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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고백」마사아끼사마 성언 2024년 3월 1일 풍양기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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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159회 작성일 24-05-0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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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기원제 마사아끼사마 성언

202431

 

진실의 고백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중부 교구와 서일본 신도분들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곳에서 오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풍양기원제인데, 이것은 씨앗입니다(마사아끼님, 신전 중앙에 있는 흰 상자의 제물을 가리키심). 이 하얀 것, 이것은 씨앗입니다. 씨앗을 보내주신 분 감사합니다.

  명주님께서는자연농법이라는 것을 호소하셨고, 그리고 채소와 쌀이 맛있어지면 모두 육고기가 아니라 차츰 채소를 먹게 되고, 그리고 장래적으로는 인류 모두 채식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육고기만 먹게 되면 다툼이나 전쟁 같은 것을 많이 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채식에 대해서 명주님께서는 몸에 좋을 뿐만 아니, 정신 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대단히 강조하고 계십니다. 채식을 함으로써 다툼을 좋아하지 않고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이렇듯 자연농법을 함으로써 채소와 쌀이 맛있어지고, 그것을 모두 먹게 되어 몸 상태도 좋아지고, 정신면, 인간의 마음도 좋아져서, 과적으로 다툼이 줄어든다 - 이것이 명주님의 자연농법의 비전입니.

  당연히 자연농법이라는 것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명주님의 사적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오늘 씨앗을 올렸습니다만, 이 씨앗들이 지금 말한 것과 같은 명주님 마음의 실현을 위해 우리와 함께 신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쓰임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교주님의 기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신전에 올린 이 채소나 과일도(마사아끼님, 세 분의 제물을 가리키심), 이것은 이전에는 가게에서 구입한 것을 올렸었는데, ()을 추진함에 있어서, 작년 신곡 감사제부터는 신도분들이 헌상 해 주신 농작물 등을 올리고 있습니다. 작년 12월부터입니다. 이번 달에 헌상 해 주신 농가분들 감사합니다.

  오늘 배독한 성서(로마서111~122) 중 한 부분에자신의 살아있는 몸을 바치는 것이 영적인 예배라고 했습니다만, 것은 우리 마음인 것입니다. 그것을 바치라는 것은.

  물론 가게에서 산 것들도 신께서는 축복해 주시지만, 하지만 여기에 올려져 있는 것은 우리를 대표해서 신도 분들이 길러 주신 것이기에,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동료, 형제자매가 길러 준 농작물과 함께 신께 바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본부 참배를 위해 농작물을 보내주신 분들(평소 자연농법에 힘써주시는 분들)에게 우리 모두 감사한 마음을 갖고자 합니다.

 

  최근 저는 어떤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평소에는 TV를 거의 보지 않지만 조금 신경이 쓰이는 화제가 있어서, 그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어느 나라에 독재자 같은 사람이 있는데,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고자 그 독재자와 싸우는 정치가(활동가라고 할까요) 그 분의 다멘터리였는데, 그 주인공이 독재자와 그 독재자를 중심으로 한 부패한 정치에 대항해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인물은 그 독재자에 의해 독살 당할 뻔했는데, 어떻게든 살아남다른 나라로 가서 그곳에서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보같으면 그냥 그 나라에 망명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바꾸고 싶기에 다른 나라로 망명하여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조국으로 돌아가 싸우겠다며 귀국합니다.

  귀국을 하는데, 공항에 도착하자 바로 날조죄로 연행되고 그리고 그대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참고로 이것은 러시아의 나발니 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제 인상에 강하게 남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멘터리 마지막에만약 당신이 살해된다면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시지를 남기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입니다. 론 이것은 잡히기 전에 녹화한 것이지요.

  그때 그의 대답은 자기가 만약에 살해당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청난 힘이 있기 때문이다, 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해서 이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포기하면 안 된다, 선인은 포기하면 안 된다, 선인이 포기하는 것이 악에게는 가장 좋은 것이니, 선인은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우리의 힘을 합치자 라는 그런 메시지로 이 다큐멘터리는 마무리가 됩니다.

  그 메시지가 제 안에서 뭔가, 교주님의 일이나 교단 정화와 결부되어 저는 매우 감동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는 결국 최근에 아마 독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들어가 있던 교도소에서 죽었지요.

