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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봄을」마사아끼사마 성언 2023년 신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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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186회 작성일 23-02-19 20:13

본문

신년제 마사아끼사마 성언

202311

 

마음에 봄을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은 매우 온화한 새해이네요. 저도 해돋이는 집에서 봤습니다만, 수평선에 약간의 구름 때문에 해가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7시 정도 돼서, 아 나왔구나 했는데, 태양이 움직이는 방향과 구름의 모양이 겹쳐서, 완전하게는 태양이 나오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탄제 및 예수 성탄제가 끝나고 이번 연말, 드디어 한 해가 끝나 버렸다고 생각하니, 뭔가 신께 남겨둔 것이 있지 않을까,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꽤 들었습니다. 물론 신의 마음에 맞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만, 그래도 뭔가 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신이시여 무엇인가요?라고 여쭙는듯한 마음과 함께, 뭔가 정말 이대로 해를 넘길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 신으로부터 새로운 해를 허락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라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제가 지금 여기에 있으니 신께서 새해를 저에게, 저에게 라고 할까요, 인류에게 새해를 준비해 주셨구나 하고,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는 새해를허락받았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에 관계없이 신께서 일방적으로 새해를 필요로 하고 계시고, 그리고다시 너희들을 쓸 것이다라고 하시며, 이 새해를 신께서 준비해 주셨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상투적인 문구처럼새해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하는데, 무엇을축하한다는 건지 몰랐다고 생각합니다. 신께서 원치 않으시면 새해는 특별히 필요 없기 때문에,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경외심이 있어야 비로소새해 축하드립니다라는 말의 가치가, 조금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이 말은 상투적인 문구가 아니라, 역시 신께서 이 한 해를 필요로 해 주셔서, 우리 인류를 일방적으로 새로운 해로 맞아주셨다 라는 마음으로새해 축하드립니다라는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신께 대한 경외심입니다. 그것 없이새해 축하드립니다라고 하여, 신으로부터뭘 축하한다는 것이냐?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는 참배하러 가지요. 이 제전 자체가 우리에게는 새해 첫 참배라고 생각합니다만, 일본 국민의 대부분은 근처 신사에 가곤 합니다.

  하지만 신사도, 그곳에 계신 것은 궁극적으로는 주신이시기 때문에, 연초에는 그 지역에 사는 분들이 많이 참배하러 가셔서, 아 올해도 주신께서 내가 살고 있는 땅과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시고 인도해 주시는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배를 가면, 그곳에서 여러 가지를 부탁드리거나, 결심한다든가 그렇게 되지요. 하지만 그 결과를 그 해 중간쯤에, 그 신사로 봉고드리러 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대체로 11일에 부탁하고, 부탁한 채로 또 다음 설날이 되고, 또 부탁하는, 그 사이클을 우리는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초에, 결심을 하든 부탁을 하든, 원래는 연말에 다시 그 신사에 가서 새해에 부탁한 것은 이렇게 되었다고 봉고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정 수의 분들은 그렇게 하고 계시겠지만, 하지만 대부분은 모두 11일에만 신사에 갑니다. 신사가 11일만큼 12월 말에는 혼잡하지 않으니까요. 저도 그럴지 모릅니다만, 우리는 신께는 부탁을 드릴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11, 사실은 이런 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사실은 11일 오늘,20231231235959초까지의 그 모든 것을, 신께서는 신의 마음 그대로 이루시며, 이미 이루셨네요. 감사합니다라는 이것, 이것을 사실은 11일 설날에 신께 봉고드려야 합니다.

  설날에 뭔가를 부탁드리고, 그것이 그 해 중간에 실제로 그 소원이 이루어져서신이시여 소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것은 잘못됐습니다. 왜냐하면 신께서는 올 한 해, 절대력으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일, 가장 필요한 일을 해 주십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말한 것과 같은 기도를 오늘, 신께 올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새해에 이런 말을 신께 전하지 않지요.

  사실은 오늘 참배하러 오셨거나, 또는 근처 신사에 가거나 하면, 신께서는 올해 1231일까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꼬박 일 년, 신의 마음을 이루어 주시고, 그리고 이미 이루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을, 그 자리에서 해야 합니다.

