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고한다」마사아끼사마 성언 2022년 6월 15일 메시아 강탄 본축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조회188회 작성일 22-08-20 15:43본문
「메시아 강탄 본축전」마사아끼사마 성언
2022년 6월 15일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고한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드디어 오늘(메시아 강탄 본축전의 날)을 맞이하여 이렇게 만명의 여러분과, 또 여러분과 이어진 많은 분들을 생각하면, 이야기할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함께 이 축전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뭔가 많은 것을 여러분께 전하고 싶다 라는 생각도 있고, 역시 평소의 월례제나 대제와는 다른, 특별한(당연합니다만) 그런 특별한 감정을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메시아 강탄 본축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축전이라고 할 정도이니 뭔가를 축하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방금 소개한 축전들도 많이 받고, 또 내빈 분도 지금 나리이 이사장께서 소개하신 분 이외에도 많이 계십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축하하고 있는가? 메시아 강탄 본축전에서 강탄이라는 것은 태어난다는 것이기 때문에,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것의 뭔가를 축하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들의 교조 오카다 모끼치 명주님께서 1954년에 메시아로 태어났다고 말씀하신 그것을, 68년이 지나 오늘 축하하고 있는 것인가? 명주님만이 메시아라는 걸 축하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당연히 사람들이 메시아로 믿고 우러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도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럼 오늘은, 그 예수님과 오카다 모끼치, 예수님과 명주님, 이 두 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이고, 그것을 믿는 우리가 모여 있는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하겠지요. 그럼 당신들은 오늘 예수님과 명주님 두 분뿐만 아니라, 세계메시아교 신도들도 메시아로 태어나는 길을 신으로부터 축복받고 있다는 것을 축하하고 있군요 라고,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반은 맞습니다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우리는 오늘 무엇을 축하하고 있는가 하면, 당연히 예수님이 선구자이긴 했지만 2천 년이 지나 명주님. 그 예수님과 명주님과 이어지는 전 인류(우리뿐만 아니라 전 인류) 그 전 인류가 메시아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길을 축복받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오늘 축하하는 것입니다.
전 인류입니다. 전 인류.
전 인류라는 것은, 불교도,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신도(神道)교도 또한, 지금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전 인류는 신의 자식인 메시아로 새롭게 태어나는 길을 걷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오늘은 신도뿐만 아니라 미신도 분들도 참례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그런 분들도 포함해서 빠짐없이 입니다. 빠짐없이 전 인류가 이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것을 축하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당신들은 그런 가르침을 믿는군요, 세계메시아교의 신앙이란 그런 신앙이군요 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고 안 믿고를 넘어, 진실이란 것은 존재합니다. 진실.
태양이 동쪽에서 뜬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아무도 믿지 않아도 매일 아침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면, 어떤 종교도 자신들이 믿는 가르침만이 진실이라 믿지요, 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진실이란 것은 존재합니다.
그러면, 진실은 하나지만 여러 해석이 있다 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나의 진실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고, 그것이 여러 종교가 되어 있다는 견해. 하지만 사실은 해석도 하나입니다. 왜냐면 신께서도 한 분이시기 때문에.
신께서 한 분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 신이 있다 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께서 한 분이라는 것은 진실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 분들이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진실입니다. 신께서 한 분이라는 건. 아무도 믿지 않아도 진실입니다. 신께서 한 분이라는 것은.
그리고 신께서 한 분이라면, 신의 소망도 하나이기 때문에 진실은 하나이지요.
왜 인간은 태어났을까? 이것에 대해서도 모두, 모른다, 모른다 라고 하고, 혹은 여러 진실이 있다 라고 말하며, 그것으로 됐다고 합니다만, 하지만, 아무리 그런 말을 해도 진실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분명 우리는 이 구원의 복음을 믿기는 하지만, 설령 우리가 믿지 않더라도 세계메시아교가 10년 후, 20년 후 없어져 버려, 나 자신도 이 구원의 길에서 벗어났다고 해도「전 인류를 당신의 자식인 메시아로 삼는다」는 것, 이것을 신께서는 절대로 이루십니다.
우리가 노력하든 말든, 인류가 이 구원을 믿든 믿지 않든, 신을 전혀 믿지 않더라도 신께서는 절대로 이것을 이루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니까요.
그래서 지금 제가 하는 말을 전혀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앞으로 어느 날, 누구에게나 신께서「너는 나의 자식인가?」라고 물으시는 것에 대해 「저는 당신의 자식입니다」라고 대답하는 날이 옵니다. 누구에게나입니다.