  그는 한때 독일에 있었는데 그대로 독일로 망명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한 번 독살될 뻔했기 때문에 돌아가면 반드시 살해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옳은 일을 위해(자신이 생각하는 선이라는 것을 위해) 말 그대로 목숨을 건 것입니. 돌아가서 붙잡히고 그리고 또 독살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웠습니다. 저는 그런 그의 모습에 매우 감동했습니다.

  우리는 명주님을 생각할 때,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같은 내용은 그다지 의식하지 않습니다만, 오늘 배독한 명주님 성언이 있었지요. 이것은 195024, 메시아교 개교 직후의 명주님 인터뷰입니.(인류 구제와 세계 평화에 공헌 세계메시아교 탄생의 의의와 사195024)

  먼저, 가장 처음 질문은 대선생님은 왜 이번에 교주가 되셨냐는 것인데, 그것에 대해 명주님께서는 신의 대행자로 표면으로 나왔다고 말씀하셨고, 다음 기자 질문이신교(新敎)의 신교리는 무엇입니?입니다. 세계메시아교 라는 새로운 종교의 신교리가 무엇인가, 세계메시아교의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가 라는 그런 질문입니다.

  명주님께당신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이기에, 이것은 메시아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에 명주님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실까? 라고 생각하는 중,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예를 들면 뭔가 조레이로서 병을 고쳐 사람들치유해 간다든가, 아니면 여러 활동을 통해서 지상천국을 건설해 간다든가, 그런 것이라고 상상하지요.

  하지만 명주님의 대답은 전혀 다릅니다.

  참고로신교의 신교리는 무엇입니까?의 다음 질문은 유명한계메시아교의 세계적인 의의는……」이라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듯이 명주님께서는 메시아교는 기독교와 호응해 나가는 것이라고 대답하시지요.

  메시아교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메시아교의 세계적인 의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명주님의 대답 중에 조레이의자도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명주님관으로 보면 놀랍지 않나? 왜냐하면 보통 우리는 명주님이라고 하면 조레이이며, 조레이의 빛으로 세상을 맑혀가는 것이 명주님의 가르침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신교의 신교리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뭐라고 대답하셨냐 하면, 명주님께서는 메시아교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선악을 실히 구별해 가는 것이다, 선을 크게 돕고 그리고 악을 멸한다, 것이 신의 의지이다, 그리고 세계메시아교라는 것은 인류 세계로부암흑면을 철저히 제거하는 요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계메시아교 라것은 인류 세계로부터 암흑면을 철저히 제거하는 요새. 여러분, 이것이 세계메시아교입니다. 우리 세계메시아교.

  「악귀들과의 싸움(일동 웃음)이라고 하는데, 대단한 표현이지요. 악귀들과의 싸움이 여전히 계속되지만 이것을 참고 나아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메시아교 신도라는 것은, 우리는 이 명주님 성언의 정신을 따라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선악이라는 것은 여러 측면이 있어서,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의 여지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 한 사한 사람의 생활 속에서 뭔가 싸워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이 있다고 각합니다. 분명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은 다르때문에 그 싸움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 처한 상황 속에서 선과 악의 싸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매일의 생활 속에서 우리는 명주님의인류 세계로부터 흑면을 철저하게 제거하는 요새로서의 나이다 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까요? 그것이 세계메시아교의 가르침이지요? 명주님의 가르침이지요? 교리라는 것은 어려운 말입니다만, 여기의 문맥에서의 의미는 교의(敎義)입니다. 그러니까, 세계메시아교의 르침, 그것은 인류 세계로부터 암흑면을 철저히 제거한다 라는 가르침.

  우리는 명주님 성언의 전체를 이미지로 할 때, 그 이미지의 테두리 안의 한복판에 지금 말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 하지만 이 선악은 한가운데에서도 한가운데입니다. 왜냐하면신교의 신교리가 무엇입니까?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에.

