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만이 있을 뿐」마사아키사마 성언 2025년 4월 6일 예수부활제 및 춘계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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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34회 작성일 25-05-27 19:55본문
「예수부활제 및 춘계대제」마사아키사마 성언
2025년 4월 6일
「전도만이 있을 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재판의 화해가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였기 때문에 지금은 화해하고 나서 3개월 조금 지났네요. 그런 중, 화해 후 지난 몇 년간의 걸음을 저 나름대로 되돌아보고 지금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께 사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교단정화는 세계구세교 임원들이 쿄-슈사마를 무시하는 움직임 등, 결국 쿄-슈사마를 미행·도청·도촬한 것으로 되었습니다만, 그런 중에 여러분들은 세계구세교라는 것은, 메-슈사마, 2대 쿄-슈사마때부터 쿄-슈사마라는 존재가 메-슈사마의 성업을 계승하는 존재이다, 그것이 세계구세교이다, 그것이 구세교의 규칙이다 하여 세계구세교 신도로서의 길을 완수하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러분께서는 익숙한 교회와 성지에서 나가게 되었거나 갈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올바른 길을 선택하셨는데, 여러분께 그런 부담을 주고 말았습니다. 주위 분들로부터 안 좋은 소리를 듣거나, 안 좋은 마음도 많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우리로서는, 지금까지 세계구세교 임원들의 그러한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은 지적해 왔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장(長)의 상념이 조직 전체로 가는 것이기에, 이번 교단정화는 따지고 보면 쿄-슈사마와 저의 탓입니다. 쿄-슈사마와 저의 상념과 자세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교단 정화가 일어났습니다.
쿄-슈사마와 가장 가까운 이사들이 저렇게 되었다는 것은 역시 쿄-슈사마와 제 안에 신을 업신여기는 자세, 혹은 신의 눈을 속여 뭔가 인간의 형편으로 하려는 모습 - 이 모습이 전적으로 구세교 이사들에게 반영된 것뿐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본래 당연히, 그 과정에서 만약 세계구세교 이사들의 방향성이 이상하다면, 쿄-슈사마와 제가 지도를 해서 그것을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그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교단정화는, 따지고 보면 쿄-슈사마와 제가 미흡해서 여러분께 큰 부담을 끼쳐 드린 것에 대해 한 번도 사과의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쿄-슈사마와 저의 자세와 발걸음에 대해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마사아키사마, 머리를 숙이심).
지금, 새로운 세계메시아교의 규칙 등을 생각하고 있는 때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이런 교단정화가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또 신앙적인 의미로 쿄-슈사마를 따르고 있으면 반드시 괜찮다는 것으로 하고자 합니다.
애초에 지난 교단 정화 때는 옥신각신하다가 최종적으로는「쿄-슈사마 아래서 메-슈사마 신앙을 한다」는 것으로 교단에서는 발표를 했고 그것을 여러분은 믿어주시고 걸어가셨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사장을 비롯한 분들과 함께, 신앙적인 의미에서 쿄-슈사마만을 주시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절대로 괜찮다 라는 그런 규칙으로 하여, 반석의 체제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께 이번과 같은 폐를 절대 끼치지 않도록 할 테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것은 감사입니다만, 그것은 지금의 세메스 연수생(조금 있으면 전종자이지요) 분들이 일본에 와 있는 것은 당연히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에 관한 것이라면 앙골라에 있어도 되기 때문에. 일본에 와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로 인해 전국 각지 신도 여러분께서 따뜻하게 이 5명을 맞이해 주시고, 홈스테이 장소를 제공해 주신 분도 계실 것이고, 혹은 교회에서 여러가지 일본어를 가르쳐 주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본인들이 발표한 것처럼, 2년간 무사히 큰 사고도 없이 연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발표한 일본어도 너무 유창하네요(일동웃음) 너무 유창하지 않았나요? 저도 좀처럼 사용할 수 없는 일본어를 쓰고 있네요.
대단합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말하는 태도도 멋졌습니다. 저런 모습으로 오늘 여러분께 이 2년간의 성과를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여러분의 협력과 따뜻하게 맞아주신 마음에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일동박수)
세메스 연수생도 훌륭했습니다. 그들은 앙골라에서 문화가 전혀 다른 일본에 왔습니다. 이것, 힘들었을꺼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최근 2년간 한 번도 모국에 돌아가지 않았으니까요.
만약에 여러분에게 갑자기 앙골라에서 2년간 연수하라고 하면 당황하실거라 생각합니다.(일동웃음). 하지만 그들은 어느 쪽인가 하면 그런 힘듦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밝게 여러 일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고 리플릿 배부 같은 것도 적극적으로 해 주셨습니다.
그 밝음의 뒤에는 여러 일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민하거나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던 일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해 오셨습니다.
