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테츠오 선생님」마사아끼사마 메시지 No. 16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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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138회 작성일 23-02-27 23:42본문
마사아끼사마 메시지
No. 16
「와타나베 테츠오 선생님」
2023년 1월
호주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돌아온 저는 취업할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도쿄 등에서 열린 취업 박람회에 가서, 여러 기업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만, 뭔가 이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내 인생에는 뭔가 다른 길이 준비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제 안에서 조금씩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께(교주님께) 도움이 되고 싶다. 아주 조금이라도 신업에 도움이 되고 싶다」.
그리고 저는 2005년 3월, 24살 때 교주님께 그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교주님께서는 먼저「3대 교주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고, 그리고「3대 교주님의 허락을 받으면 와타나베 선생님과 만나거라」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날 교주님과 저는 3대 교주님을 만나 뵙고, 제가 신업에 관여하는 것에 대한 허락을 부탁드렸습니다.
3대 교주님께서는 허가를 해 주신 후 교주님께 물으셨습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건가요?」. 교주님께서는 와타나베 선생님을 깊이 신뢰하고 계신다는 것, 따라서 저를 먼저 와타나베 선생님과 만나게 할꺼라는 생각을 3대 교주님께 전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3대 교주님께서는(그리고 저는 지금도 이 때의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교주님께, 그리고 간접적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와타나베 선생님이 구워먹든 삶아먹든 알아서 하는 것이 마사아키에게는 좋은 특훈이 되지 않을까요?」.
「구워먹든 삶아먹든」이라는 것은, 아시다시피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어떤 대우를 해도 좋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3대 교주님과 교주님께서는 저를 교육하는 역할을 와타나베 선생님께 맡기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저는 아타미의 초밥집에서 와타나베 선생님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단둘이었습니다. 만나자마자 바로 와타나베 선생님께서는 천천히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종이뭉치를 꺼내시더니「이거 자네에게 주겠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가장 최근 제전에서의 교주님 말씀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나는 벌써 10번 읽었네. 그러니 자네도 읽어보게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선생님께서, 교주님을 얼마나 존경하시는지를 저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은 물론, 그와 동시에「너는 앞으로 교주님을 아버지가 아니라 교주님으로서 받들어라」라는 것을 전해 주시려 했다고,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선생님께서는「오늘은 자네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네」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뵙는 것 자체로 긴장하고 있던 저는, 이 말에 한층 더 긴장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자네는 오늘『나는 장래의 교주가 되겠다』라고 정하라. 그것을 정하고 교단 일이든 세상 일이든, 그 전부를 보고 듣고 경험하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헛수고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이어서「어떻게 하겠나? 해 볼텐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확신이 없는 채, 어쨌든「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바로「그 대답으로는 안 되네. 할텐가? 말텐가? 어떻게 할껀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네」라고 말하는 것이 뭔가 무서운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호주에서 막 대학을 졸업한 저에게, 이 이야기는 뭔가 터무니없이 큰 이야기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결정해야 했습니다. 몇 시간처럼 느껴졌던 몇 초의 침묵 끝에, 저는「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큰 소리도 아니었고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뭔가 내가 모르는 곳으로 뛰어드는 것 같은, 그곳에 나 자신을 통째로 바치는 것 같은, 그런 마음에서 나온「하겠습니다」라는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말이 선생님을 납득시킬 수 있었던 것이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그때 단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것이 선생님과 저의 시작이었습니다.
2013년 돌아가실 때까지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이 자리에서 다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섬긴다」라는 이 한 점에 집약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말과 태도를 통해「섬긴다」는 것의 중요성을 철저히 저에게 넣어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손을 안주머니에 넣으실 때는 담배를 피우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즉시 재떨이를 준비합니다. 당연히「재떨이」라고 말씀하시기 전입니다.