불교인 사람도, 유대교인 사람도, 신도(神道)를 믿는 사람도, 무신론자도, 언젠가 그렇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진실이고 진리이니까요.
우리는, 전 인류는 신의 자식인 메시아로 새롭게 태어난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메시아라고 말하지요. 그렇게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교 분들, 전 세계 그리스도교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이천 년 전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인류의 죄를 자신의 피로 속죄해 주셨습니다. 당연히 그것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의 인류의 죄, 또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의 죄, 또 그것뿐만 아니라 이천년 전부터 오늘, 그리고 금후, 미래의 인류가 범할 모든 죄를 속죄하셨다는 것이지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속죄주는 여러 명 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인류의 죄,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신께 피를 바침으로써 속죄해주셨다, 이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그 예수님으로부터 이천 년, 세계 극동의 일본땅에서 태어나신 오카다 모끼치 명주님께서는 최만년에 메시아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이 명주님께서는 어떤 존재인가 하면, 12월 23일 동지 다음날, 세계의 극동, 동쪽 끝의 일본에서, 그 동쪽의 수도인 도쿄에서, 그 도쿄 중에서도 당시에는 가장 동쪽의 하시바 라는 땅에서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야말로 세계 끝의 끝의 끝입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집안이 가난해서 무척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런 분이(세계 끝에 존재하셨던 분이) 메시아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을 감득하셨다는 것은, 사실 전 인류가 명주님처럼 될 수 있는, 메시아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그런 상징으로서의 사명을 가지신 분이 명주님이라는 존재였다고, 그렇게 우리는 믿습니다.
요는, 예수님의 참된 바람은, 그저 모두가「예수님. 죄를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신은 속죄주이자 구원의 주이며 용서의 주입니다」라고 하게 되면 좋을뿐 아니라, 실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신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그것을 예수님은 바라셨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과 일본, 또 이천 년이라는 시공을 초월하여, 그 예수님의 바람을 명주님께서 완결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인들은 말합니다. 아니 예수님은 유일한 존재입니다, 유일의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은 절대적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예수님의 유일성이자 절대성이란 것은, 사실은 유일한 신의 유일성이자 절대성입니다. 그리고 그 유일한 분, 유일한 신께서, 무려 인류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것이 말도 안되는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다시한번 우리 안에 있는 존재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만약 생명이라는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그것은 유일의 신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명주님를 쓰신 신은 똑같은 유일의 신이시지요.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는(자신 안에 계신 분은) 유일의 신이라는 존재입니다. 그것 이외에는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는 건 최고최귀의 분이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물 위를 걸었다고 들으면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도 못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존재는 신이시기 때문에.
애초에 명주님께서는「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거나 「상당히 그리스도교에 가까워진다」「예수의 예언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 나이다」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도, 당연히 예수님은 속죄주이자, 구원의 주이자, 용서의 주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서. 성서를 만드신 분은 당연히 하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명주님께서는「메시아교의 신은 그리스도교의 여호와이다」라고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서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사람들이 믿는 것을 통째로 받아들이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다음 단계. 남겨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사람들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그리스도의 재림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오늘 명주님 찬가에도 있었지만, 그리스도교 사람들은 언젠가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오고, 그리고 그때 최후의 심판이 행하여져 인류의 선악이 나눠진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앞으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우리가 보이는 형태로 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말은 사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그리스도나 메시아라는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구름을 타고 빛나는 영광을 가지고 이미 내려왔습니다. 그야말로 밤도둑이 오듯이 벌써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밤도둑이 오듯이 라는 것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지금 왔다」는 것이라면 밤도둑이 오듯이 왔다 라고는 되지 않지요.
명주님께서는, 메시아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시기도 하는데, 우리는 순연한 그리스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신비롭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라는 존재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 와 버렸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곧 온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바로 온다, 이건 믿어야만 할 일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바로 온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2천 년이나 기다리게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2천 년 전 구름을 타고 떠나셨다, 그리고 그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제1장 11절).
하지만 사실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떠나셔서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것을「아, 떠났구나. 이제 없구나」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예수님이 지금 당장 온다고 했으니 지금 이미 오셨습니다」라고 하는가? 어느 쪽입니까?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지금 이미 오셨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토마스는「내 눈으로 보지 않는 한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아, 믿습니다」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토마스에게「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그렇지요? (요한복음 20장 24절29절)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그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것이라면, 2천 년 전부터 아무런 진보도 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떠나셨다, 그 후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만, 그때야말로「벌써 내 안에 내려오셨네요」「한 사람 한사람 안에 내려오셨네요」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미 내려오신 것이라면, 다음은 최후의 심판의 문제가 아직 남아 있지요.
