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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마사아키사마 성언 2023년 12월 생탄제 및 예수 성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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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144회 작성일 24-01-31 00:11

본문

생탄제 및 예수 성탄제 마사아키사마 성언

20231217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금 이사장님 인사에도 있었듯이, 저는 지난달 볼리비아와 브라질(오늘은 브라질 메시아교 부본부장님 부인이신 토모미 부인도 와 계십니다만)에 갔습니다. 이것은 신곡 감사제 때도 전해드렸습니다만, 제가 순교에서 역할을 무사히 완수할 수 있었고, 또 현지 신도와 함께 감동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 계신 신도 여러분께서 버팀목이 되어주셨기 때문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오늘 다시 한번 여러분께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사아끼 님, 참배석의 마츠무라 토모미 부인에게 포르투갈어로 정말 감동적이었지요?라고 말씀하심)

  지금 감동을 강요했습니다.(일동 웃음).감동했지요?라고 하니,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일동 웃음). 확실히 세계 신도와 우리는 항상 하나입니다만, 실제로 가서 신도와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 덕분이기에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메시아교 신도인 우리에게 국한하지 않고, 신앙인이 가지고 있는 약점, 신앙인이 빠지기 쉬운 약점, 그런 것들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뭐, 약점이라고 해도 우리는 물론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도 세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는이것을 했기 때문이 이렇게 되었다라는 이것입니다.

  신께 기도를 했기 때문에 뭔가 좋은 일이 있었다든가. 이것은 반대도 있지요. 이런 일을 해서 이렇게 되어 버렸다든가. 또 맡기고 나서 뭔가 좋은 일이 있었을 때, 내가 맡겼기 때문이다, 맡겼기 때문에 이런 좋은 일이 있었다 라든가, 또는 예를 들면 기원서. 기원서를 쓰고 기원을 올리고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을 때, 아 기원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다 라든가, 이런 여러 가지 일이 있지요.

  물론, 이런 것들 자체는 완전히 부정할 일이 아닙니다만, 다만 우리가 빠지기 쉬운 약점이나 함정은 지금 말한 것과 같은 것을 계율처럼 여겨버리고, 자신이나 남에게 부과해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쪽으로 가 버립니다.

  예를 들면, 나는 기원을 해서 이렇게 되었으니까 모두도 해야 한다, 전원 다 해야 한다며, 분명 권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기원을 올리고 있는 나는 훌륭하다. 저 사람은 왜 안하지 라든가, 나는 이 일에 대해서 맡기고 있는데 저 사람은 왜 안하지 라는 생각으로 그런 종류의 일을 차츰가르침화」「계율화해 가는, 이런 모습이 있지요. 이것이 우리의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렇게 해야만 한다 하며 자신을 묶어버리고 주변 사람들도 그것으로 묶어버리는 이 모습.

어떤 가르침이나 행동 같은 것을 일률화하려 하며 남과 자신에게 부과해 버리는 이것, 이것이 첫 번째 약점.

  두 번째 약점은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뭔가 신적인 메시지를 받았을 때(교주님 성언이나 명주님 성언, 성경이라든지 뭐든지 좋습니다만) 그런 것들을, 예를 들면 배독했습니다 라고 하는 그때, 우리는 흔히모르겠다」「실감이 안난다」「어렵다라는 말을 하지요. 모르겠다」「실감이 안난다」「어렵다

  성언을 들었을 때도 말하지요. 우리는 이 세 가지를 말합니다.

  뭔가를 듣고, 그 내용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렵다, 모르겠다, 실감이 안난다, 어렵다 라는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좀처럼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라는 것도 있지요(일동 웃음). 이 말도 자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무슨 말을 듣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모르겠다」「어렵다」「실감이 안난다」「좀처럼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어떤 말을 사용할까? 이 말을 사용할까?(일동웃음),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 물론, 그런 식으로 느끼고 있는 것 자체는 전혀 부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내용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나,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의 도망침으로써 그런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실을 말하면, 우리는 조석배 때신이시여, 당신은 살아 계십니다. 제 안에 살아 계십니다라고 말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이 신이라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지전능. 그것은 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아시는 분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렇다고 할까요, 그 분은 제 안에 있습니다 라는 기도를 날마다 올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실모르겠다」「실감이 안난다」「어렵다라고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이 일은 지금은 나는 모를지라도, 내 안에 계신 신께서는 알고 계시니까, 언젠가 필요한 타이밍에 가르쳐 주시겠군요, 감사합니다라고, 사실 그런 마음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내 안에 신께서 살아계신다고 믿는다면 말이죠. 왜냐하면 신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니까 그분께 있어서 어려운 일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받아들이기가 형편이 좋지 않을 때, 지금 말한 네 가지 말을 사용해서 신으로부터 진리를 받는 것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는 모습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두 번째 약점.