  그래서 메시아교인 우리는 인류 세계로부터 암흑면을 철저히 제거하는 요새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이 명주님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할 우리인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선악을 확실히 구별하는 것보다, 명주님께서정도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지 않은가 라든가,대승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라든가,()가 중요하다 라든가, 뭔가 그런 것을 말하며 이 명주님의 자세에서 도망치고 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도망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편합니다. 선악을 분명히 해 가는 것, 선악을 구별해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을 자신에부과하고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니까요. 남에 대해 라고 하기 이전에, 자신에 대해 그 마음을 부과하고 살아간다, 이 명주님의 신교리의 자세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 다른 명주님의 성언을 가지고 와서 명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명주님 모습과는 다른 명주님 모습을 직접 만들고, 그리고 명주님이라는 존재는 이런 존재이다 라고 말하는 모습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인류 세계로부터 암흑면을 철저히 제거한것이 아닌 명주님 모습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선악을 나누는 것에 대해 확실히 하셨습니다. 명주님께서는 신앙 즉 정의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신앙 즉 정의. 신앙이라는 것은 정의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명주님께서는, 보통의 세상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악도 필요하다 라는 생각을 수백 수천 년이나 계속해서 가지고 있어 그 결, 세상과 타협해 살고 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고 있는가 하면, 그것은 악을 이겨낼 만한 강한 힘을 가진 종교가 없기 때문에 그런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메시아교는 다르다, 악을 이겨내는 힘 있종교, 이것이야말로 메시아교이며, 우리 메시아교야말로 신앙 즉 정의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신앙 즉 정의195063).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약간의 악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명주님께서는 그런 타협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은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명주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 와서 입니다만, MOA가 교주님께 실행한 미·도청·도촬이라고 하는 행위는, 명주님의신교의 신교리로 보면 이미 논외입니다.

  교주님께서는 도쿄역 찻집에서 그리스도교 친구를 만나셨습니다. 도쿄역은 여러 사람이 오는 곳이지요. 호텔에서 숨어서 만나셨다면 모르겠는데 도쿄역입니다. 일본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 하나인 도쿄역의 찻집, 누구에게나 보일 수 있고, 누구에게나 이야기들리는 곳에서 친구와 만나셨다는 것은 당연히 아무것도 숨기고 계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교주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으면교와 호응한다는 명주님의 성언에 보답하기 위해 이렇게 하고 있습니라고 하는 것만으로 끝날 일을, MOA 사람들은 숨어서 촬영을 하고 열심히 야단을 떤 것인데 왜 그랬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본래 명주님 신도라면 선악을 확실히 구별하여 선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명주님 모습의 중심에 없었기 때문에, 미행이나 도촬을 한다는 것조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 버리는 모습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 옛 동료가 그랬으며,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 선과 악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감각이 틀렸다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문화에 따라서는, 선이 어떤 문화에서는 악인 경우도 있지요. 그렇지만 그런 뭐라고 할까요, 이론을 내세우는 것은 놓아두고 저는 명주님께서는 옳은 일은 옳은 것이다, 나쁜 일은 나쁜 것이다, 그래서 옳은 일을 하자, 선한 사람들이여, 멋진 세상을 만들어 가자 라는, 그런 자세를 관철하려 하신 명주님시기에, 저는 신께서 명주님을 축복해 주시고,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성공이라고 할까요? 종교 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해 주신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려움이 많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세계메시아교는 성지가 될 토지, 메시아성당 건설 예정지를 구입했는데, 이것은 부()이지요. 이런 재산이나 부()를 신께서는 지금, 세계메시아교에 은혜를 주고 계십니다.

  토지도 그렇고, 또 활동하는 자금이나 전종자 월급이라든가, 그런 것이 있지요. 왜 이런 것들을 신께서는 메시아교에 은혜를 베풀어 주고 계실까요?

  그것은 왜 그러냐면, 그것은 정의를 관철하시는 명주님을 계승하신 교주님께서 2017년 입춘의 날에 일어나주셨기 때문입니다.

  일어나지 않겠다 라는 것은 교주님께 있어서 편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나쁜 일은 어쩔 수 없고,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이런 일도 있으며, 나는 사실은 이런 것을 말하고 싶지만 뭐 어쩔 수 없다 하시며 만약 교주님께서 일어나지 않으시고 타협하셨다면, 저는 신·명주님께서 지금 메시아교의 여러 부()를 축복해 주시는 일은 없었으며,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입춘의 날, 교주님께서는 당신이 어떻게 될지는 도외시하시고 일어나 주셔서, 교단의 실정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 아까 이야기했던 다큐멘터리의 사람처럼 뭔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교주님께 나가라고 MOA는 주장했기 때문에.