아니, 최후의 심판도 이미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신께서 지금의 인류의 행보를 보시고「너는 안 된다. 너는 좋다」라고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럼 최후의 심판에서 어떤 심판이 내려졌는가 하면, 그것은「용서한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만 열심히 신앙을 굳게 가지고, 자신을 선의 편에 두고, 그리고 언젠가 최후의 심판이 올 때, 나를 선의 편에 넣어 주실 수 있도록 하자, 라고 그렇게 앞으로도 살아가는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회개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불의를 저지른 여성을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데려오는 이야기가 있지요.
율법학자들은 이 여자는 불의를 저질렀으니 돌로 치는 형을 내려야 한다며 그 여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유대교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제대로 이 여자를 벌하는가 어떤가를 시도하려고 한 것으로, 이 여자는 불의를 저질렀으니 돌로 쳐죽어야 하는데 어떻습니까, 하며 예수님 앞으로 데려온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무언가를 땅에 쓰셨고,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너희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돌을 던지고 싶다면 던져라, 죄를 지은 적이 없다면 누구든 던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돌을 던지지 않고 한 명 또 한 명 떠났고, 결국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불의를 저지른 여자와 예수님 두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고 하셨다는 일화(요한복음서 8장 1절11절).
그러니까 죄가 같다는 것이지요. 누가「이 사람은 악이고 이 사람은 선입니다」라고 심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남의 죄를 심판할수 없습니다. 같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과 악을 나누는 것이든 뭐든 신께서는 이미「악」그 자체를 전부 용서하신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왜냐하면 예수님은「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하셨지요? 「회개하라」라는 것은 실은, 이미 최후의 심판은 끝났다는 것입니다. 「용서한다」는 심판이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상황이 있지요. 여러 세계정세도 있고 나쁜 사람이 이렇게 판을 치고 혼돈스러운 세상의 상황. 코로나도 있고, 전쟁도 있고, 사람을 속이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최후의 심판이 끝났을 리 없지 않습니까?」「그리스도가 재림했을리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우리는 말하고 싶지요.
그런데 사실은, 만약 우리가 남의 죄를 심판할 수 없다면, 우리도 같은 죄라는 것이지요.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은, 세상에서 여러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이것은 사실은「너 자신도 그런 모습이었지 않은가?」「같은 요소가 네 안에도 있지 않은가? 그러한 네 자신의 모습을 나는 용서했다는 것을 깨달아라」라는 것으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주변은 나쁜사람뿐이며, 나만은「아니요. 저는 나쁜 짓을 하지 않습니다. 나쁜 짓을 하지 않습니다」그리고「나쁜 사람들이 망하기를」라는 그런 삶을 우리는 앞으로 계속해서 살아갈 것인가요?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회개하고 있습니다」「나쁜 사람들은 언젠가 망합니다」라고, 우리는 계속 말한건가요?
그게 아니라 실은 주변에 일어나는 온갖 문제는「그런 너의 모습을 용서했다. 그것을 깨달아라」라는, 신으로부터의 메시지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끝났다. 다 용서해 주었다」라는, 그런 신의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신의 쪽에선 선과 악을 나누는 단계는 이미 끝났으며, 이제 모든 것을 용서하고 당신 곁으로 맞아들이는 단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 전까지는 나누는 세계였습니다. 하지만 신께서는 이미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용서한다」는. 그래서 이제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되었고, 신께서 우리가 범한 모든 것을 용서와 사랑으로 맞아들여 주겠다 라는, 단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많은 것을 안고 있지요? 그렇지요? 한 사람 한 사람.
하지만 그런 것은 해를 거듭하면, 처세술 같은 것으로 여러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조금씩 숙달되어 가지요. 갖가지 방법으로 극복해 갑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지혜와 경험이 생기기 때문에, 그러는 사이 그렇게 극복해 가는 것이 전부가 되어 버립니다.
확실히 뭔가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것은 대처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한 사람 한 사람「나의 이런 부분을 용서해 주셨군요」라고 말씀드려야만 합니다.