저는 지금이니까 이야기합니다만, 세메스 연수생이라고 해서「연수생으로 잘 키워야 한다」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우리가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이 있지 않았나요? 사실 우리가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연수를 받지 않았나요?
그들의 자세, 순수함, 밝음, 열심히 복음을 전도하는 모습, 사실 우리가 배움이 되었지요.
그래서 이제 앙골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지 않고 남아주신다고 하네요. 그렇게 말했지요, 여러분?(일동웃음). 헤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이 소중한 5명과 헤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다시 한번 우리와 함께 걸어가는 중에 훌륭한 신앙을 보여주신 세메스 연수생 분들에게 한번 더 박수를 보내드리고자 합니다.(일동박수).
세메스 연수생을 생각하는 중에 제가 든 생각은, 그들의 출신지는 앙골라이며 아프리카입니다. 그리고 지금 아프리카에는「흙의 성지」가 있지요. 아프리카에는 흙의 성지가 있습니다. 메-슈사마 성지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좋은 뜻으로.
메-슈사마 성지가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것 같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온 세메스 연수생 분들도 오늘 일본에 계십니다.
그래서 역시 우리의 의식이라는 것이 이 아프리카와 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라고 하면, 우리가 가진 이미지는 고정관념 같은 것으로, 죄송합니다만 일반적으로는 가난이지요. 가난. 기아(飢餓). 먹을 것이 없는 기아. 전 세계 기아의 20%는 아프리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앙골라에서 온 세메스 연수생을 통해 아프리카를 의식하게 된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기아입니다만, 우리의 모토는「병빈쟁 절무의 세계를 만든다」입니다. 병, 빈, 쟁 절무. 빈(貧)이 있네요, 가운데에.
병빈쟁 절무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모토인데, 아프리카는 빈의 최고의 지역이 됩니다. 아니 물론 가난은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도 여러 곳이 있으며 중남미 등에도 여러 곳이 있고, 전 세계적으로 많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아프리카에는 가난이라는 것이 있지요.
그런 것을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또 메-슈사마이자 세계메시아교의 모토인 병빈쟁 절무의 세계를 만든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역시 어떻게 해서든 메-슈사마 성언인「이상세계인 미륵의 세상에는 인류는 채식을 하게 된다」라는 곳에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병빈쟁 절무의 세계를 만든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메-슈사마도 실현 불가능한 일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병과 가난과 싸움이 인류에게 절대 없는 세계를 만든다는 것이 메-슈사마의 모토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병과 채식과의 관계에 대해서입니다만, 최근 교단의 인스타그램에서도 자주 나오고 있듯이 메-슈사마께서는 암은 육식이 원인이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이것 메-슈사마만이 주장하시는 거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메-슈사마께서 말씀하신 것에 증거가 있느냐고 묻고 싶은 분도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증거 있습니다.
그것은, WHO(세계보건기구)라고 하는 전 세계 최고의 과학자가 관련된 기관이, 가공육(햄, 베이컨, 소시지, 생햄)은 발암성 물질의「그룹 1」이라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룹 1이라는 것은 가장 발암성이 강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가공육이 아닌 적색육(소고기, 돼지고기)은 그 다음으로 발암성이 강한「그룹2」. 이런 식으로 WHO가 발표하고 있습니다. 저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과학자 최고의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메-슈사마의 선견지명, 선견성은 대단합니다. 육식이 암의 원인이라는 과학적 데이터가 있어서 그것을 바탕으로 말씀하신 것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메-슈사마께서 수십 년 전에 그것을 말씀하셨는데 지금에 와서 WHO라는 세계의 건강을 다루는 곳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암뿐만 아니라 심근경색 같은 심장질환, 뇌질환, 혹은 당뇨병 등, 그러한 이른바 생활 습관병이라 불리는 것의 대부분이 육식이 원인이라는 것도 지금 과학은 많이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할까요, 오랫동안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빈쟁 절무의 세계를 만든다는 것 위에, 병에 대해서는 미륵의 세상은 채식이라는 것의 중요성이 있지요.
그리고 병빈쟁의 빈은 일단 제쳐두고, 최후의 싸움. 다툼. 이것과 미륵의 세상의 식의 관계입니다만, 이것에 대해 메-슈사마께서는 다툼을 좋아하는 인간의 성질, 성격(다투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커지면 전쟁을 해 버리는 성질) 이것은 육고기나 생선을 먹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성질이 되어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메-슈사마께서는 사람에게 더욱 채소를 먹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맛있는 채소를 먹게 한다.
채소를 먹으면 사람의 성질, 성격이 바뀌어 다툼을 좋아하지 않게 되어 결과적으로 이상세계가 탄생한다고, 그렇게 메-슈사마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당연히 다툼이 있으면 이상세계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이「쟁」이라는 것도 미륵의 세상은 채식이라는 것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빈. 가난과 미륵의 세상은 채식이라는 것이 어떻게 관계가 있는가? 가난이라는 것은 그 중 하나는 기아(飢餓)입니다. 기아.