  세 번째는 지금의 두 번째 것과 반대라고 할까요, 모르겠다 라기 보다는 너무 잘 알겠고 너무 잘 받아들인다고 할까요, 그래서, 나는 죄인입니다, 미숙한 존재입니다, 너무 부족한 존재입니다 라는 그런 자세에 구애받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 있지요. 이런 대단한 일을 할 만한 내가 아닙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미흡한 존재입니다 라는 자세.

  이것도 물론, 이런 자세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우리는 극단적으로 자신을 비하하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자신을 지키려 하는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나는 이미 죄인이니까, 미흡한 존재이니까 라는 식으로 해 두면 편한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속된 말로 하면, 아니 나 같은 사람이 하며 자신을 비하함으로써 자신을 지킵니다.

  확실히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에 이르는 것은 중요하지만, 잘못하면 본래 우리는 점점 향상해 가야 하는데, 자신은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금 이대로 좋다, 변하지 않아도 된다 라는 것을 구실로 말하며, 현상 유지를 정당화하고 거기에 머무르는 것 같은 일도 있지요. 이런 모습이 우리의 세 번째 약점.

  저는 적어도 이 세 가지가, 우리 신앙자가 빠지기 쉬운 부분이자 약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어도, 아니 그게 어디가 약점이냐, 지금 바로 당신이 말한 세 가지야말로 세상 종교의 기본이 아니냐 라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예를 들면 첫 번째의이렇게 했더니 이렇게 되었다라는 것도, 보통 세상에서는 감사하면 좋은 일이 있으니까 감사합시다 라고 하며 감사행 같은 것을 합니다. 또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있으니 이타행을 계속 합시다 라는 이타행 같은 것도 있습니다.

  이런어떻게든 행()이라는 것은 세상 종교에서는 오히려 좋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분명히 말합시다, 감사의 마음을 가집시다,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 - 이러한 일들은 보통 좋은 일로 여겨집니다.

  두 번째 약점도, 어렵고 모르겠으니 열심히 공부하자, 교주의 가르침을 열심히 공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그런 것은 전혀 약점이 아니지 않는가 라고 말하는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또는 세 번째 것도, 보통은 당신들은 죄인이니까 회개하고 반성하고 구원받기 위해 제대로 돈을 내라든가, 보통 그런 것을 종교는 합니다.

  그래서 지금 말씀드린 약점 세 가지는, 세상 종교라면 보통의 이야기입니다. 원래는. 하지만 비록 이것들이 세상의 종교에서는 보통의 일이라 해도 우리 메시아교 신도들에게는 이것은 약점이 된다는 것을 저는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 말한 세 가지 약점에 공통된 것은, 결국 신과 인간이라는 존재를 나눈다 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신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위대한 신께서 계시고 그 신께 열심히 예배하는 인간이 있다, 그러한 것이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 보통 세상에서 말하는신앙입니다.

  그래서 지금 말한 약점 중 첫 번째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침저녁으로 잘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실천하고 있습니다, 감사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타행을 하고 있습니다, 맡기고 있습니다, 기원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하고 있으니 뭔가 좋은 일을 베풀어 주십시오 라는, 그런위대한 신께 대해 열심히 실천하는 인간이라는, 그런 인간의 모습이 매우 강조되고 있는 것이, 이 첫 번째의 약점의 저변에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모르겠다」「어렵다」「실감이 안 난다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는 똑같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신께 대한 작은 인간, 좀처럼 진리를 알 수 없는 인간, 그것이 인간이구나 라는 이해이지요. 모르겠다」「어렵다」「실감이 안 난다라는 것이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이해.

  이것은, 예를 들면 누군가가교주님 성언은 어렵다.라고 하면, 그 때나도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편하지요. 그래서 누군가가어렵다라고 하면, 우리는 나도 나도 해 버립니다.