  하지만 교주님께서는 명주님께서 가지고 계셨던신교의 신교리, 이것을 당신의 마음 중심에 두시고, 그리고 이것은 절대로 굽힐 수 없다, 굽힐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애초에 선과 악이라고 해도 우리에게 있어서의 선은 명주님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의 선은 명주님. 교주님께서는 이 선을 굽힐 수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 201724일에 일어나주신 것으로 인해, ·명주님께서는 그렇다면 메시아교를 축복해 주어도 좋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메시아교는 성지를 구입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메시아성당을 세웠다든가, 여러 신업을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든가 그런 일이 있다 해도, 그 원점은 신교의 신교리라는 우리에게 있어서 중심인 부분, 이것을 교주님께서 명주님으로부터 계승하시고, 그리고 이것은 나는 굽힐 수 없다며 일어나주셨기 때문에, 명주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성지의 토지구입 같은 것을 허락해 주신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분의 헌금에 의해 그러한 일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은 림없는 일이지만, 하지만 그러한 흐름이 되는 것도, 그 근원은(래는 명주님의 삶의 모습, 신교의 신교리라고 물으면 바로 그런 것을 말씀하실 수 있는 명주님의 삶의 모습입니다만) 지금 우리가 여가지로 축복받고 있는 그 근원은, 역시 굽힐 수 없다고 하시며 일어나 주신 교주님, 그 교주님의 마음의 토대가 있었기에 메시아교가 있다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일이 있는 한편, 종교에는계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명주님과 교주님의 자세라는 것도 있으며, 한편으로 계율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 계율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교주님께서 일어서신 것은, 그 무엇도 계율적으로 하려 하신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란, 어쩔 수 없이 드는 마음, 아무리 해도 생겨나는 마음, 억제할 수 없는 마음이 있기에 뭔가 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 종교에서는 계율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계율이라 하면 흔히 이슬람은 계율적이라는 말을 듣고는 하지요.

  예를 들어, 이슬람에서는 신앙고백이라는 것이 있는데알라가 유일의 신이고, 무함마드가 신의 사도이다라는 것을 입 밖에 내어 말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부과되어져 있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 같은 사람들이 들으면이슬람 사람은 계율적이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우리도성지(聖旨)헌장(憲章)이라는 게 있어서, 안에, 신이라는 존재, 또 신의 마음을 표현하시는 것은 교주님이라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서 표현하고 있지요. 우리는 이런 것을, 계율적이라고 생각하면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도, 예를 들면 이슬람 사람은 하루에 다섯 번 신께 기도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쩌면그것은 계율적이다.」「하루에 다섯 번이나 신께 기도하다니 계율적이다.라고 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도 하루 두 번, 아침 저녁 예배를 하고 있는, 그것도 세상 사람들이 보면 계율적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참배에 대해서도 그것을 계율적인 것으로 보고저 사들은 하루에 두 번 기도를 해야 한다라고 하는가, 아니면이런 저라도 신께서는 제가 아침저녁으로 두 번 신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는 건가요?라고 생각하는가는 전혀 다릅니다.

  이슬람에서는 가난한 사람에게 부를 나누어 주는 것도 하나의 의무라고 할까요, 실천해야만 한다고 되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그것을 계율적인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예를 들어 이번에 노토지진이 있었습니다만, 그럴 때에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여 성금 같은 것을 내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런 것은, 사람들이 보면종교인은 저런 성금을 내거나 해서 계율적이다」「하루 다섯 번 기도하고 신을 믿고, 그리고 자기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있다. 저 사람들은 계율적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냐 하면, 어떤 것을계율로 받아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

  예를 들어, 조석배 참배를 하고 싶지 않은데조석배 참배는 해야만 하기 때문에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참배도 계율입니다.

  「성지(聖旨)헌장(憲章), 교주님이라는 존재는 자신에게 있어서 명주님 마음을 받는 것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근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하는 것은 계율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어떤 실천을이것은 계율적인 것이다라고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그 신앙에 들어가 있는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신앙은 자유이기 때문에.

