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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싸여」마사아끼사마 성언 2022년 생탄제 및 예수 성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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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192회 작성일 23-01-28 18:41

본문

생탄제 및 예수 성탄제 마사아끼사마 성언

 

20221218

 

희망에 싸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제전명이생탄제 및 예수 성탄제입니다만, 이런 제전명으로 제전을 거행하고 있다는 것 자체, 대단하다 라고 생각하며, 오늘 제전에 임했습니다. 그런 중에 이 제전명은, 이른바 그리스도교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리스도교화 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런 비판과 표리일체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그리스도교와의 관계에 대해서 제가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것은, 교주님께서 교단을 그리스도교화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교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전해드립니다.

  그리스도교화 한다는 것은,그리스도교화이기 때문에 의미로서는 그리스도교에 가까워진다라는 것인데, 만약 명주님께 교단은 그리스도교화 되어 가는 것입니까 라고 여쭌다면, 명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명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냐 하면그렇다」「그리스도교화 되고 있다」「그게 뭐가 문제인건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다들 아시겠지만, 명주님의 수제자이신 나카지마 잇사이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명주님께서는세계 인류 구제로 가자면 메시아교는 상당히 그리스도교에 가까워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메시아교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차이가 큽니다. 메시아교는(명주님의 종교는)상당히 그리스도교에 가까워진다. 언젠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드디어 시기가 온 것이다라고, 그렇게 명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제가 꾸며낸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명주님께서는 객관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메시아교는 상당히 그리스도교에 가까워진다는 식으로, 객관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종교 방향성을 여러 가지 세세하게 정할 수 있는 것은 명주님 자신이시기 때문에, 실제로는 명주님께서 신과 일체가 되셔서 메시아교를 그리스도교에 가깝게 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말하면, 명주님께서는 당신의 교단을 그리스도교화 해 나가겠다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머지않아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기가 왔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 말씀대로, 그때까지의 일본 관음교단과 일본미륵교회라는 불교적 교단명을 접으시고, 유대 그리스도교적인메시아라는 이름을 사용하셔서 세계메시아교로 하셨습니다.

  교단이 발행하는 기관지. 이것도 메시아교 개교까지는이었던 것을메시아로 하시고, 그리고 그 몇 달 후에는영광으로 하셨습니다.

  영광입니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영광은 완전한 그리스도교 용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발표했을 당시 기관지를 보면, 거기에는 신약성서의 인용 투성이입니다. 당시 명주님께서메시아에서영광으로 하셨을 때의 기관지, 거기에는 신약성서에서 영광이나 빛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말한다 라는 그런 구절이 일면에 가득 실려 있습니다.

  물론 명주님께서 쓰신지상천국 건설이라는 말 자체도 그리스도교적 표현이지요. 왜냐하면 불교적인극락정토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국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다가올 세계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명주님께서 쓰신 책에도천국의 복음천국의 복음서라는 제목의 책이 있지요. 굉장히 그리스도교적인 제목입니다.

  우리는 만일, 교주님께서 그러한 것을 계속해서 하신다면, 교주님께서는 완전히 교단을 그리스도교화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지금 말씀드린 것을 계속해서 하신 분은 명주님입니다. 명주님 자신입니다.

  더 말씀드리자면할렐루야 코러스도 있습니다. 이것도 가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명주님께서는 이할렐루야 코러스를 신도들이 불러야 한다고 해서, 당신께서 세우신 메시아회관에 오케스트라 박스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물론 최만년에는, 메시아로 새롭게 태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롭게 태어난다라는 것도, 성서의요한복음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3)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 그리스도교에 관련된 것과 메시아라는 이름은, 명주님 신업의 핵심중의 핵심입니다. 이 변화는 그리스도교화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메시아나 그리스도교에 관련된 것들(명주님 신업의 중심적인 것), 이것들은 사실 오랜 세월 우리에게는족쇄이지 않았나요? 족쇄.

  「메시아라는 것, 우리에게는 족쇄이지 않았습니까?

  만약 족쇄가 아니라면, 어째서 명주님 승천 후 세계메시아교를 세계구세교로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요?