  이 두 번째 약점도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그런 인간의 입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번째의 회개에 대해서도 신께 죄를 범해 버린 비참함으로 어리석은 인간, 그 인간이회개합니다. 저는 부족한 존재입니다.라고 함으로써 미흡한 인간의 입장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지요.

  그래서 제가 말한 약점이라는 것은, 이런 인간의 입장을 강조하기 때문에 약점입니다.

  하지만, 이 약점이라는 것은, 신과 인간이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은 당연하다 라고 하는, 종교에 있어서는 약점도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감사행을 하라, 열심히 신의 말씀을 이해하라, 회개하라 이것으로 됐다 라고 할까요, 세상 종교에서는 이것을 좋다고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세상 종교가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신도에게 계율을 부과하고, 가르침을 부과하고, 회개를 부과하고, 그리고 위대한 신에 대해나는 신을 신앙하고 있다」「신앙심 있는 인간이 훌륭하다라는 세계, 그것을 좋다고 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신 앞에서 열심히 실천하는 작은 인간, 열심히 신으로부터의 메시지를 이해하려는 인간, 회개하고죄인입니다라고 하는 겸허한 사람 - 세상에서는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신앙인이니까요.

  하지만 메시아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메시아교는 어떠냐 하면, 오늘 명주님 성언에도 있었듯이, 이전 시대에는 죄라는 것에 관해서는 감사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면 되었지만, 메시아교가 되면서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리스도는 재림하셨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명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강화1951925).

  메시아교 신자가 되면 위대한 신적인 존재에 대해 예배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리스도는 재림하셨다, 이것에는 깊은 신의 뜻이 있다, 머지않아 자세히 설명할 것이라고, 그렇게 명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깊은 신의 뜻이라고 하시니까, 당연히 오직 명주님 한 분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면 깊은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요. 게다가 이전에도 말씀드렸듯이(결단의 때2020121) 만약 명주님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면, 메시아교 신자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그리스도에게 예배하지 않아도 된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교 신도가 되면 더 이상 그리스도라는 존재에 대해 예배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깊은 신의(神意)의 의미는, 요는 메시아교 신도 전부가(사실은 전 인류가 받을 수 있지만) 메시아교 신도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그런 의미이며, 명주님께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재림을 함께 받은 존재로서 간주해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는 그리스도에 대해 감사하고 예배드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리스도가 재림하신 이상 더 이상 그리스도에 대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그것은 만약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자신의 본체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기도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리스도라고 해도 그것은 신의 혼입니다. 명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은 메시아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된다는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작은 인간의 입장으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혼의 입장으로서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자신의 본체가 그리스도의 재림이자 신의 영이라면 예배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자신이그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런 말을 들으면 이것이어렵다가 됩니다.

  왜어렵다라고 느끼냐면, 그것은 우리가신앙이란 것은 작은 인간이 위대한 신께 바치는 것이다. 그것이 신앙이고,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세계에서 멈춰 버려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메시아교가 하려 하는 것은 신앙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교는 그저 열심히, 감사합시다, 열심히 이타의 실천을 합시다, 신께 기도합시다 가 아닙니다. 이미신의 자식이라는, 신과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 메시아교입니다.

  그래서 실은 우리는, 두 번째 약점에 있었던모르겠다라고 하는 쪽이 아니라 알게 하는 쪽이고, 회개하는 쪽이 아니라 회개 시키는 쪽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본체는 신의 쪽이기 때문에.

  그래서 메시아교의 가르침은신앙이라는 말로는 다 파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작은 인간이 신께 열심히 바치는 것이 신앙이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러한 인간 자신이 만들어 낸신앙이라는 작은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든 것에 축복을 나누어 준다는, 그러한 위대한 업에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메시아교 신도인 이상, 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보통의 감각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신이라는 것은 위대한 존재이다, 그곳에 어리석지만 있는 힘을 다해 살고 있는 인간이 있다 라든가, 혹은 신 따위는 없다, 인간이 노력해 간다 라는, 그러한 도식이 완성된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런 것이 전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명주님께서도 완전히 세상의 상식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셨습니다만, 우리도 세상 상식에서 벗어나메시아교라는 것은 대단히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것을 항상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면 바로 세상의 생각에 휩쓸립니다.