  그래서 식()도 저는강제가 아니다」「계율이 아니다라고 여러 번 말씀드리는데 본래 어떻게 해도 강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한 분 한 분 집으로 찾아가고기 드시려 하나요?하며(일동웃음)그것은 안 됩니다. 안 됩니다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저는 잡혀갑니다(일동웃음). 경찰을 불러서아니, 이 사람이 고기 먹지 말라고 합니다」「집에 마음대로 들어옵니다해서 저는 잡혀갑니다.

  그러니까 확실히 일본에서는 시대에 따라서는 신앙의 자유가 없, 이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 일본은 운 좋게도 신앙의 자유가 있으니까, 그런 속에서 실은 강제도 계율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무언가의 실천을 강제나 계율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그 믿음에 들어와 있는 의미는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은 식()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아침 저녁으로 참배한다든가, 그런 것부터입니다. 참배하는 것은 싫다든가, 성지(聖旨)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든가, 다른 사람을 위해 진력하는 것은 싫다, 그런 것은 계율적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 신앙에 연결되어 있는 의미는 없습니다.

  이 종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진력해야만 한다, 아침저녁으로 참배해야만 한다, 이런 것을 해야만 한다, 실천해야만 한다 라는 말을 하거나 생각한다면, 더 이상 그곳에서 신앙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현재의 일본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일본에서는 계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런데 왜 우리가이런 것은 계율적이지 않은가?라는 말을 쓰느냐 하면, 그것은 역시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온 명주모습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는 사정이 나쁜 것이 나왔을 때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그것은 계율적이다라는 말을 써서, 뭐라고 할까요, 그것을 명주님 마음으로 받겠다는 것에서 도망치려는 우리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자유이기 때문에, 계율이라든가 계율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신도분이 식()에 대해 쓴 글에서 감격과 감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평소에 자신은 명주님께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식()이 나와서 러면 자신은 평소에 집에 있으면서 명주님께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채식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매일 명주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자신은 나약한 존재여서 이것도 할 수 없고 저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명주님께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있으면서 혼자서 채식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명주님과 이어질 수 있고 명주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것이 즐거워졌다 라는 말을 하신 신도 분이 계셔서, 너무 훌륭한 신앙이라고 감동했습니다.

  그러니까 식()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분도 있고 계율적이라고 받아들이는 분도 있고, 받아들임은 여러 가지입니다.

  역시 우리에게는 스스로 만들고 있는 명주님 모습이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분명히 말해서채식이라것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안 들어 있었습니다. 명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안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두에서도 이야기한 신교의 신교리의 선악을 확실히 구별한다는 성언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같은 것이며, 역시 자신에게 있어사정이 나쁜 성언은 어쨌든 옆에다 두고, 그리고 그 위에 우리는, 리에게 사정이 좋은 명주님 모습을 만들고, 그리고 그것을명주으로서 믿어오지 않았나 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명주님 모습을 튼튼하게 하는 만큼 새로운 것에 대응하는 것은 힘듭니다.

  게다가 명주님께서는새로운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처, 항상 새롭게 새롭게 그 시대 사람들이 아직 하지 않은 일도 시대에 앞서 하신 분이셨지요.

  저에게 한 가지 충격이었던 것이 있었는데, ()에 관련하여 터넷에서 여러 정보를 보고 있었는데, 내각부 식당에서는 20173월부터 매주 금요일을 미트프리의 날로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주의자 음식이나 비건식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20173월이니까 벌써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이야기입니다.

  명주님께서미륵의 세상은 전 인류는 채식을 하게 된다라는 씀을 하시고, 그로부터 몇 십 년이 지나, 민간은커녕, 국가(보통, 민간은 여러 가지를 진행하지만, 이런 것의 대처는 국가가 가장 늦은 것 같니다만) 차원에서, 이미 20173월 시점부터 그러한 대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았을 때, 저는 얼마나 명주님께 죄송한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명주님께 부끄러웠습니다.

  자연농법이라는 것은, 지금은 그 사고방식이 확대되고 있지만 명주님 재세 당시 농약 없이 채소를 재배한다는 것은 정말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거의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 않던 때에 명주님께서는 그것을 실천하셨습니다.