지금 가장 고민하는 것입니다. 가장 문제인 일. 그것에 대해서, 「이것은 상대의 모습, 상대의 문제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 상대의 모습은 실은 제 모습이었군요」「이런 모습을 메시아의 존명으로 용서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것은 진리, 진실이기 때문에, 메시아교 신자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고, 누구에게 말하지 않아도 되며, 메시아 신자여도 아니여도 됩니다. 단, 마음에 품고 있는 것에 대해「이것을 메시아의 존명으로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그것만으로 좋습니다.
만약 그것을 한다면, 그것은 신의 마음과 합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한 좋은 방향, 매사가 좋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메시아 강탄 본축전. 메시아 강탄. 강탄은 태어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메시아가 태어난다. 메시아로서 태어난다.
그럼 우리가 가장 최초에 태어난 건 언제인가요?
내가 가장 최초에 태어난 것은 1950 몇 년이라든가, 몇 월 며칠이라든가, 하겠지요.
근데 사실은 훨씬 옛날에, 천상에서 태어나지 않았나요?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우리? 태어났습니다. 신께서 계신 곳에서 분명 태어났습니다. 그것이 최초로 태어났을 때입니다.
기억이 안난다고 하지요. 그런 말을 들어도 기억이 안납니다, 하지요.
게다가 우리만, 세계메시아교 신도만이 아니라 인류가 신께서 계신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났잖습니까? 태어나서 신을 뵙고 신의 목소리를 듣고 신께 안기지 않았습니까? 잊으신건가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 지상에서 태어났을 때의 일도 기억못합니다. 서너 살이나 다섯 살 정도까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드물게는 기억하는 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억못합니다. 병원에서「응애 응애」하고 태어났을 때의 일, 그리고 그때 부모님이 말을 걸어주거나 안아주셨을 때의 일, 거의 잊어버렸지요.
그런데 그걸 잊었다고 해서, 내 부모에게「나는 당신이 나를 낳았을 때를 기억하지 못하니 당신은 내 부모가 아닙니다. 사랑받았던 기억도 없습니다. 안아주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지요? 나의 친부모에게.
오히려 기억이 잘 안 나는데도「나는 어렸을 때 사랑받았다」거나「당신은 나의 부모입니다」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태어났을 때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것과 마찬가지로, 천상에서 태어났을 때의 일도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났을 때의 일도 잊었듯이, 신께서 낳아주셨을 때의 일도, 인류모두 잊고 있습니다. 인류전부가, 모두, 그때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신께 대해「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나의 부모가 아닙니다」 「당신의 목소리 같은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사랑받고 안긴 적이 없습니다」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당신은 나의 부모입니다」「당신이 낳아주셨습니다」「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안겨 있었습니다」라고 할 것인가, 어느 쪽인가 입니다.
기억이 안 난다고「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실은, 기억나지 않더라고「당신은 나의 부모였습니다」라고 용기를 가지고 신의 품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 그것이 부모와의 재회입니다. 진정한 부모와의 재회.
그러니까 이것은 이론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지금 전혀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모의 사랑을 받아들이는가 아닌가? 그뿐인 이야기입니다.
「기억이 안 나기 때문에 부모는 없습니다」「기억이 없기 때문에 당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자신의 친부모에게 말할 수 있나요?
게다가 사실은 신이야말로 참된부모이십니다. 우리를 가장 사랑해주시는 분.
그래서 그분께「나는 당신의 자식이였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메시아 강탄 본축전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축하할 일이기 때문에.
재회. 진정한 부모와의 재회. 이 세상에서도 부모와 자식이 떨어져있다가 재회한다면 기쁘겠지만, 진정한 부모이자, 가장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분과의 재회이기에, 인간에게 있어서는 이 이상 축하할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2022년 6월 15일이 메시아 강탄 본축전이기 때문에, 이후의 인류는 그런 기회를 잃느냐 하면, 아닙니다. 왜냐하면 최초 태어난 곳은 천국이니까요. 천국은 영원한 세계,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내일이든 모레든 글피든, 만일「그랬구나」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의 부모와의 재회입니다.
그렇다면「진정한 부모와의 재회」인 메시아 강탄 본축전에 참가한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가능했고, 오늘도 가능하며, 또 앞으로도, 쭉, 영원히 그것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형태 있는 것이 구체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가장 구체적인 것은 영원한 세계입니다.
우리는 멸할 운명에 있습니다. 이 몸은 썩을 것입니다. 썩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목표로 하는 건, 인간의 생명이 아니라 신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또 신과 만나, 하나가 되어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구원입니다. 진정한 구원.