  그래서 오늘 명주님 성언은, 이미 그리스도는 재림하셨다, 그것에는 깊은 신의 뜻이 있다는 내용으로, 앞으로 한 사람 한 사람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성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명주님 성언의 전반 부분은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해 쓰여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만인의 죄를 한 몸에 짊어지고 그 죗값을 치러주셨다고 적혀 있지요.

  여기의만인이라는 것은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만인이라는 것은일만명이라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라는 것은의 죄입니다. 우리들의 죄. 한 사람 한사람의 입장에서 말하면의 죄. 그 죄값을 치러주신 것에의 큰 사랑에 감사드리고 예배하며 기도하여라.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것으로도 괜찮았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을 받아들인다는 메시아교 신자가 되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진정한 메시아교 신도가 될 수 있는 길에 들어선 것은, 겨우 지난 몇 년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명주님께서지금까지는 그것으로 괜찮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해 왔습니까?

  지금까지는, 그것으로 됐다, 앞으로는 필요 없다 라는 것은, 지금까지는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 지금까지는 필요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대애(大愛)에 대해 우리는 오랫동안 감사드리고 예배하고 기도해 왔습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입장을 받고 세상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누어주는 대단한 신업에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그 신업을 우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알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 전 몇 십년 동안의 신앙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대애(大愛)에 감사하며 예배하고 기도해 왔습니까?

감사하다 - 나의 죄를 속죄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예배하다 - 예수님을 제전 등으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예수님께 참배하겠습니다.

기도한다 - 예수님의 대애(大愛)에 깊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그런 것 해 왔나요? 명주님께서지금까지는 그것으로 괜찮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조차도 해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언을 배견하면, 명주님께 있어서는 메시아교 신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재림의 신업을 섬기는 것은, 예수님께서 만인의 죄를 속죄해 주신 사랑에 대한 감사, 예배, 기도, 이것을 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해 왔나요?

  그것을 하지 않고(그것을 거치지 않고) 명주님께서 바라시는 진정한 메시아교 신업에 쓰임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안 해 왔지 않습니까? 분명히 말하자면.

  왜냐하면 교주님께 기독교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런 난리가 난다는 것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예배드리고 기도해야만 한다면, 교주님께서 그리스도교 분과 접촉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명주님께 있어서는 메시아교라는 것은 기독교가 바탕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명주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전제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제가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죄라는 것에 관해서도 우리는 자칫하면, 명주님께서는 그렇게 회개에 대해서는 설하시지 않으셨다 라는 정도로 생각해 오지 않았나요?

  하지만 오늘 명주님 찬가는 굉장히 엄합니다. 최후의 심판이 되어 후회한다면 이미 늦었다, 심판의 불은 무시무시하다, 그와 같은 엄청나고 엄한 신의 심판이 오고 나서 회개해도 이미 늦었다는, 그런 찬가 였습니다.

 (하늘이외쳐 지진과-천둥이 울려퍼지리 최후의--의 무서운-그모양

 「--의 불의섬뜩함이여 하--을 바라보며기도해도 이미늦었노-

 「꿈에서조차 생각할수없도다 크--큰 심판의-모습이 무서운것이니라

 「-고비가 닥쳐오고나-서 후회한-들 이미늦었다는걸 명심하라지-).

  뭐 이것은 사실을 말하면, 이미 늦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확실히 말하자면.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시간에 맞출 수 없다 라는 정도로 말하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회개하라라고 해도, 가까운 시일안에 회개하겠습니다, 저는 그런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나쁜 짓을 하면 회개하겠습니다 라든가 하며, 신의 심판을 만만하게 보고 있기 때문에 명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늦었다, 시간에 맞출 수 없다, 회개하지 않으면 너의 마음은 이런 세계가 되어 버린다고, 그러한 것을 명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명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자신은 죄인이고 회개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자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각이 없습니다. 자각이 없기 때문에, 명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애초에최후의 심판이라는 말조차도, 신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말을 하지 않으면 회개의 마음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제전에 일부러 무엇을 위해 와 있는가? 사람에 따라서는 모처럼 이런 곳까지 왔는데 회개하라느니 우리는 죄인이라느니,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매일의 삶의 모습을 신께서 인정해 주셔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죄인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고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표현보다 명주님의 표현이 훨씬 엄합니다. 더 이상 시간에 맞출 수 없다, 이미 늦었다, 이미 늦었다고 단언하고 계시니까요.