  명주님께서 세계메시아교 라고 하신 것을 세계구세교로 개명하고, 명주님께서 메시아회관으로 하셨던 건물도 구세회관으로 개명하고, 그리고 지금 할렐루야 코러스를 연주하기 위한 오케스트라 박스는 그 구세회관에 있나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족쇄였던 것입니다. 명주님께서 남기신 것이. 게다가 우리가 족쇄로 삼아온 것은, 명주님 신업의 작은 일부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단명이나 건물에 붙인 이름이나 그러한 명주님 신업의 중심적인 것에 대해, 우리는 족쇄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그런 것들을 없애고, 명주님의 신업은 메시아를 드러낸다든가 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명주님 신업은 활동이다, 조레이나 자연농법이나 예술이라는 활동이다, 이것이 명주님 신앙이라고 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 활동이 주가 되자, 우리의 다음 발상은종교도 족쇄가 아닌가?라고 그렇게 되었지요. 종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종교로서 나아가면 사회에서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명주님 신앙은 조레이, 자연농법, 예술이라는 활동이 중심이기 때문에, 종교라는 틀을 없애고 조레이를 에너지요법 같은 것으로 내세워도 되지 않은가? 자연농법도 신의 존재 보다는, 세상에서 말하는 보통의 유기농이나 유기농법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해 가면 되지 않은가? 명주님께서는 단지 그런 농법 선구자였습니다 로 끌어내리고, 예술도, 예술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이 치유된다, 그것은 세상에서도 말하고 있으니 그런 방향성으로 좋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특별히 종교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라고 그렇게 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는, 메시아도 족쇄였고 그리스도교를 운운하는 것도 족쇄였으며, 종교라는 것도 족쇄였지 않습니까?

  거기까지 가버리면, 이제 사실상명주님이 족쇄라는 것이 아닐까요? 명주님 신업이라고 입으로 말할 뿐, 명주님께서 세상에 내놓으신 것은 전혀 내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런 모습으로 나아가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예를 들면 종교색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조레이를초종교로서 추진한다고 우리는 그렇게 얘기해 왔지요.

  그리스도교인이라도 조레이 해도 괜찮습니다 라든가, 조레이는 에너지 요법이기 때문에 어떤 종파의 사람도 관계없습니다, 받아보세요 라고, 그렇게 말해 왔습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명주님께서 메시아로서 새롭게 태어나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사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좀처럼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내부적으로는 명주님께서는 유일한 메시아로 하고, 하지만 그것은 포교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는 드러내지 않는다는, 그런 방법으로 계속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를 들면 그리스도교인이 별로 없는 일본이나 일부 국가와 지역에서 자기 만족으로 그렇게 하는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만일 그런 에너지 요법 같은 것을 전 인류가 하게 되었다, 보급 활동을 열심히 해서 전 인류가 하게 되었다 라고 되었을 때, 그때 갑자기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아니 사실은 오카다 모키치라는 사람은 유일한 메시아입니다 라고 말할 건가요?

  처음에는 그리스도교인인 채로 조레이나 에너지 요법을 해도 된다고 말해 두었는데, 언젠가 갑자기 그들에게, 사실 유일한 메시아는 오카다 모키치입니다 라고 말한 건가요?

  그때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 된다는 그리스도교인들이우리가 틀렸습니다라고 말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서구 등의 온갖 문화, 예술, 역사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토대로 해서 이루어졌지요. 부활절을 축하하거나 크리스마스라든가. 그것들을 모두 그들이 버리고우리가 틀렸습니다라고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닙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왜 명주님께서는 그리스도교와 호응하여 인류를 구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러니까 명주님만이 유일한 메시아 라는 것으로 간다면, 언젠가 분명 막힙니다. 막히고 우리들은 일종의 모순을 안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세상적으로 메시아로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세상과 알력을 낳고 싶지 않아서, 명주님께서는 유일한 메시아라는 것은 내부적인 문제로 하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문제는 직시하지 않고 간다, 우리들만이 명주님께서는 유일한 메시아라고 믿는다, 그런 모순을 안고 가면 그것은 언젠가 막힙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아무리명주님께서 유일한 메시아다라고 해도, 세상에서는이런 사람이 메시아를 자칭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며, 그런 그룹은 컬트(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종교단체) 취급을 받게 됩니다. 컬트.

  물론 그리스도교나 메시아교 라고 하기 이전에, 지금 이미 종교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지요. 특히 그 중에서 하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종교라는 정체를 숨기고 관련 단체 등을 통해서 포교 활동을 하려는 것, 그것도 지금 컬트의 정의처럼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종교는 숨기지 않습니다.

  종교법인이라는 것은, 넓은 뜻으로 말하면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국가가 국가의 공익을 위해 종교법인격을 부여하여 활동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교의 무엇이 나쁜건가요? 숨길 일이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물론 비록 종교법인이 없더라도 일본에서는 감사하게도 신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신앙을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애초에 명주님께서 종교를 숨기시지 않으셨는데 어째서 우리가 숨길 필요가 있나요?