  오늘 제전의 성언(194938일 강화말씀)에도 있지 않았습니까? 병이 나았다고 해서 신께 감사헌금을 한다는 것은 신과 인간의 상하 관계가 역전되어 버린다 라는 성언이었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 병이 나으면 감사드린다 하면서, 지금까지 보통 그렇게 신앙해 오지 않았습니까?

  감사헌금. 병이 나았으니 감사해라. 매달신이시여 이번 달도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감사헌금을 보통 해 왔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이 성언에서, 병이 나아서 신께 감사인사를 드렸다, 그것은 신 입장에서 말하자면 신께서 우리에게, 병 고쳐달라고 부탁하러 왔기 때문에 내가 고쳤습니다. 돈 좀 줄 수 있나요? 조금 베풀어 주겠습니까?(일동 웃음)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가 보통, 당신 병이 나았으니 그 감사의 마음을 신께 바치라고 하지요. 물론 그 자체는 확실히 부정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그러면 신의 길, 순서라는 것에 있어서 사실은 잘못됐다고 하십니다. 지금까지의 감사헌금은 도대체 무엇이었던 것일까 라고 할 정도의 말씀을, 명주님께선 여기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새해 첫날 뭔가를 신께 부탁을 드렸는데, 그것이 이루어져서 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다면, 명주님께그러면 순서가 잘못되었다라고 말을 듣게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오늘 신께올 한 해 감사했습니다라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12월에 가서 그 한 해의 감사를 드리는 게 아니라, 사실은 올해 일어날 일에 대해서, 오늘 가장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과의 관계가 거래처럼 됩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한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좀처럼 감사할 수 없다, 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어도, 이것이 실제로 현실적으로는 꽤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아픈 와중에는 좀처럼 감사가 안 되지 않습니까? 하기 어렵지요.

  그것은 왜냐하면, 오늘 배독한 성서(마태복음77~14)에도 있었듯이, 우리는 병과 같은 것을 돌이라고 생각합니다. 빵인가? 돌인가? 성서에는 신께서는 빵을 주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병에 걸리면, 그것은 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서에는 어떤 나쁜 사람이라도, 자기 아이가 빵을 원하면 돌이 아니라 빵을 준다, 뱀이 아니라 생선을 준다, 하지만 신께서는 더 좋은 것을 주신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막상 병에 걸리면, 이것은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돌은 먹을 수 없지요) 것처럼, 나는 이 병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은 돌이다, 이것은 생선이 아니라 뱀이다, 라고 하지요. 나에게 좋은 일이라면이것은 빵이다,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만.

  대체로 명주님의정화라는 사고방식 그 자체가,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병은 사실은 몸을 맑게 하는 은혜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는 좀처럼 생각되지 않지요. 병은 돌이라고 생각합니다. 병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에 대해 우리는, 빵과 돌이 뒤섞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신께서는 빵과 생선밖에 준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맛있게, 적극적으로 먹고 싶은 것 밖에, 신께서는 준비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이것은 돌이다, 뱀이다 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나쁜 인간조차도 자신의 아이에게 돌이 아니라 빵을 주신다 라고 되어 있는 것처럼, 사실 신께서는 빵보다 더 대단한 것만을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올 한 해, 우리 눈에는 돌이나 뱀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사실은 빵이자 생선을 신께서는 주시려는 것이기에,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나서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하기보다는(그리고 당연히 그런 마음은 일어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오늘이라는 날에, 새해 첫날에, 올해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해서신이시여, 올 한 해 저를 위해 해주시고 해주셨네요.」「올 한 해 양육해 주시며, 양육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빵 맛이 우리가 원하는 빵 맛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딸기잼 빵을 원한다거나, 땅콩잼을 원한다, 그러니까 신께서는 이런 빵을 주실 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신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빵은, 어쩌면 바게트처럼 딱딱하고 잘 씹히지 않는 빵일지도 모릅니다.

  신의 마음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며, 그리고 정말 우리가 맛있어 하기를 바라시고 모든 일을 올해도 일으켜 주실 것이 틀림없다면, 분명 전 세계에서 이 설날에 이미 연말까지의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은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앙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것이 진정한 신앙심이라고 생각하기에, 적어도 메시아교인 우리는 지금이라는 때에, 오늘이라는 날에, 이 첫 참배의 기회에, 신께 올해의 최대의 감사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명주님 찬가 두 번째는만발하-게 꽃이핀-봄날을 어느누-가 생각할수있으랴 겨울의추운땅에서라고 있었지요.