뭔가를 쓰려 하실 때는 종이와 펜이 필요합니다. 저는 자켓 안주머니에 항상 그것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둘이서 식사를 한 적도 셀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오늘 저녁, 자네는 뭐가 먹고 싶나?」라고 물어보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저에게 있어서는「오늘 저녁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자네는 알겠는가?」라는 선생님의 물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제 자신의 일은 뒤로하고, 먼저 선생님께서 무엇을 요구하고 계신가를 생각하도록 특훈을 받은 것 같습니다. 즉 섬기는 것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 지금 커피를 마시고 싶으신지 아니면 잠시 후인지? 내가 무슨 말인가를 하길 바라시는 건지 아니면 조용히 있기를 바라시는 건지?
여러분께 있어서 이것은, 뭔가 한 시대 전의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섬김으로써, 궁극적으로 신을 섬기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을 섬기는 것의 중요성. 자신의 소망에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망을 위해 사는, 즉 신의 소망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을 섬기기 위해서는 이 지상의 누군가를 통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일한 예외는 교주님이십니다. 교주님께서는 우리를 대표하여 영적인 분을 섬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를 통해 섬겨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에게 있어서 좋은 신의 모습, 명주님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입으로는「명주님을 섬기고 있다」라고 말해도, 실제로는 자신의 소원을 섬기는 것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에는 교주님이라는 존재가 필요불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바람은 뒤로하고 교주님의 바람에 마음을 향한다, 그것이「섬긴다」라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명주님을 섬기는 방식이 옳은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명주님께서 지금 무엇을 바라고 계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교주님의 목소리는 명주님의 목소리입니다. 그것이 와타나베 선생님께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믿고 계셨던 것이며, 생활 방식이었습니다.
선생님과 보낸 세월을 통해, 저는 신앙의 기초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상사를 섬기는 것을 통해서만이 교주님을, 더 나아가서는 명주님, 신을 섬길 수 있다, 그 자세를 심어주신 것입니다.
때로는 엄하게 대하신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와타나베 선생님 없이는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특훈에 선생님의 사랑에 보답할 방법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와타나베 선생님께서 이번 교단 정화 때 살아 계셨다면, 선생님께서는 틀림없이 제일 먼저, 교주님을 위해 일어서 주셨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선생님을 모르는, 선생님의 참모습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와타나베 선생님은 교주님을 섬기기 위해 사셨습니다.
와타나베 선생님은 교주님을 섬기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 와타나베 가쯔이찌는, 명주님, 2대 교주님, 3대 교주님을 섬겼다. 나는 3대 교주님과 현 교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 말을 제가 몇 번이나 들었을까요? 적어도 백 번은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주님에 대한 이 열정, 그것이 와타나베 선생님이라는 분입니다.
일부 분들이 와타나베 선생님은 교주님 중심이 아니었다며 선생님의 이미지를 변질시키려고 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주님을 통해 명주님 신업을 섬기신 선생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와타나베 선생님께서, 교주님과 교주님의 부인을 미행하고 도촬하는 사람들의 동료가 될 것이라고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와타나베 선생님께서는 평생 교주님을 헐뜯으려는 사람들로부터 교주님을 지키셨고, 그리고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런 사람들로부터 집요하게 공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주님을 버린 것에 의해 와타나베 선생님을 배신하고 있다는 것, 이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와타나베 선생님은 당신들을 보고 계십니다. 명주님, 2대교주님, 3대 교주님과 함께 보고 계시며, 당신들이 회개할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말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브라질에서는 와타나베 선생님의 마음을 계승한 분들이 일어났고, 와타나베 선생님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은 명주님 교단으로부터 떠나갔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와타나베 선생님의 수제자 중 한 분이었던 프란시스코 선생님의 마음을 계승한 분들이 일어났습니다.
와타나베 선생님, 당신이 뿌린 교주 중심의 씨앗은 이제 크게 성장하여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와타나베 선생님, 저의 선생님, 저의 유일한 선생님. 선생님께 영원한 감사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