  이미 늦었다면 어떡합니까? 그것은 이미 죽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이제 끝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이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신으로부터 생명을 빼앗기면 사실 이제 끝입니다.

  그러니까 왜 우리는 이런 자리에서 이런 여러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냐면, 그것은 우리는 인간의 진정한 삶의 방식에 대해서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신께서 이런 곳에 모이게 해 주셔서, 우리가 함께 그 신의 마음을 받으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명주님의 일곱 번째 찬가에도 있었듯이, 신께서 심판을 내리시는 것은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이지요. 높고 낮음,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왜 모든 사람을 신께서는 심판하시는가? 그것은 세상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그렇게 명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높고낮음의 차별짓지않고서 대신님께선 심판하실것이리 세상살리기위해 )

  「세상을 살린다.우리는 세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나요?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신께서 심판하시는 것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는 실은, 지금은 살아있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명주님께서는 심판을 받고 살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은 죽은 것 같은 존재입니다.

  명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는 너희가 살아있다고 생각하지만, 회개하고 신의 심판을 받지 않으면 너희는 살아있는 존재도 아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살아있다, 살아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 명주님께서 보시기에는아니 죽어있다」「신의 심판을 받지 않으면 너는 죽은 것과 같은 존재이다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심판 때에 신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제전 찬가의 첫 번째에 있었지요. 사랑의 힘이 나타나지요?

 (최후의최후 심판의그날에는 대-신님의 사랑의대-신력 현현하게되리라.)

  그러니까 사랑이 있는 심판은 뭐냐 하면용서한다밖에 없지 않습니까?

  「세상을 살리기위해인 것이죠? 살리고 싶다면용서한다밖에 없지 않습니까?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하면 죽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심판하는 것은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세상을 멸하기 위한 심판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는 것은, 최후의 심판이다, 엄격하다, 심판이 온다, 이미 늦었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만, 만약 살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심판은용서한다입니다. 너희들을 용서한다입니다.

  그러니까 회개라는 얘기를 듣고, 왜 나는 이렇게 죄인이다, 죄인이다 라는 말을 들어야만 하나, 듣기 싫다 라고 하며 회개하지 않고 끝나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은 존재로 끝나버립니다.

  하지만 신과 명주님께서너희는 사실은 죽은 것과 같은 존재이지만 용서하고 살려주겠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은, 사실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자각을 하게 하는 기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럼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라고 하며, 살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면, 그것은 명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입장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신의 측의 입장입니다. 그리스도나 메시아라는 것은, 최고 최귀의 신의 측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신께서는 무엇을 하실 것인가 하면, 신께서는 축복을 나누어 주시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달 초 신곡감사제 때에도 잠깐 말씀드렸듯이, 지금 신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들을 용서한다, 살아라, 그리고 축복을 나누어 주는 존재가 되라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먼저 만인의 죄를 속죄한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미 평생 죽은 채로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신께서는심판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명주님께서는 최후의 심판 때에 신의 사랑이 나타난다고 말씀하시지요?

  인간의 사랑은, 한때는 사랑했지만 이제는 사랑하지 않는다 라는 사랑이지만,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는 것은 신의 사랑이고 그것은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있는 심판은 뭐냐 하면 그것은용서한다입니다. 분명 신의 앞에 가서 신의 심판을 받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신의 앞에 가면 신께서는 우리에게용서한다」「살아있는 존재가 되어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신께서 심판하시는 것은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이지요?

  그리고 신께서는살려줄테니 나와 같은 일을 해 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축복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신의 마음에 생겨나는 마음 등에 대해서축복이 있기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는 유전정보로서 많은 조상님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부정적인 마음이 생겨납니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고 싶은 마음이나, 저 사람이 마음에 안 든다라든가, 그런 마음.