기아에 대해 조금 조사했는데, 데이터는 여러가지 있는데 지금 현재 전 세계에서 기아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7억 명에서 8억 명이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메스 연수생 출신국인 앙골라도 5세 이하의 아이들의 30%이상은 영양 부족으로 인해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들의 30%이상입니다. 세메스 연수생 분들이 온 나라에서 이런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먹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기아와 관련해 연간 어느 정도의 사람이 죽고 있는 것인가? 「굶어 죽는다」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굶어 죽는지, 이것은 여러 데이터가 있습니다만, 900만 명이라는 데이터도 있고 1,500만 명이라는 데이터도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연간 1,500만명이 굶어죽고 있다는 데이터. 그리고 그 중의 70%가 아이들입니다.
그 정도로 굶어 죽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을 하루로 계산하면 하루에 4만 명입니다. 4만 명 이상. 1시간에 2,000명 남짓. 그러니까 제전 시작하고(마사아키사마, 손목시계를 확인하심) 1시간 15분 정도 지났는데 2,000명 정도 죽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중에 70%가 아이들. 그 정도의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죽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입니다. 1분당으로 계산하면 20~30명이 됩니다만.
여러분들은 이런 실태와 채식과 무슨 관계가 있나 라고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채식을 한다는 것은 동물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동물을 먹는다는 것은, 소를 먹게 되면 소가 자라기 위해 먹을 것이 필요하니까(소, 돼지, 새가 자라기 위한 사료이지요) 이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요는 축산용 사료, 이것입니다.
콩을 예를 들자면, 지금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콩의 생산량의 약 80%는 동물 사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먹는 것은 20% 조금 넘습니다. 전 세계에서 만들고 있는 콩의 80%는 동물에게 갑니다. 동물이라고 할까요, 우리가 먹는 동물이지요.
조금 전, 지금 기아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7,8억 명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아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줄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말한 콩입니다만, 분명 유통에 관한 것이 있기 때문에 단순 계산은 할 수 없지만, 하지만 만약 동물에게 충당하고 있는 80%정도의 콩을 인간에게 돌린다면 그 칼로리로 15억 명분의 식사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15억 명분의 칼로리.
그렇기에 기아로 고통 받고 있는 7,8억명의 칼로리는 조달될 뿐 아니라 배 가까이 남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콩 만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금 저는 매우 간단하게 또 단순화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여러 가지로 그렇게 되지 않는 현상이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들겠지만 만약 지금 인류가 채식으로 딱 전환하여, 우리가 식육용 동물에게 주고 있는 콩을 인간에게 돌리면, 남을 정도의 식량이 있습니다. 인류 15억 명분의 칼로리는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콩만의 이야기이며 축산 동물을 위해 그 밖에도 밀가루나 옥수수 같은 것도 전 세계에서 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그것을 전부 더한다면 대략적인 추산으로는 연간 50억 명 정도는 먹일 수 있습니다. 50억 명. 그에 반해 지금 세계의 기아인구는 겨우 7, 8억 명.
지금 매초마다 죽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고 있습니다. 매분마다 죽고 있습니다. 제가 말을 시작하고 나서 1분이 지날 때마다 2,30명의 분들이 굶어 죽고 있는 것이며, 게다가 그 중 70%가 아이들입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고기를 먹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인류가 육식을 그만두고, 식육(⾷⾁)에게 주고 있는 사료의 반이라도 돌리면, 아니, 반은 커녕 3분의 1이라도 4분의 1이라도 돌리면, 그것이야말로 아프리카에서 앙골라에서 영양이 부족해서 키가 크지 않는, 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콩은 흔히 말하는 단백질이 100g에 포함된 양이 소고기보다 많기 때문에, 충분히 영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선진국의 책임이 큽니다. 일본은 이제 선진국 중에 선진국입니다. 그 선진국에 있는 우리가 고기를 먹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시스템을 유지하면 여러 사람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동물 사료를 사용해야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동물에게 사료로써 준 칼로리는, 최종적으로 육고기로써 우리가 먹을 경우 결국 10분의 1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요는 동물에게 사료를 주고 그것을 동물이 먹고 성장해서 최종적으로 우리가 그 고기를 먹으면 10분의 1의 칼로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원래의 사료를 직접 사람이 먹으면 10배의 칼로리를 사실은 섭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압도적으로 효율이 나쁜 것입니다. 지금 귀가 따갑게 이야기를 연발하고 있습니다만(일동웃음).
하지만 이것이 실태입니다.