  게다가 명주님께서는 이미 그러한 때부터, 장차 인류는 채식가가 된다는 뜻을 말씀하셨는데, 나라에서조차 7년 전부터 그런 대처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 온 것일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명주님 모습을 작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 채식활동도, 앞으로 어떻게 되어 갈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만일 이런 일로 인해 명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의 마음도 몸도 지고 인류 사회가 좋아져서, 꿈처럼 생각했던 지상천국이라는 것이 정말 올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가공의 지상천국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지상천국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뭔가 세상의 상식이나 그런 것에 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명주님 쪽은 어떤가 하면, 신께서 가르쳐주신 것을 세상에서는 전혀 하지 않더라도 그대로 표현하시고 그것을 계속 진행하고 계셨는데, 반면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포지션을 확보해 두고 싶다든가, 혹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사회에서 상식이라고 각되어지는 정도의 곳에 자신을 두고, 그 위에 명주님 성언, 명주사적을 파악하고, 그리고이것이 명주님이다라고 계속 해오지 않았나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마음대로 작은 명주님 모습을 만들고(마사아끼님, 두 손으로 작은 동그라미를 만드심), 이런 작은 명주님 모습을 만들면서명주님은 훌륭하다라고 해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 명주님께서는 더 크십니다. 사실은.

 

  오늘은 명주님 성언 두 개를 배독했습니다만, 그 두 번째, 예루살성언이 있었지요. 동쪽에서 점점 서쪽으로 가서 마지막은 예루살렘이다 라는 성언이었습니다.

  동쪽 끝은 일본. 그것은 명주님 자신의 상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명주님께서는 동쪽의 끝의 끝의 끝, 세상의 극동의 끝의 끝인 일본에서 태어나셨다, 이런 인식을 우리는 뚜렷이 가지고 있지요.

  명주님을 생각할 때, 명주님께서는 세계 극동의 일본의 동쪽 도시그 또 동쪽의 하시바라는 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이미지는 우리가 분명히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서쪽 끝은 예루살렘입니다. 우리는 이것은 그다지 확실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계속 하코네, 아타미, 교토, 큐슈로 가셔서 그대로 계속 계속 가시고, 그리고 예루살렘이 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첫 번째 찬가는 서쪽에서 생겨난 문명을 되돌릴 때가 왔다는 찬가였습니다.(서쪽에-서 생겨나동쪽으로 이동하-는 문명을-되돌릴 때가되었도-)

  이 서쪽에서 생겨난 문명이라고 하는데, 지금 말한 것처럼 서쪽은 예루살렘이니까, 서쪽에서 생겨난 문명이라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문명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그래서, 이 문명이 무엇인가를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것은 사실은메시아입니다. 서쪽에서 태어난 문명이라고 해도 그것은메시아라는 말로 집약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짜 메시아라든가 여러 가지가 있어서, 메시아라는 말이 진흙투성이가 되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일본에 도달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문명인 메시아가, 메시아라는 것은 이렇다 렇다 하는 것으로 진흙투성이가 되었지만, 그것이 결국 일본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것을 맑혀서 되돌리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진짜 메시아라는 것은 이 사람이다, 저 사람이다 가 아니라, 전 인류 안에 있다는 것 그 이외에는 없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사람만이 특수하다는 것은 진리가 될 수 없지 않습니까?

  두 번째는, 빛이 서쪽 끝까지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빛은넓게퍼-져 서--의 끝---지 비추어가리로다). 우리는 여기의서쪽 끝이라는 것도 막연히 파악하고 있지만, 오늘 명주님 성언에 있었던 것처럼 서쪽의 끝은 예루살렘입니다. 그래서 빛은 예루살렘까지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세상에 승리한 메시아가 서쪽의 도시에 들어간다는 찬가(세상을이긴 메시아는아무런 거침이없이 서쪽의도성으로 들어가실 좋은때), 서쪽의 도성을 또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서쪽의 도성이라고 하면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예루살렘밖에 없습니다.

  명주님께서 서쪽 끝이 예루살렘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예루살렘입니, 이 서쪽의 도성은.