  그래서 뭔가 가정에서나 일 등을 통해 그런 마음이 들 때는 물론 이 세상에서 제대로 대응해야 할 것은 있지만, 마음속으로는이렇게 내가 옳다는 정당성을 주장한 채, 결국 신의 용서를 받지 못하고 멸해버린 사람들의 마음이 지금 내 안에 생겨나는군요라고 생각하고 그리고당신들은 이미 용서받았습니다. 살으십시오.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나누어 주는 존재가 되십시오.라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대단한 신업에 쓰임 받기 위해, 먼저 첫걸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만인의 죄를 한 몸으로 떠맡으셨지요? 그렇게 명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한 몸이기 때문에 한 사람, 하나의 몸입니다. 예수라는 한 사람의 인물이 그렇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왜 그런 일을 해주셨나면, 그것은 명주님께서대애(大愛)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인류에 대한 예수님의 큰 사랑때문에, 그가 우리의 죗값을 치러주셨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교 신업에 쓰임 받고 싶다면 이 첫 걸음을 제쳐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세월, 이 크리스마스라는 때를 어떻게 보내왔나요?

  1223일은 명주님 탄생일.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대해서는 어땠나요? 뭐 여러가지였지요. 명주님이 위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라는 것은 명주님과는 관계가 없다는, 그런 생각도 있었지요.

  명주님께서 위라는 것은, 물론 명주님께 맡겨진 사명의 크기라는 것은 있지만, 그것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깎아내리거나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223일 명주님의 생탄은 축하해도, 크리스마스는 무시하고 관계없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세상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있으니까, 그 분위기를 타서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한다든가, 크리스마스 디너라든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든지 그 정도는 하는, 결국 예수님에 대해서는 어중간하게 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이 제전의 장소에서 한 발짝 밖으로 나가도 알 수 있듯이 어디든 크리스마스 분위기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얼마 전에 큰 딸 유치원에 발표회가 있어서 갔었는데, 거기서 연극과 노래를 하는데 큰 딸은 올해로 세 번째 발표회였습니다. 올해는 맨 마지막에 다른 학년의 원아들도 포함해서, 유치원 전체가 마지막으로 모두 크리스마스 송을 불렀습니다.(큰 딸 유치원은 기독교계 유치원이 아니라 일반 유치원입니다). 저는 일본의 다른 유치원도 보통 이렇게 하고 있는지는 모릅니다만, 저에게는 이 3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송을 두 곡 부르고, 그 발표회를 마무리하는 제일 마지막에, 원아 전원이 하나의 대사를 큰 소리로 말했는데(이것은 제가 유치원에 그런 것을 하면 어떻겠냐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그런 힘이 없습니다(일동웃음). 유치원 선생님들이 결정한 것입니다) 발표회 마지막 원아들의 대사가메리 크리스마스!였습니다. 그것을 원아 전원이 큰 소리로 말하고 발표회가 끝났습니다.

  그런 것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저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놀랐다고 할까요.

  왜냐하면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의 의미는, 크리스마스는그리스도」「마스(미사, 예배의 뜻)이기 때문에,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도의 탄생의 축제라는 뜻으로, 그 그리스도의 탄생이메리라는 것입니다. 메리는 영어로 즐겁다, 기쁘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보통 유치원 발표회에서, 그 발표회를 끝맺는 마지막에그리스도의 성탄은 기쁩니다!라는 것을 원생 전원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아니 그것은 일본이 점차 서양화되고 있기 때문이다라든 등 어떤 이유를 말해도, 말로서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그리스도의 성탄은 기쁜 일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선생님들과 보고 있는 부모님들도 보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이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모님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이것은 전혀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본래, 예를 들어 제가 영국에 있었을 때, 그럼 크리스마스 시기에 영국인 모두가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메리 크리스마스그리스도의 성탄을 축하합니다라는 의미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일본도 그렇습니다만 영국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나 여러 민족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보통홀리데이 시즌 축하한다와 같은 중립적인 말을 씁니다. 왜냐하면 이슬람 사람에게 있어서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그것은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의 그리스도교인도 없는 이곳 일본에서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탄은 경사스럽다 라는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은 이제는 짧게메리 크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일동 웃음소리). 네 글자. 메리크리.

  그러니까 왜 그리스도교인도 거의 없는 이곳 일본이나, 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쓰거나 크리스마스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면, 그것은 결국 인류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라는 것이 의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전 인류의 죄를 한 몸에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속죄해 주셨지요.

  그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일본인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것에도 저항이 없으며, 크리스마스 디너나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여러가지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하는 것에도 저항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있어서 소중하시며,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떠 맡으셨다 라는 것을 우리가 은근히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그렇다면 종교인인 우리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원래는.