  그것은 우리가 종교때문에, 지금까지 평범하게 사귀던 사람의 태도가 달라지거나 멀어지는 사람도 있었지요. 제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러십시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왜 숨기지 않아도 될 것을 숨겨야만 하나요? 숨길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교인 우리는 앞으로 숨기지 않을 것인데, 왜 우리는 오늘날까지 메시아라는 것이나 종교라는 것을 족쇄로 느끼며 여기까지 와 버렸는가 하면, 저는,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역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해서 라고 할까요, 명주님과 예수 그리스도 두 분의 존재, 이 존재에 관해 스스로 일종의 모순을 안고 있거나, 확실히 하지 않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명주님을 메시아로서 내보이면 그리스도교인과 알력을 낳으니까 그것은 지금은 그만두자 하고, 보통 피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주님을 통해 진실을 알아버렸습니다. 그 진실은 우선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이다. 인류의 죄를 속죄한 분이신 메시아.

  명주님을 유일한 메시아라고 하면,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것에 대해어떻게 하지?가 되어 버리지요.

  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신 분이며, 메시아라고 믿고 있습니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바람은, 예수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인류 누구나 신의 자식인 메시아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뭐가 있냐면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인류는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언제, 어디에 나타나는가 하고 찾고 있었습니다그리스도교인들도 그리스도의 재림이 언제일까 하고 대망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것 없습니다. 어디다 어디다 하며 찾는다든가, 언제다 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는 이미 전 인류 안에 재림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이자 메시아라는 혼이 우리 안에 임해왔습니다. 이미 있습니다.

  계속 밖에서 찾아도 별 것 없습니다. 내 안에 그 최고의 신께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입니다. 대체로 어떻게 유일의 신을 구별하나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깃든 신께서 유일의 신이시고, 우리 안에 계시는 것도 유일의 신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어느 쪽이 위다 아래다 를 구별하나요?

  전 인류가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라든가, 메시아로 새롭게 태어날 운명이다 라는 것을 몸소 증명하신 것이, 우리가 공경하고 공경하는 명주님이라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모순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어디에 모순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숨길 필요도 없으며, 명주님을 숨길 필요도 없고, 메시아라는 말을 숨길 필요도 없으며, 종교를 숨길 필요도 없고, 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는 것도 다 숨길 필요 없습니다.

  또 명주님께서는, 예수님은 속죄주이고 당신은 용서의 주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님을 속죄주이자 구원의 주이자 용서의 주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전에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만,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예수님께서 속죄주이며 명주님께서는 용서의 주라는 성언을, 오늘날까지 오직 명주님께서 예수님보다 위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만 이용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성언은 반대로 말하면, 명주님께서는 속죄주로는 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또 동시에 속죄의 단계가 있어야 비로소 용서라는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은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명주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주로 받아들이고 계셨는데, 우리는 그 속죄주를 받아들이는 단계를 건너뛰고, 예수님과 명주님중에서 명주님이 위이다, 이것으로 끝이다 라고 여기지 않았나요? 이것은 명주님께서 예수님보다 위라는 근거가 되는 성언이다 로 끝내지 않았나요?

  하지만 결국 예수님을 속죄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면, 명주님께서는 당신의 종교는천국적 종교라고 하시고, 먼저 천국에 올라가거라, 그리고 사람들을 구원해 올려라 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속죄주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신업으로서의 발상이 선덕을 쌓아가자, 선조 분들의 여러 인연이 있으니까 맑혀야만 한다, 열심히 봉사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께 다가갈 수 없다, 라는 식으로 되어 있지 않았나요?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은, 속죄주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명주님 안에서는 이미 죄의 속죄는 끝났습니다. 끝났기 때문에 천국에 가서 천국에서 구원해 올린다는 입장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속죄주를 받아들이는 단계를 건너뛰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죄로 얼룩진 채로, 죄를 맑혀야만 한다, 봉사로서 맑혀져야만 한다, 천국인이 되어야만 한다, 아직이다 아직, 어떻게든 어떻게든 라고 하며, 계속 자신은 죄에 더럽혀진 존재로서 걸어가야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속죄주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속죄주가 있어야 비로소, 우리가 구원이나 용서의 신업에 쓰임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의 존재와 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피로 속죄하셨기 때문에그 피를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하지 않는 한, 명주님 신업에 쓰임받는 길은, 이제는 없어지고 맙니다.

  오늘 제전명을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해도, 명주님께서는토꼬타치의 신--속죄가 없었다-면 이하늘과-땅은 멸하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천지가 멸해 버리면 명주님께서도 안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의 죄를 속죄해 주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성서에 대해서도 명주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냐면, 당신께서 물론 죄는 없었지만 형무소에 가신 적이 있는데, 그 때 수기를 쓰셨습니다 (19501030법난수기). 그 수기 속에서 명주님께서는 형무소 옥사의 각 방에 한 권씩 성서를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명주님께서는, 성서라는 것은 세계의 모든 종교관련 서적 중에, 죄를 회개하는 데 가장 힘이 있다, 이것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고, 그렇게 써 놓으셨습니다.