  네 번째는 서쪽 나라의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지요(--의 구름타고내려온 그리스도에 기뻐환호하-는 서쪽나라사-) 서쪽나라. 연히 이스라엘이지요. 왜냐면 예루살렘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지? 그러니까서쪽나라 사람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입니. 서쪽나라 라고 하면 이스라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찬가에서 명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진정한 메시아를 알고 환희할 때가 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스라-엘 백성들도환호성 지르리-라 빛이나고있-는 진정한메시아) 서쪽 나라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최근 교주님께서는 성언 마지막에서, 우리가이스엘과 맺어져 있다라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뭔가 그것을 새로운 일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본래 전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명주님께서는 서쪽은 예루살렘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명주님의 사명은 동서를 잇는 것이지요? 동서를 잇다. 이것이 명주님의 사명. 그래서 서쪽은 이스라엘이니까, 그것에 우리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교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는 언뜻 뭐지 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명주님 성언으로 보면 당연하다 라는 말은 조금 그렇지만, 전혀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이라 해도, 그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와 그제자들이라는 것에 인물로는 집약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 그들도 이스라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교주님께서 작년 생탄제에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첫 교회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우리는끝 교회

  메시아는 서쪽에서 태어났지요? 서쪽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서쪽이 시작이지요? 그래서 첫 교회. 그리고 우리는 동쪽 끝에서 아들였죠? 세계 극동의 끝의 끝. 그러니까 끝이지 않습니까? 그 명주님 교회가 우리 교회이니까, 명주님 교회는 끝 교회입니다. 교주님께서는 그런 말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교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동과 서를 잇는 것이 명주님의 사명이라면 아무런 이상한 것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과 우리가 맺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방의 빛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명주님을 시작으로 생각하기 쉽지만(물론 우리는 명주님 신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지만)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당신에게 도달한 것은, 실은 그것은서쪽에서 태어났다고 말씀하시고, 원래는 서쪽에서 태어났다 라는 것을 인식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명주님 사명은 그것을 되돌리는 것이지요. 되돌릴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되돌린다는 것은, 출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래 동방의 빛이다, 동방의 빛이다, 명주님이 시작이라고 해서 뭔가 우쭐해지고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 오늘 성서에도 있었듯이 신께서는 먼저 이스라엘 사람을 처음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지금 이 이스라엘 사람들 상당수는 아직 메시아의 진짜 진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 역할이 지금, 먼저 본인인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일본인. 왜냐하면 명주님께서는 일본인이니까요. 그래서 먼저 명주님, 그리고 일본인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과 연결된 전 세계의 신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부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메시아의 존명의 진실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쭐해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원래는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서쪽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오늘 배독한 성서에도, 신께서는 만약 우리가 신앙에 머무르지 는다면, 바로 너희는 올리브 나무에서 뺄 것이라고 그렇게 쓰여 있었지요? 지금 우리가 명주님을 통해 올리브나무라는 신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희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뿌리가 있기 때문에 신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성서에 있었습니다.

  명주님께서는 이것을서쪽에서 태어나라고 간단하게 말씀하십니다만, 이 인식은 사실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는동방의 빛이라는 말에서동쪽에서 태어났다와 같은 의식을 가지기 쉽지만, 그것이 아니라 실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것이 쭉 와서, 그것이 동쪽 끝인 일본에 계신 명주님께 도달했고, 명주님께서는 그것을 감득하시고, 그리고 지금 우리가 교주님을 통해 받은 것입니다. 서쪽에서 태어난 신의 메시아의 존명에 담긴 진실, 이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진실은 뭐냐 하면, 그것은 전혀 복잡한 것이 아니라 간단한 메시지입니다. 메시아라고 이름 붙은 신의 혼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있다는 그것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뭔가 우쭐해지고 교만해져 우리는 동방의 빛이다, 실을 받았다, 우리가 이스라엘보다 위이다 라는 자세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또 우리가 그런 자세가 아니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메시지를 받는 일은 평생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당신들 덕분에, 당신들이 있어주신 덕분에, 이제껏 신께 불순종적이고 이방인이라 불리던 우리도 신의 진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라는 식으로 보고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명주님 신업은, 진정한 메시아에 의해 이스라엘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찬가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역할이 우리한테 부과되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사명입니다이런 큰 사명을 가지고 있다니 우리의 매일의 생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명주님께서도, 지금은 일본도 문명이 많이 발달했습니다만, 명주님 재세 중인 1953, 1954, 1955년의 일본이라고 하면, 물자도 전혀 없고 서양과의 연결도 아직 약하던 그런 시대에 명주님께서는진정한 메시아의 메시지로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신께서 기뻐하시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라는 비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것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것이야 말로 진짜 명주님 모습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작은 명주님 모습과는 현격한 차이입니다.