세상은, 이 세상의 생명이 구원받는 것이 구원이라고 완전히 믿고 있지요.
TV에서 드라마 같은 걸 봐도 의사가「생명을 구할 수 있다」하며 끝까지 노력합니다. 물론 그것은 정말 존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대로 죽어 버리면 구원은 없는 것이 됩니다.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하며 애썼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그 시점에서 구원이 없어져 버리지 않습니까?
건강법도 여러가지가 있지요. 건강법. 훌륭한 건강법을 실천하고, 운동도 하고, 식사도 잘해서 100세, 200세, 300세, 400세까지 산다 해도, 영원한 생명을 잃으면 끝입니다. 40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건강했습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그러니까 실은, 우리는 이 무대나 회장, 살아있는 몸, 이것이 확실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변해가지 않는 것, 확실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것은, 우리의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천국이나 천상이라고 불리는 대단한 영원한 세계. 이것이 가장 확실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실감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께서는 그것을 우리가 깨닫도록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어떻게든 깨닫도록 하고 싶으십니다.
왜냐하면, 몸이 계속 건강하고 아무일도 없으면, 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에 대해서. 그러니까 신께선 여러 가지를 일으키시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 세상은 큰일이 많은데, 앞으로 신께서 어떻게 하실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은, 더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내실지도 모릅니다. 뒤죽박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신께서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하나입니다.
아무리 내가 여러 질병에 걸리거나, 세계가 전쟁투성이가 되거나 그런 일이 있더라도 신의 목적은 단 하나. 나를 생각해 내고, 내 품으로 돌아오너라, 그것뿐입니다. 그 때문에 신께서는 모든 일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신의 목적을 믿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길 바랍니다 하고, 엎드려 신께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왜냐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지옥.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이다, 인류 멸망이다, 병으로 죽어 버린다 하게 되니까 그야말로 지옥입니다.
하지만 세계메시아교인 우리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의 사랑을 굳게 믿는 것이지요.
사랑이라는 말이 있다는 건,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전혀 사랑이 없다, 신의 사랑같은 건 없다고 생각들더라도, 그때야말로 세계 메시아교인 우리는「신의 사랑은 있습니다」라고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 후, 할렐루야 코러스 후에 연주하는 축전의 마지막 곡 제목은「당신이 내가 된다」, 이것은 제가 작사했습니다만,「당신이 내가 된다」입니다. 신께서「내」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신께서는「네가 되어도 되느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네가 되어도 되느냐?」「아니면 너는 스스로 살고 싶은가?」라고, 그렇게 묻고 계십니다.
되어 주시는 편이 좋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썩어 가야 할 존재, 죄의 짐을 지고,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유한한 존재. 하지만 이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영원하신 신과 하나가 된다면, 그것은 영광입니다.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 산다고 해도, 80, 90세에 끝나 버립니다. 후회도 있고 조금은 좋은 일도 했구나 로 인생 끝. 그것이 좋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 전 인류가.
그러니까 만일 인간에게 있어서의 기쁨이나 행복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께서 내가 되어주시는 것, 그것말고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나」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이런 나를 위해 내게도 와 주시고, 신과 같은 존재,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어도 된다고 신께서는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더 이상 예수님은 부정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위대한 존재. 최초에 신께서 메시아로 선택하신 존재. 하지만 사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메시아」라는 혼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것에는 상.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역할의 차이로 상하 관계가 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형제자매입니다, 우리는. 만약 모두가 신의 혼을 받고 있다면 사실은 전 인류가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세상이 되는 것은 틀림없지 않습니까? 가족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상이 왔습니다.
우리가 한 가족이 되고 형제자매가 되어 서로 안고 기뻐하는 세계가 이미 있는 것입니다. 눈앞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께서 준비하셨기 때문에. 신께서는 그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길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전 인류가 사실은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 기쁨이 있을까요? 진정한 부모 아래, 전 인류가 형제자매가 되어 배려와 애정을 가지고 빛나는 존재로 살아간다, 그런 기쁨이 있습니까?
앞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2022년 6월 15일, 오늘 메시아 강탄 본축전 날부터 세계는 변해갑니다. 실은 이미 변했습니다만, 하지만 지금부터 정말로 훌륭하게 빛나는 세계가 되어 가는, 그 시작의 날이 오늘입니다. 그 인류사에 남을 오늘의 날을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감개무량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