게다가 메시아교인 우리는, 명주님께서 메시아교는 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 하셨고, 또 오늘날 그리스도 재림의 성언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 오지 않았지요. 명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내 죄를 혼자서 떠맡아 갚아주신 사랑에 감사합니다」「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을까요?

  왜냐하면 명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큰 사랑에 감사드리고 예배하며 기도한다, 지금까지는 그것으로 됐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것조차 안 하지 않았습니까? 크리스마스 시기에 우리는나는 예수님 사랑에 감사합니다라고 했었나요?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교 신도인 우리는 더더욱 예수님의 사랑에, 사랑이 아니라 대애(大愛)이지요, 그것은 우리로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큰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해 주신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여야 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명주님 찬가

 「--은 이몸도책망하지 아니하시고 크고도큰행복을 풍부히주시도다

이 몸도이기 때문에 명주님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명주님께서는 당신을 그냥죄인이 아니라, 죄가 많은 존재라고 하십니다.

  명주님 당신께서 이렇게 죄 많은 저입니다만, 신께서는 그런 저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큰 행복, 행복을 베풀어 주고 계신다는 그런 찬가입니다.

  우리는 보통 뭔가 신의 은혜가 있으면, 오늘 약점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감사를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 제대로 신앙하고 있기 때문에 신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명주님께서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명주님께서는 당신이 죄가 많으신데도 불구하고(그런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신께서는 은혜를 주고 계신다, 좋은 일을 일으켜 주고 계신다 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일방적이라는 것입니다.

  신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이 좋기 때문이라고 오늘 들은 성서(로마서39~31)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행위에 의한 의()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이것을 했습니다」「십계명을 지켰습니다」「이타행을 했습니다」「남들에게 좋을 일을 했습니다」「신을 사랑합니다이기 때문에 신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완전히 반대로, 그런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우리라도 신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한 명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는 한 명도 없다, 모든 것이 죄 아래에 있다고 그렇게 성경에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신께서는 일방적으로 행복을 베풀어 주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행위에 따른 의()라면 자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기원을 했기 때문이다, 맡겼기 때문이다, 이것을 했기 때문이다, 저것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신앙을 하고 있다,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하고 있다, 저 사람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라면 행위에 따른 의가 되기 때문에 자랑합니다. 자신이 잘 실천했기 때문에 이런 은혜를 받았다고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모습과는 전혀 관계없다 라고 할까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우리는 죄 많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께서는 그런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일방적으로 행복을 베풀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에 이행복이란 무엇일까? 큰 행복 풍부히 주신다행복이란 무엇일까 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계속, 이것은 명주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죄 많은 존재이지만, 신께서는 옷이나 음식, 그런 의식주에 관련된 것이 있지요. 그런 의식주에 대해서 사실은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우리이지만, 신께서 그런 의식주라는 행복을(물질적인 행복을) 베풀어 주신다는 그런 의미에서의행복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찬가를 계속 배견하며 제가 생각한 것은, 여기서 말하는행복은 지금 말한 것과 같은 물질적인 것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오늘도 계속 이야기하고 있듯이, 사실은용서입니다.

  왜냐하면 신께서는 죄 많은 이 몸도 책망하지 않으시고 뭔가를 주십니다. 신께서는 책망하시는 대신 무엇을 준비하셨나요? 죄 많은 사람이 있다, 책망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책망하는 대신에 신께서는 어떤 행복을 준비해 주실까요?

  그것은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신께서 주시는 것은, 그것은용서입니다.

  그래서 이 찬가에 있는행복용서라는 것입니다.

저는 죄가 많고 사실은 책망받아 멸해버릴 존재인데, 신께서는 용서라는 큰 행복을 풍부히 베풀어 주신다는, 그런 내용의 찬가라고 생각합니다.

  풍부히 주신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죄가 많다 라는 말과 상응하고 있지요. 명주님께서는 하나의 가벼운 죄를 범해버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죄가 많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 무거운 죄에 대해 신께서는 그 죄를 모두 덮어주시고도 남을 용서라는 사랑을 풍부히 베풀어 주시고 죄인인 우리를 감싸주신다, 이것이 큰 행복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교사 중 한 사람이었던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됐다는 그 절대적인 가치 때문에 이 세상 모든 것을 분토로 여긴다고 하고 있습니다(빌립보서38).