  그래서 여기 성서에,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로마서122)라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계속 세상과 타협해 왔다고 생각합니.

  진짜 명주님 모습을 관철하고 살아가는 것은 힘들다, 이래서는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세상과 타협하자, 명주님 신업에 대해서도 타협해서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방식이 낫지 않은가, 그쪽이 돈도 들어올 수도 있다 라고 하며, 세상과 타협하는 방식으로 생각해 낸 것을명주님 신업이라고 하고, 그런 것으로 우리는 계속 명주님 신업을 진행해 온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부과된 사명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미 책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받지 않았던 신의 진실에 대해 우리는 느껴지는가, 좀처럼 느껴지지 않은가 등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그런 것을 이야기로서는 듣고 있으니까 드물게는 마음에 느껴집니다.내 안에 메시아라는 혼이 있는 것일까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사실 그것만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인류의 누군가가 금후 그것을 깨닫는다면, 큰 기쁨으로 환희 넘칠만한 메시지를 우리는 지금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의 진실을 받은 우리는, 이제 그것을 이스라엘로 되돌릴 때가 와 있습니다.

  그것이 메시아교 신도인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그 사명의 크기는 대단한 것입니다. 특히 일본인 여러분, 대단사명입니다. 왜냐하면 명주님께서는 일본인이니까요. 그래서 일본인이 받고 있는 사명은 대단한 것입니다.

  당연히 일본인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전 인류의 구원이기 때문에. 이렇듯 언젠가는 전 인류가 그것을 받는 것의 모형으로서 이제 세계인도 받기 시작하고 있지 않습니까? 브라질, 아프리, 유럽, 미국.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관계 없습니다, 일본인이든 몇 명이든 그런 것은 관계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사람이 최초라는 것은 있습니다. 그 질서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의 명주님의 큰 스케일로 생각하면, 그것을 이렇게 작게 해 와 버린 것이기 때문에(마사아끼님, 두 손으로 작은 동그라미드심), 앞으로는 우리에게 부과되어져 있는 이 세계메시아교에 주님께서 담으신 크기, 우리의 진정한 사명, 이것을 역시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좀 전에 채식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 명주님께 도움이 되고 있다는 신도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원래 이 메시지를 받고 있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라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위해서 그런 것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께서 보시기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이미 보석입니다.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해내고, 그리고, 오늘 들은 첫 번째 명주님 성언의 마지막 부분의 기백은 대단하지 않나요? 신의 힘은 더 늘어납니다. 그리고 선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는 난치병, 고생으로부터도 반드시 구원될 것이라고 그렇게 명주님께서는 단언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명주님의 정신은 아직 버리지 않았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는 모든 난치병, 고생으로부터도 반드시 구원된다 - 이 정신은 아직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명주님께서는 이것이 세계메시아교 개교 선언 진실의 고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명주님께서는 고백하고 계십니다. 왜 메시아교개교하셨는지. 그것은 선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는 무슨 일이 어도 반드시 구원된다고, 그렇게 털어놓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선언을 우리는 계승하고 있는 것이며,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명주님이라는 존재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스케일의 크기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말씀드려서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명주님 모습, 이것은 이제 버리고, 그리고 진짜 명주님을 완전히 있는 그대로, 이해가 안 돼도 우리는 경계선을 정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경계선 같은 것은 정하지 말고, 그리고 명주님의 빛을 온몸에 받고, 그리고 지금 적어도 구원의 삼 기둥이라고 불리는기도, , 음악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반드시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전 인류가 하나로 맺어져 기뻐할 때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리고 그때를 위한 이 구원의 삼 기둥이라는 것은 뭔가 있다고, 자신은 몰라도 뭔가 있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정말로 크고도 큰 명주님께 쓰임받읍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