채식 이야기를 하거나 고기를 먹지 않는 편이 좋다든가 하면「무엇을 먹을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다」라고 하는 분이 계시는데, 개인의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 형제자매가 먹을 것이 없어서 괴로워하는데,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개인의 선택이 될 수 있나요? 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원래는 인류가 가난으로 못 먹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누구나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도록, 그렇게 집단으로서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지 말지는 절대 개인의 선택이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매초 매초 눈 앞에서 굶어 죽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무엇을 먹을지가 개인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채식을 하고 있다고 하면, 자주「단백질은 충분히 드시나요?」「단백질 괜찮나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단백질 이전에 칼로리가 부족해서 죽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 밖입니다.
게다가 단백질이라고 해도, 최근의 연구에서는 제대로 충분한 칼로리만 섭취하고 있으면 단백질은 문제 없이 충족된다는 것을 미국의 의사조차도 말하고 있습니다.(『단백질 중독:육식욕이 우리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다』가스 데이비스 지음).
그런데 그런 정보는 일반적으로 유포되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축산업자들이 돈을 벌지 못하게 되며, 그 동물 사료에 관련된 돈도 엄청날 테니까요.
왜냐하면 동물 사료로 쓰이는 콩은 세계 생산의 80%입니다. 그것에 관련된 모든 농가,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수입 등을 생각하면 당연히 선진국 주체(우리입니다만),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계속해 간다는 것에 더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정보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을 세상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일부만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화제는「불편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고기를 먹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것을 통해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에 대해서는 잠자코 있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꽤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미륵의 세상은 채식이다 라는 것은 병, 빈, 쟁의 모든 것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난의 해결에 관해서는 지극히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병빈쟁 절무의 세계를 만드는 집단에 속해 있습니다.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고 그 병빈쟁 절무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기점은 어디냐 하면, 바로「부엌」입니다. 멋진 이상세계를 만드는, 세상의 병을 없애고, 기아를 없애고, 아프리카나 앙골라 그런 나라가 정말로 풍요로워져서, 전 세계 사람이 기뻐하는 일이 발생하기 위한 기점은, 바로 부엌입니다.
부엌이고 또 마트에 가거나 인터넷으로 먹을 것을 찾아 구입하는 인물, 구입해서 그것을 조리하는 인물, 그 의사결정을 하시는 분, 이 분께 지상천국이 올지 안 올지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남성 주부라도 좋으며 여성 주부라도 좋습니다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고기를 사면, 그러면 더욱 고기가 필요하게 되고, 고기를 팔면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그러면 동물을 키워야 하고 사료도 만들어야 하게 됩니다.
우리가 고기를 사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지출되는 곳이 우선시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다들 돈을 벌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돈이 없는 사람들이 우선시 되나요? 우선시 되지 않습니다.
분명 땅에서 지상천국이 시작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농가 분들도 보통 기본적으로 고기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는 이 지상천국이라는, 인류가 구하고 구해온 세계를 만드는 열쇠를 쥐고 계신 분은 부엌을 맡고 있는 분입니다.
만약 일본 주부들 모두가 미륵의 세상은 채식이라고 해서 고기를 사지 않으면, 더 이상 팔 수 없기 때문에 생산의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전 세계에서 일어난다면 순식간에 세계는 바뀝니다. 기아는 없어집니다. 동물의 사료 분을 사람에게 돌리면 기아는 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신업이라 하면 쿄-슈사마가 어떻고 메-슈사마가 어떻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고 교회장이 어떻다 등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주부에게 달려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주부들이 전 세계에서 무엇을 사는지, 무엇을 조리하는지, 이것으로 인류의 운명은 결정되어 버립니다.
작은 한 걸음일지도 모르겠지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날의 선택과 실행에 의해서, 인류의 운명, 내일, 아니 지금 먹을 것이 없어서 죽고 있는 아이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들이 이런 정책이 어떻다고 한들,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고기를 사지 않거나 채식을 시작하면 그런 높은 사람들이 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것이며, 그것보다 더 나은 힘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신 것입니다. 인류가 구하고 구하는 이상세계를 만드는 것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오늘부터, 오늘 이후,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말, 교회에 가서 이것을 하자 가 아니어도 됩니다. 이 제전이 끝난 후 무엇을 살지, 무엇을 만들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인류의 밝은 미래를 만드는 일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여러분의 힘은 헤아릴 수 없이 큽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현실적으로 일본에서는, 또 세계에서도 부엌과 쇼핑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주로 여성 분이지요. 물론 남성 분도 계시지만, 현상으로서는 전 세계에서 기본적으로는 여성 분들이 이러한 일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이상세계를 만든다는 것에 있어서 여성 분들의 역할은 큽니다. 아니, 이것은 남성인 제가 결코 잘난 듯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만, 여성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지상천국 건설에 있어서 그만큼의 힘과 책임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메-슈사마 승천 후의 신업을 생각했을 때, 남성적이라든가 여성적이라는 말은 원래 그다지 쓰고 싶지 않습니다만, 하지만 역시 신업의 방향성이라는 것이 뭔가 조직이나 이치, 가르침이 어떻다든가 종교적 이론이 어떻다든가 철학이 어떻다든가 숫자가 어떻다든가, 뭔가 그런 식으로 계속 와 버린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만이 우선되고, 반대로 감동이나 열정, 기쁨, 설레임, 즐거움, 뭔지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다든가, 그런 것은 중요하게 여겨 오지 않은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거 왠지 해보고 싶다 해도, 아니 그것은 이런 이유로 안 된다 하며 해 오지 않았다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메-슈사마 때는 모두 기뻐서 신업에 쓰임받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메-슈사마 승천 후의 오랜 시간의 걸음 속에서, 뭔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남성 중심의 활동이 되어 버려, 사실 본질적으로 더욱 중요한 감동, 기쁨, 솟구치는 마음, 설레임, 즐거움, 눈물 - 뭔가 그런 것이 중요시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애초에 어째서 그런 걸음이 되어버린 걸까 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오늘 배독한 성서에도 있듯이 만물입니다. 만물.