  이 찬가는 장소에 대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예를 들면 병에 걸린다, 인간관계의 여러 일에 의해, 우리 마음 자체가 겨울에 초목이 마른 것처럼 되지 않습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외롭다, 고독하다 라는, 마음이 마른 듯한 그런 상태가 되지 않습니까? 명주님께서는, 그럴 때 누가 꽃이 만발하는 봄날을 생각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직접적인 의미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건데, 물론 명주님 의도는, 마음이 겨울처럼 말라 있어도 신께서 그 마음을 봄날처럼 꼭 해주신다, 겨울의 마음을 극복하게 해 주시고 만발하게 꽃이 피는 봄날과 같은 마음으로 꼭 해주신다는, 그런 찬가입니다. 어떤 겨울이든 언젠가는 반드시 봄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봄을 기다리며, 아 봄이 왔다,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추운 겨울일 때 바로, 신께서는 지금의 나의 마음을 꽃이 활짝 피어 있는 행복한 봄날 같은 마음으로 인도해 주시네요,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면 어떻겠느냐, 라는 그런 찬가입니다.

  또 네 번째 찬가는세상탓하고 사람들을원망한 그-무렵의 마음의- 흐림은 사라지고흔적없네.

  이 찬가를 우리가 오늘날까지 어떻게 받아들였냐 하면, 명주님께서는 대단하시다, 인생에 많은 일이 있어 세상을 탓하신 적도 있고 사람을 원망하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미 사라져 버리셨구나, 라고 그렇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찬가는, 신께 대한 명주님의 신앙고백의 찬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명주님께서는 육체도 가지셨고, 그야말로 뇌일혈 때는 몇 번이나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하신 것처럼, 마음이 많이 움직이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찬가를 보고, 그저 명주님 대단하다 라고 하기보다는, 실은 명주님께서는 세상을 저주하고 사람을 원망하고 싶은 생각이 드셨을 때(오히려 그 찰나에) 신께그런 마음은 이제 사라져서 흔적도 없습니다라고, 신앙고백을 하신 찬가라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 같은 것이 완전히 사라져서 그렇게 없어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까? 사라져 없어지는 것은 어렵습니다. 명주님께서는 뭔가 달관하셔서 우리 마음의 고통을 전혀 몰라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명주님께서는, 세상을 저주하거나 남을 원망하는 우리의 마음도 충분히 아시는 분이며, 그런 중에 부르신 찬가라고 파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만약 지금까지 받아들인 그대로, 명주님께서는 대단하시다, 언젠가 명주님처럼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다면 죽을 때까지 그 마음 그대로 갑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 무슨 일인가 생기면, 왜 저 사람은 나에게 이런 일을 했을까 라는, 원망 같은 마음이 분명히 생기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저주하는 마음이나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지금입니다. 지금 신께저도 세상을 저주하거나 사람을 원망한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 그것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당신 덕분에 없어졌습니다라고, 지금 하지 않으면, 계속, 평생, 이 찬가의 명주님 심경에는 도달하지 않습니다. 그저 명주님은 대단한 분이구나 로 끝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여섯 번째 찬가감사하도다 아-감사하도다 구제되어져 나의집은어느덧 이세상의천-이라고 있지요.

  명주님께서는 나는 구원받았다, 얼마나 감사한가, 구원받아 우리 집은 이제 이 세상의 천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인생에서 여러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보세요. 결국에는 뇌일혈입니다. 뇌일혈로 돌아가셨습니다. 보통 뇌일혈에 걸린 사람이나는 구원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뇌일혈이 나으면당신은 구원을 받았네요라는 말은 하지만요.

  그래서 저는 이 성언도, 신께 대한 명주님의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감사하다. 아 이제 제 가족은 구원받았다. 이제 천국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가족 내에 여러 문제가 있을 때야 말로 그렇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계속 지금 그대로 갑니다. 지금은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뭔가 문제가 생겨서 그걸 극복했나 싶더니, 손자가 태어났는데 또 그 손자가 무슨 문제를 일으켰다든가, 계속 그렇게 갑니다.

