외하는 신앙의 순수성을 관철하면 얼마든지 축복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세상에는 여러 문제가 있지요. 전쟁이라든지 경제적인 이라든지, 문제는 산적해 있습니다게다가 열심히 여러 대책세우거나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분명 있습니다. 그 노력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그것에 대해서 평론가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지요. 이렇다, 저렇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다 해야 한다 등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아닙니다. 신께서 개입하시면 모두 한 방으로 해결됩니다. 간단한 일입니다. 어떤 걱정도 필요 없습니다. 신의 힘으로 하면 어떤 문제도 눈 깜빡하는 사이에 해결됩니다.

하지만 이 총론(總論)이라고 할까요(총론찬성 각론반대는 아니지만) 신께서는 뭐든지 하시니까 안심이다라는 총론이 내 문제가 되면 갑자기 어려워집니다.

  세상의 문제 등에 대해, 응 그렇다, 신께서는 분명 전쟁을 바로 멈추실 수 있다 라는 것은 간단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것이 자신의 문제가 되면 갑자기 곤란해지는 것입니다.

  나의 건강 문제, 경제상황, , 인간관계, 가족, 가족의 건강상태, 이웃과의 관계. 총론으로는, 그렇다 신께서는 대단하시다 였던 것이, 문제가 나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곤란한 것입니다이상(理想)으로 여겨지는 신께 대한 신앙심이 갑자기 흔들리지요.

  그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신으로부터 시험받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순수성을 시험하고 계신 것은, 이런 신변의 문제인 것입.

  아브라함입니다만, 신께서는 아브라함에게너는 이 세상의 모자식 관계를 택하겠느냐, 영의 아버지인 나와 너와의 부모자관계를 택하겠느냐? 어느쪽이냐?라고 다그치신 것입니다. 대단히 엄한 것이지요.

  가공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을 믿습니다, 신께서 하늘의 버지입니다 라고 입으로 말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하지만, 렇다면 구체적으로 너의 자식을 죽여서 나에 대한 신앙심을 보여라 인 것입니다, 오늘 성서 이야기는. 나를 하늘의 아버지로 인정한다면 너의 자식 정도는 죽일 수 있다, 나와의 부모자식 계가 더 중요하지, 그럼 자식을 죽여라,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따르는지 어떤지 보겠다,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께서는 인간의 부모자식 관계에 완전히 칼을 던져 넣계십니다. 예수님도 성서에 있듯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복음 1034~39)

  부모자식관계, 부부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라고 하는 이 상의 것을 소중히 하는가 - 아니, 이 세상의 그러한 인간관계는 확실히 중요합니다. 그것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배독한 성서에서 신께서 호소하고 계신 것, 궁극적으로 너는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번 교단 정화 속에서의 여러분의 결단은,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대단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신앙이라는 것은 자유입니다만, 여러분은 쿄-슈사마의 길이야말로 메-슈사마의 길, 신에게로의 길이라고 믿으시고, 그에 따라 결과적으로 형제, 부모자식, 부부 사이에서 다른 길을 걷게 되어 버린 분도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신으로부터 시험받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너는 나를 믿느냐, 아니면 이 세상의 부모자식 관계나 부부 관계, 그것을 우선하는가 어느 쪽인가 하는, 그런 것입니.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믿는 바를 관철하기 위해 이 세상의 부모자식관계를 잃어버리는 일, 희생해야 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아브라함은 그것이 발생했고, 하지만 신에 대한 절대적신뢰로 인해 신께서는 그것을 좋게 여기셔서 아들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를 통해 메-슈사마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냐면신앙의 순수성을 되찾아라입니다.

  천국이나 신이라고 하는 것은, 어중간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께서는 진정한 아버지인 나를 선택하면 얼마든지 이 세상 일도 나는 너를 도와주겠다 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아프리카에 성지가 생겼습니다. 물질적으로 불우한 아프리카에 생겼습니다. 때문에 일본에 있는 우리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잃어버린 신앙의 순수성. 우리는 쭉 미온적인 신앙을 바쳐왔습니다. 그 결과 성지를 메-슈사마로부터 빼앗겨 렸습니다. 하지만 메-슈사마께서는 아프리카를 보라고 말씀하십니. 나는 아프리카를 축복했다, 다음은 너희 순서이지 않은가, 순수신앙을 바친 아브라함은 너희 안에 있다고, 그렇게 말씀하십니.

  오늘은 조령대제입니다만, 우리는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신앙의 순수성에 있어서 그런 훌륭한 신앙을 바치신 분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아브라함의 신앙을 느끼고 싶습니다. 아프리카 신도의 신앙의 순수성을 느끼고 싶습니다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우리가 신앙의 순수성을 되찾으면, 메시아 성당만이 아닙니다, 당연히 메시아 성당도 메-슈사마께서는 반드시 축복해 주시고, 그뿐만 아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도, 그것이 100% 우리가 바라는 으로 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든든한 손으로 신께서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뭐라 해도 이 신앙의 순수. 신을 사랑하고 신을 경외하고, 신께 모든 것을 다한다는 그 신앙을 우리가 함께 신, 메-슈사마께 바치면, 메-슈사마께서 보시고너희는 나의 신도다」「그러니까 성지를 다시 맡기겠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존재, 이 세상의 일도 여러 가지로 내가 원조해 겠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아프리카 신도들과 함께. 또 우리 안에 있는 아브라함이나 그런 훌륭한 분들과 함께 성장해 가고자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