왜냐하면 만물은「썩어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거죠.(「로마서」제8장21절) 하지만 우리는 만물을(예를 들면 돈이나 숫자 그런 여러 가지를) 자신의 형편에 좋도록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는 좋다, 이 일은 좋다, 이 일은 안 된다 라고 하며.
쿄-슈사마께서 항상 인도해 주시듯이, 사람의 척도로 만물을 얽어매고 있습니다. 인류의 걸음 중에서 여성에 대해서도 그러한 관점과 취급이 있었으며, 아직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물론, 조직이나 가르침, 조직운영, 이론이라든가 그런 것은 중요하긴 중요합니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본래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을 저는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만물을 얽어매고, 인간의 형편으로 나아가도 결국 도착하는 곳은 죽음입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인간의 척도로 생각하면 인간은 영원성은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유한한 세계이기 때문에, 최종 지점은 죽음이지요.
썩어짐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싶은 만물, 피조물은 신의 자식들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의 자식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서」제8장 19절).
왜냐하면 신께서는 이미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케 하셨나이다(「히브리서」제2장 8절) 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여기「그」라는 것은 우리 인간입니다. 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께서는 만물을 인간의 지배 하에 두셨는데, 너희들은 그 사실을 보고 있지 않은가 라고 말씀하십니다.(「히브리서」2장 8절). 분명 보고 있지 않지요 우리는. 신께서는 이미 만물을 너희 인간에게 주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그것을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도 병에 걸리면「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무슨 일이 생기면「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하며, 그런 것을 자신에게 나쁜 일로서 보고 있지요. 하지만 그런 생활방식이었다면, 어떻게 그것으로 만물이 썩어짐의 속박에서 해방될까요?
만물은 신의 자식들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들어가고 싶습니다.(「로마서」제8장 21절). 신의 자식들입니다. 예수만이 아닙니다.
아니, 쓰여 있었지요 성서에. 만물은 신의 자식들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고 있었지요. 이「신의 자식들」이라는 것은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성서에는, 우리는 자식인 신분이 하사되어져야 한다고 쓰여있었습니다.(「로마서 제8장 23절). 자식인 신분이 하사되어져야 한다는 것은 지금은 아직 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흔히 여러 종교에서는 간단히「인류 모두 신의 자식이고 형제자매」라고 합니다만, 아직 자식으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다, 모두 신의 자식이다 - 그런 말은 울림은 좋습니다. 아 멋지네요 라고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식 신분을 하사받았나요? 아직이지 않습니까?
자식인 신분을 하사받는다, 즉 속죄받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제8장 23절). 그것은 당연히 그렇습니다. 속죄받지 않고 어떻게 신 앞에 설 수 있나요?
그렇다는 것은 만물들은, 우리가 속죄 되고 깨끗해져서 우리와 함께 신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물은 기다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메-슈사마께서도 서체에「천지갱신(天地更新)」「천지일신(天地一新)」이라고 쓰셨습니다. 이 경우의「천지」라는 것은 대우주 전체라는 의미에서의「천지」이기 때문에, 즉 모든 피조물입니다. 그러니까 만물이지요. 그렇다는 것은「천지갱신」이라는 것은「만물갱신」이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천지일신」. 천지가 완전히 새로워졌다는 것입니다. 만물이 완전히 새로워졌다. 그런 글을 메-슈사마께서는 쓰셨습니다.
즉 메-슈사마께서는 이 눈에 보이는 세계를 보셨을 때「썩어짐의 속박에 있는 만물」이 아니라「이제 새로워진 만물」이라는 관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메-슈사마의 관점입니다.
우리는 그다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요? 메-슈사마께서 왜「천지갱신」「천지일신」이라는 글을 쓰셨는가? 뭔가 좋은 말이다, 정도입니다.