  때문에 우리는구원받는 것은 좀처럼 어렵구나」「명주님께서는 특별하시다라는 걸로 인생이 끝나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지금입니다. 지금. 왜냐하면 신께서는 봄날까지 인도해 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시니까, 지금 신께 감사하다, 아 감사하다, 우리집은 이제 구원받았습니다. 천국이 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형입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앞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신께서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께서는 우리에게 축복밖에 주려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또 다섯 번째 찬가에도지나간일을 후회하지않으며 나아갈길을 걱정하지말아라 신에게있는몸은.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마라,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고 명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어렵지요.

하지만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마라, 나아갈 길을 걱정하지 마라, 과거도 미래도 걱정하지 마라 라는 것은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종착점으로서의 나와, 펼쳐지는 미래로의 출발점으로서의 나라는 것이 항상지금이라는 상황으로 내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지금의 자신에게 전부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조상님으로부터의 모든 것, 또 내가 이루어 온 과거의 여러 가지 일 모든 것을 짊어지고, 지금 나는 여기에 있으며 그리고 또 미래에 대한 접점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까지금입니다.

  신께서는너는지금어떠냐?라고 물어보시고, 지금이라는 기회를 주시려 하고 계십니다. 네 안에는 과거에 대한 후회도 있을 것이다.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금 신에게 있는 몸이기에, 내가 어떻게든 해줄 거라 생각하고, 그것을감사하도다 아아 감사하도다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신은 없다 하며, 초목이 마른 겨울의 마음 그대로 갈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것을, 신께서는 지금 묻고 계십니다.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지금이라는 부분에 집약되어 있는 것입니다.

  10분 후에 할게요 라던가, 돌아가면 하겠습니다 가 아니라, 지금 어떻게 하는가, 그것입니다. 게다가 신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나의지금영원인 신과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안에영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배독한 성서(시편150)에도주신을 찬양할지어다라고 있듯이, 우리는 실은 신을 찬양하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성서는 전부 신을 찬양하라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찬양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은 우리 인생에는 여러 일이 있지요. 여러 일이 있지만, 신께서 우리를 봄날이라는 그 약속된 장소에 반드시 데려가 주신다면, 지금 찬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뭔가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찬양하려 하면, 그 미래는 평생 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말했듯이 우리의 마음이 미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서에 거문고를 가지고 주를 찬양하라 라는 구절이 있었지요. 그래서 이 거문고도(참배석에 있는 거문고를 가리키심), 제전의 음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도 신을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음악을 들어야 하며, 또 호흡이 있는 모든 것이 주를 찬양하듯이 라는 구절도 있었습니다. 호흡이 있는 것이라 하니까 인간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새. 새소리도, , 새가 우는구나, 이건 새가 신을 찬양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이 새 울음소리는 이런 의미이다 라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렇듯 인간이 무슨 소리를 내는 것도,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신을 찬양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동물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침에 산책하다가 새가 울면, 새와 함께신을 찬양합니다라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요? 동물들과 함께 저를 인도해 주시네요라고 생각하면 좋지 않습니까?

  오늘이 올해의 시작입니다만, 오늘 새해에, 12월 마지막 날의 몫까지의 최대한의 감사를 마음속에서 우리가 함께 신께 바칩시다. 그러면 신께서 기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신께서 듣고 계신 말은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라는 일본 각지로부터의 목소리, 아니,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입니다. 서양의 경우는New Year's resolution(뉴이어스 레졸루션)이라고 해서, 부탁이라고 말하기보다올해는 저는 이것을 하겠습니다같은 결의를 합니다만.

  하지만 어쨌든 신께서는 부탁을 하든 결의를 하든, 그런 종류의 말들을 엄청나게 지금 듣고 계시는데, 그런 중에 작은 틈 사이에, 우리 메시아교 신도의이루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라는 목소리를 그 틈으로 끼워 넣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 소원의 목소리는 큽니다만, 그것에 지지 않고 큰 소리로 신께 말씀드리고,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를 신께서 들어주시면 감사하지요.