  분토라는 것은 배설물 등이 섞인 흙이기 때문에 어떻게도 쓸 수 없는 것이지요. 바울에게는 예수님을 통해용서라는 행복을 알게 된 것에 의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도 전혀 상관없다, 왜냐하면 세상의 행복이라고 불리는 것은 자신에게는 분토와 같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시아교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용서의 행복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 다음 단계인 너희는 신의 자식인 메시아로서 새롭게 태어나 예수 그리스도나 명주님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누어 줄 임무가 있다, 그것이 너희의 진짜 모습이다 라는 행복에 대해서도 명주님께 가르침 받고 있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이 행복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분토와 같은 것이다 라고 할 정도의 대단한 행복이었지만, 우리는 다음 단계의 행복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용서를 받았습니다,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라고 한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축복을 나누어 주는 존재가 되라는 단계입니다. 신의 자녀가 되어 기쁘고 즐겁게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나누어 주는 신업에 쓰임받아라 라는, 그런 행복까지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용서의 행복을 안 것만으로도더 이상 이 세상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정도였는데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아무리 그런 말을 들어도, 아니 나는 아직 이것을 손에 넣지 않았다, 저것도 손에 넣지 않았다, 돈도 모자라다, 이것도 모자라다, 저것도 모자라다 - 그런 말만 하고 있지 않나요?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요?

  「마사아끼님, 그것은 다 압니다. 종교적인 얘기는 다 압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 이렇게 이루지 못한 것이 많지 않습니까?라고 하지요, 우리의 자세는.

  게다가, 그런 자세를 가진 우리들조차, 신께서는 용서하시고 눈감아주시고 살려주고 계십니다. 사실이라면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는 한마디로 끝입니다만.

  이렇듯 신께서 얼마나 관대한 마음으로 임해주시는지, 적어도 그것은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께서는 강제가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언젠가나는 신께 대해 얼마나 자만하고 있었는가? 예수님의 속죄를 업신여기고 명주님의 진정한 복음도 업신여기고, 이 세상을 주체로 해서 살아온 나에 대해, 얼마나 깊은 대애(大愛)를 가져 주셨는가?라고 깨달아 주기를 바라시고, 지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조용히 살아계십니다. 왜냐하면 신께서는제 안에 살아계십니다이지요? 신께서는 우리 안에 살아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있어 무엇이 진정한 행복이냐 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속죄와 명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메시아로 새롭게 태어나는 길, 이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우리는 명주님은 물론 받아들였지만, 하지만 그 토대가 되는 예수님의 대애(大愛), 그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예배하는 일은 없었지요? 하지만 오늘은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생탄제 및 예수 성탄제이기 때문에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분명 명주님께서는, 이제 메시아교 신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재림을 받는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거기서 잘난 척하며나는 신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대단한 존재이다하며 우쭐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서 사람이지않으며 신이면서 신이지아니한 나의몸생각하니 

라는 명주님 찬가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신의 측으로서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입장도 있습니다만, 사람의 입장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단지 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이기 때문에 훌륭하다, 내 말을 들으라는 식으로 자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나는 죄 많은 존재였던 것을 용서해 받은 것도 있기 때문에, 그 입장으로서는 예수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신의 입장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사람의 입장만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정한 행복을 잡을 수 있나요?

  하지만 우리는 명주님과 예수님 두 분 덕분에, 진정한 행복의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좀처럼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속죄가 대단한 행복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바울처럼 세상의 것들이 분토라고 생각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록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우리일지라도 신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명주님의 참된 위대함도 가르쳐 주셔서 우리를 큰 사랑으로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명주님의 생탄과 크리스마스가 다가온 이 시기에, 신께예수님과 명주님께서 구축해 주신 길을 받들어 당신을 섬기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낸다면, 신께서도그렇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정말 기쁜 일을 맛보게 해 주실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신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은예수님의 속죄의 피명주님이라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신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무엇보다도 큰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신께서는그것은 너에게 이미 주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미 주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그런 신으로부터의 큰 행복, 큰 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우리는, 그 신의 대애(大愛)에 명주님과 예수님을 선두로 해서 조금이나마 보답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 크리스마스 시기를, 그런 것을 확실히 가슴에 두고 여러분과 함께 보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