만물은 완전히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워지고 있다는 것은 낡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만물을 완전히 새로워진 것으로 보고 있나요?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물을 봤을 때「아, 이제 만물은 완전히 새로워지고 있다」라고 메-슈사마처럼 거의 생각해 오지 않았습니다. 메-슈사마의 서체를 봐도 우리는 그냥 넘겨버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천지가 완전히 새로워지고 있다고 생각하신 메-슈사마가 최종적으로 도달하신 것이「메시아로 새롭게 태어난다」입니다. 그러니까 대단한 것입니다. 만물이 완전히 새로워졌다는 것은.
쿄-슈사마 축사에도 만물이 되살아나고 인간 모두 새롭게 태어난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만, 정말로 메-슈사마께서 나타내 주신 그대로이지 않습니까? 천지가 새로워지고 있다고 생각하신 메-슈사마이시기 때문에 새롭게 태어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 엄청난 감동으로 가득 차 있나요? 「이것은 대단한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지요. 「아, 그런 일도 있나」정도입니다.
하지만 메-슈사마께서는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을 선언하시고 벽운장에 간부들을 모으시고, 이것은 기적 이상의 기적이라고 말씀하시고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받아들임, 자세, 간극이 너무 크지 않나요? 메-슈사마께서 보고 계셨던 세계, 살고 계셨던 세계와 우리 세계의 간극이 너무 크지 않나요?
지상의 일을 주체로 하여 이 세상의 성공, 부, 건강, 그것에 푹 잠겨있는 우리는「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라고 들어도 메-슈사마만큼의 기쁨을 지금 느끼고 있나요?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어떻게 메-슈사마 신도가 될 수 있나요? 이 간극, 너무 큽니다. 메-슈사마의 인식과 우리 메-슈사마 신도의 인식의 간극이 너무 큽니다.
최만년 메-슈사마께서는 진정한 신도는 한 명도 없다(「측근봉사자 일기에서」1954년 7월 11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 그대로입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발표하시거나「천지일신」이라는 글을 쓰셨어도, 우리는 무반응이기 때문입니다. 무반응.
게다가 우리는 만물이 새로워졌다 라는 것으로「만물」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동물이나 대자연, 지구를 생각합니다만, 메-슈사마께서는 인간의 상념도 만물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의 상념은 세밀한 입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의 상념입니다만, 상념도 결국 세밀한 입자입니다」(「강화」1953년 7월 17일)).
그래서 사람의 상념이라고 해도 만물이라는 것입니다.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만물이 갱신하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좀 더 집이나 밖의 청소를 제대로 하자든가, 물건을 소중히 다루자 라는 것을 생각하거나 하는 그런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만, 하지만 이미「마음」이 만물입니다.
「만물」도 신의 자식들의 자유에 들어가고 싶은 것입니다. 아니, 마음이 물질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면, 그것은 신께 바치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월례제 등에서는 만물의 대표라고 해서 농작물을 바치지요. 사과나 채소, 콩, 쌀, 만물. 이것을 올립니다.
마음도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마음도 물질이기 때문에.
그래서, 신전에 채소나 곡식을 올리는 것을 이미지하고「이 마음(이런 더러운 마음입니다만) 이것은 예수께서 속죄해 주셨기에, 예수의 속죄를 받아들이오니, 신이시여 받아 주시길 바랍니다. 제 마음에 맺어진 많은 조상님이나 여러 동물도 포함한 대자연, 그 모든 것을 거느리고 올립니다.」라는 것은 대단한 신업인 것입니다.
우리는 새롭게 태어나는 것에 대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바란다 라고 성서에 있습니다만(「로마서」제8장 24절~25절),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형태로 메-슈사마 본인께서 나타나 주시지 않았습니까? 대단한 일입니다, 메-슈사마께서 메시아 강탄을 선언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사망 후 2천 년. 만물이 완전히 새로워진 세계 속에서 메-슈사마께서는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모든 피조물이 신의 자식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메-슈사마라는 존재를 준비해 주시지 않았어도 우리는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명으로 살아야 했었는데,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우리를 위해 신께서는「메-슈사마」라는 눈에 보이는 형태의 존재를 준비해 주시고, 예수와 연결 된「신의 자식들의 출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게다가 메-슈사마께서 새롭게 태어난다고 말씀하신 의미나, 왜 그렇게 메-슈사마께서 기뻐하셨는지, 그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던 우리에게 메-슈사마께서는 쿄-슈사마라는 존재도 준비해 주시고 그 의미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사실 더할 나위 없습니다.