  물론 부탁을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되고 싶습니다 라는 것은,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시 최종적으로는신의 마음 그대로 이루어 주십시오」「신의 마음 그대로 이루어 주시네요라는 것을 마지막에 좀 붙이면 신께서는알겠다」「내 방법으로 어떻게든 실현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라고 말씀해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 결과는,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연초에나는 구원받았다라는 입장에 우리를 놓을 수 있다면, 다음에 신께서 뭐라 말씀하시느냐 하면,그럼 올 한 해, 나의 구원, , 축복을 나누어 주는 일에 너를 쓰고 싶다. 알았느냐?」「너는 너 자신을 구원받은 존재로 보는구나. 그럼 내 일에 쓰겠다. 괜찮겠느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한 인생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세상을 위한 남을 위한 인생입니다.

  그것이 병일 수도 있습니다. 병에 걸리는 것도 세상을 위해 남을 위해서입니다. 아프더라도 좋지 않습니까? 자신 몸 안에 전 인류가 존재하고 있고, 나의 몸을 통해 신의 구원의 신업에 쓰임받을 수 있으니.

  또 우리는 현실적으로 어디를 가거나,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거나 어딘가에 갈 때그곳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빛이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생각하지요.

  그때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거나 어딘가를 갈 때축복이 있기를라고 하는 대상은, 그 장소라든가, 그 인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입니다. 그것은 어디를 가기 전이나 뭔가를 하기 전에 내 마음에 여러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병원에 가야만 할 때, 병원에 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라며, 나에 대한 생각을 나로부터 떼어놓고 바깥 세상에축복이 있기를라고 생각하기보다, 먼저 병원에 가려 하는 나에게 많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괜찮을까? 어떤 진단을 받을까? 그것입니다. 그런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것은 나의 마음이 아니라 전 세계 병원에 있는 사람이나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이, 지금 제 마음에 나타나는구나. 이것에 축복이 있기를라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축복을 나눠주는 쪽의 일입니다.

  신께서는 당신의 빛의 손으로 모든 것을 맞아들이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조레이의 손입니다.

  그러니까 그 손이 우리 마음을 폭 감싸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받는 것이(신께서 건져내신 것이) 우리 마음에 느껴지지 않을까요? 신의 조레이의 손이 임하여, 우리 마음을 두 손으로 건져내시면 여러 가지를 낚을 수 있지요.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불평불만 등의 마음이지요. 그것은 신께서 조레이 해 주시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우리 마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요. 병이나 가족의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일이나,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남에게 말할 수 없다. 남에게 말할 수 없어도 됩니다. 신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리고 신께서는 전부 아시기 때문에.

  숨기고 싶다. 숨겨도 되지 않습니까? 신께만 숨기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 일상생활은 밑바닥의 밑바닥 같은 것입니다만, 사실은 그런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 신께서는 끊임없이 빛을 쏟아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 직면해 있는 우리 마음 그 자체에, 여러분이 빛과 축복을 올 한 해 나누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한 해가 될지 모릅니다. 힘든 한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구원의 신업에 쓰임받을 각오를 하면, 신께서는 반드시 나쁘게는 하지 않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런 신을 다 같이 신뢰하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고자 합니다.

  자신의 일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저는 이미 구원받았습니다라고 결심하고, 그리고 이번에는 구원의 신업에 쓰임받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의 삶을 나를 위해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신 곁에서 나의 마음에 모이는 많은 사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계속 생각 안하셔도 됩니다. 뭔가의 계기로 !하는 때면 됩니다. 오늘은,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결국 계속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올해의 마지막날까지 와버렸습니다라고 해도 좋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날에 한순간이라도올 한해 쓰임받았네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신께서는잘 알아주었구나라고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생각해야 한다는 건 힘듭니다. 어떤 문제를 마주할 때는 전혀 생각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어쨌든 올 한 해, 그렇게 다 같이 서로 도우면서 서로 의지하면서, 이 신의 구원의 신업(메시아교에 맡겨진 구원의 신업)에 함께 쓰임받아가고자 하며, 또 오늘 이야기한 내용도, 제 자신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 제가 이야기한 것들을 우선 제 자신이 중요시하고, 그리고 올 한 해 여러분과 함께 걸어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