이렇듯 천지는 이미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천지는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이제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마음을 신께 바쳐서 어떻게도 되지 않는다 라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분명. 마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만 적어도 제가 생각하는 것은「마음을 바친다」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도, 계속 누워만 계시는 분이라도, 만물을 영광스러운 자유로 인도하는 기쁨을 주고, 모든 피조물이 정말로 기뻐하는 그 신업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도 아무 의미도 없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하지만 사실은 그런 마음의 활동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이 번영하면 영주체종의 법칙에 의해서 그 천상의 영광이 지상에도 비추어져 옵니다.
어떻게 비추어져 오는가 하면, 신의 맑힘의 활동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형태로서는 혹독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기 때문에.
하지만 동시에 파괴와 창조가 동시에 행하여진다고 메-슈사마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가올 신세계라는 멋진 세계도 현현되어집니다.
이 파괴와 창조의 활동이라는 것은, 앞으로 점점 더 촉진될 것입니다. 천상이 빛나면 빛날수록 점점 촉진되어집니다.
그리고 그 다가올 신세계의 상징이 되는 것이 당연히 세계메시아교의 성지입니다. 메-슈사마의 성지. 천국의 모형. 메-슈사마께서는 빛나는 천상의 복사본으로서의 성지를 건설하려 하셨지요? 그리고 지금 그것을 우리도 하려 합니다. 이 일은 앞으로 계속 진행되어 갈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브라질의「물의 성지」. 이 토지를 구입했습니다.
장소는 리우데자네이루입니다. 리우데자네이루. 리우데자네이루는 이른바 코르코바드의 그리스도상이 있는 곳입니다. 상파울루가 가장 큰 도시이고, 그것과는 다른 리우데자네이루.
리우데자네이루주(州)안에서 어딘가 하면, 리우데자네이루시(市)라는 것이 주도(州都)이고, 그 수도권에 있는 이타보라이시(市). 이곳입니다. 이타보라이시.
그리고 이것은 산토스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시내에서「물의 성지」건설 예정지에 가려면, 마침 바다 위를 지나는 큰 다리가 있는데, 그곳을 자동차로 가면 마치 물 위를 달리는 것 같다고 합니다.
성지건설 예정지 안으로 들어가면 평평한 토지가 있고, 작은 강이 흐르고 있으며 연못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지 내에는 조금 높은 언덕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언덕에 오르면 리우데자네이루주 주변 경치가 360도 일대 파노라마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보는 경치는, 산토스 선생님의 표현으로는「온몸의 털이 설 정도로 감동했다」(일동웃음) 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온 몸의 털이 설 정도로 감동했다. 대단하지요.
그래서 이 리우데자네이루라는 이름입니다만, 리우데자네이루라는 것은 일본어로 하면「1월의 강」입니다. 리우가「강」이고, 데는 「의」이고 자네이루가 영어의 1월에 해당하는 단어이므로「1월」이라는 의미. 즉, 1월의 강. 다시 생각하면 재미있는 지명이지요. 하지만 어쨌든 리우데자네이루이기 때문에 1월의 강. 물의 성지에 어울립니다.
이타보라이시의「이타보라이」는 뭔가 현지 원주민 말인 것 같습니다만, 현지 말로「빛나는 돌이 숨겨진 강」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옛날 원주민이 그 땅에 갔을 때, 깨끗한 강이 있고 그 강 안에 있는 돌이 아름다워서 강에 숨겨진 아름다운 돌, 강에 숨겨진 빛나는 돌, 이타보라이시의 이타보라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이타보라이시는 리우의 중심지에서 50킬로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바로입니다. 수도권 안입니다. 그래서 리우데자네이루라는 말뿐만 아니라 이타보라이 라는 말도 강이라는 것으로, 물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타보라이시가 원래 도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이, 옛날 포르투갈에서 개척하는 사람들이 와서, 후에 이타보라이시가 되는 곳에 그리스도교 교회를 세웠는데, 그것은 세례자 요한을 모시는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런 교회가 경제활동 중심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세례자 요한을 모시는 교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고, 그리고 지금의 이타보라이시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이타보라이시는, 세례자 요한의 교회에 의해 탄생한 도시라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물의 침례자」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역할은 물의 침례입니다. 요르단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한 많은 사람에게 물로 침례를 주러 온 것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래서 최근 제가 이 말을 연발하고 있는데「이게 우연인가요?」(일동웃음) 그래서 아니 솔직히 이제 무서울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상파울루였다면, 그럼 상파울루에서 사도 바울이라고 하면서 뭔가 물에 억지로 이유를 끌고와서 말을 지어냈을지도 모르지만(일동웃음), 실제로 조금 무리가 있지요.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물의 침례 요한입니다. 그 교회를 중심으로 생긴 도시에 물의 성지가 생깁니다. 리우데자네이루, 1월의 강. 이타보라이, 빛나는 돌이 숨겨진 강.
리우데자네이루주의 물의 침례, 세례자 요한에 의해 만들어진 이타보라이시에「물의 성지」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연이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가 구입한 토지의 등기명이 포르투갈어로 Sítio Renascer(시치오 헤나세일). Sítio Renascer(시치오 헤나세일)인데 이것은 일본어로는「새롭게 태어나는 농지」라는 뜻이 됩니다. 다시 태어나는 농지, 재생의 농지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로 흔히 우리가 말하는「새롭게 태어난다」라는 것은 포르투갈어로는 renascer(헤나세르), 혹은 nascer dennovo(나세르 디 노보)이므로「새롭게 태어나는 농지」라는 의미입니다.
전 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토지를 등기할 때 사용한 말이 일본어로 하면「새롭게 태어나는 농지」입니다. 그러니까 우연이 아닙니다.(일동웃음).
아니, 세상에는 많은 말이 있습니다. 몇만 단어가 있는 가운데, 그런 말의 농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기적입니다. 우연은 커녕 기적입니다. 이것은.
역시 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시아교를 통해서 신께서 진행하고 계시는 신업에 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은 결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결혼 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가 있는 사람도 있고, 아이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가 큰 병에 걸린다든가 해서 어릴 때 죽는 일도 있습니다. 또는 계속 건강했는데 갑자기 병에 걸리는 일도 있고, 여러 일이 있습니다.
그런 인생 속에서 우리는 희로애락을 느끼고, 그리고 생을 마감해 갑니다. 우리는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생활방식 그것은 그것으로 좋습니다. 세상에 여러 일이 있으니까요.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 세상의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뭐 그런 것은 확실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모두 그 세계에서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사실은, 신을 섬기는 것이 인간의 삶의 보람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혀 그런 것 상관없습니다. 돈이 어떻다, 친구관계가 어떻다, 새로운 이것이 어떻다, 잘되어 간다. 잘 안 된다, 병에 걸렸다, 병이 아니다 – 이러한 세상입니다.
확실히 그런 것은 힘듭니다. 확실히 인생은 힘들지만, 그래도 신을 섬기지 않고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없으면 허무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허무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지요. 신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허무하다는 것도 모릅니다. 그만큼 이 인간 세계라는 곳에 푹 들어가 버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명은 진정한 삶의 보람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전하는 것, 이것입니다.
신께선 우리는 보살펴 주셨습니다. 굉장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선진국에 있는 우리에 대해 말하자면, 기본적으로는 이미 칼로리라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보살펴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아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해 줄 생각을 왜 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께서는 우리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명은 세상 사람들에게「진정한 기쁨이 있다. 신을 모르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깝다. 아깝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다. 메-슈사마의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 있다. 신의 자식이 될 수 있다. 신의 자식으로서 신을 섬기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다. 그 삶의 보람으로 당신도 살아보지 않겠습니까?」라고 세상 사람에게 전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왜 나만 계속 받으려 합니까? 우리는 항상 받고 싶다, 받고 싶다, 받고 싶다 합니다. 그것은 기아라는 현실이 있는데도 고기도 먹고 싶다, 이것도 먹고싶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죽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기 먹고 싶다, 맥도날드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나누어 주는 것이 사명입니다. 기쁨과 축복을 나누어 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삶의 보람. 기쁨. 희망. 사랑. 이것을 나누어 줍니다.
오늘, 새로운 직원분 14명(세메스 연수생 5명과 9명의 새로운 분)께서 단상에 줄을 서 주시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두 젊으시지요. 그렇다는 것은 아직 모든 신도 여러분들에게도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에게 진정한 삶의 보람을 나타내는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초래된 절대적인 힘이 이미 있습니다. 만물이 완전히 새로워져, 새롭게 태어나 신의 자식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나누어주는, 이것이 인류에게 정해진 숙명입니다. 그 숙명으로 전 인류가 산다면 얼마나 멋진 세상이 될까요?
그래서 무슨 말씀을 드리려 하느냐면, 이 구원의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전하고 계속 전한다는 것입니다.
거부당해도, 거절당해도, 백 명에 한 명이라도, 천 명에 한 명이라도, 만 명에 한 명이라도, 아 정말 그렇구나 라고 생각해 주시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존귀한 일이 없습니다.
신께 있어서는 특별히 교단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전 인류가 신의 품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뿐이기 때문에.
하지만 오늘, 이런 형태로 새로운 직원 14명, 이런 젊은 분들과 함께 우리도 일치단결하여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만물은 이미 되살아났습니다. 되살아났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는 칙칙한 것이 아니라 이미 빛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큰 기쁨을 가지고, 새로운 분들과 함께, 세메스 분들과 함께, 아프리카와 함께, 브라질과 함께, 오늘은 포르투갈에서도 오셨습니다만, 유럽과 함께, 전 세계의 신도와 함께, 이 세계메시아교의 구원을 목숨 걸고 전 세계에 알려나갑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