  회개하는 데 가장 힘이 있는 것은 당신께서 쓰신 것이 아니라 성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성언도 사실입니다. 제가 꾸며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성언을 봤을 때, 자기 자신을 뭔가 객관적인 입장에 두고, 그리고 명주님을 뭔가 비평가 위치에 두고, 이것은 비평가이신 명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만, 명주님께서 어째서 세계의 모든 종교관련 서적 중에 죄를 회개하는 데 가장 힘이 있는 것은 성서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냐면, 그것은 당연히 명주님 당신께서 성서를 읽으시고, 여러 종교 책이 세상에는 있지만 성서만큼, 나의 죄를 회개해야만 한다라고 느끼신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명주님께서는너희들이 죄를 회개하고 싶으면 성서를 읽어라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옥사의 각 방에 두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셨기 때문에 죄인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성서를 읽으면 죄인도 회개에 이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까? 우리는 회개해야 할 것이 없는 좋은 일밖에 하지 않는 선인인가요? 아닙니다. 우리자신 여러 가지를 안고 있습니다.

  명주님께서는 한 집에 한 권의 성서가 있는 미국이 부럽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서가 있는 가정이 부럽다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만약 명주님께서 성서를 통해서 회개의 힘을 가장 크게 느끼셨다면, 죄로 얼룩진 우리도 성서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 집안에 한 권의 성서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일 명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따르고 싶다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성서가 어떻다든가 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든가, 그런 것은 전부 듣기는 좋습니다만, 그럼 메시아교로서, 세상의 그리스도교에서 호소하는 것은 전부 좋은 것이라고 하며 그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냐면, 또 이것이 그렇게 달콤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가 인용한 명주님 성언만 봐도, 그것은 성언의 극히 일부입니다만, 정말로 그렇게 적혀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은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요.

  어느 쪽이냐 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명주님 모습 속에서 성언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예수님을 속죄주로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죄를 회개하기 위해 성서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진실을 알 수 있는 것은, 말하자면 교주님 덕분에 이 길에 이른 것이기 때문에, 성서나 그리스도교에 관해서도 그것을 안이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거나, 또 지금까지 명주님 성언이나 사적을 통해 해 왔던 것처럼 교주님 교도에서 벗어나 자기 본위의 길로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하며, 역시 그리스도교나 성서라는 것도 교주님의 교도아래에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 큰 소리로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2746)라고 외치셨고,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셨다고 하지요.

  이것을 그리스도교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여기는, 예수님께서는 신께서 살려주실 라 생각하셨지만, 신께서는 살려주지 않아서 절망하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세계로 가셨지만 죽은 지 3일 만에, 신의 힘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요는 예수님께서는 일단 신께 버림받은 줄 알고 절망하셨지만, 그 후 신의 힘에 의해 부활했다는 그런 에피소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단 한 구절입니다만, 정말 그런 의미인가? 아닌가?

  저는 지금 말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절망하셨다는 견해는 사실 아닙니다.

  오늘 성서배독에서 마리아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마리아는 마리아 전에 태어난 조상님의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지요. 그 말은 마리아가 짊어진 조상님의 온갖 죄예가, 그대로 예수님 몸에도 계승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것은 성령에 의해서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 자체를 받아들인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은 접어두고, 적어도 마리아의 몸과 피를 예수님께서는 이어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이라고 해도, 우리 방식으로 말하자면조상의 총합체입니다.

  그리고 신에 대한 죄라는 것은, 결국은 내 힘으로 살고 있습니다 라고 하듯이, 신의 생명을 자신의 것으로 한다는 것에 집약되는 것입니다.

  신께서는너를 영원히 살려주겠다라고 하시는데, 인간은 신의 생명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 내 마음대로수명이라는 사고방식을 만들어내고, 그리고 이 지상의 생명이 없어지면 끝이다, 나는 죽을 것 같으니 신이시여 살려주십시오 라는 세계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오르셔서 마지막 사망하실 때, 신께서는 전혀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전 인류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절대 버리지 않으셨는데, 우리가 마음대로 신의 생명을 내 것으로 하고죽음이라는 것,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 전 인류의 모습을, 조상의 총합체이신 예수로 하여금 표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그 자체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신께서 조상의 총합체로서의 예수님께, 눈에 보이는 형태로 그것을 표현하게 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은 목숨을 너희들 것으로 하여 나에게 반역했지. 그렇게 하며 살아봤자 그 다다르는 곳은왜 나를 버리셨나요?라는 절망의 세계이다라는 것을 신께서는 보여주셨습니다.

  신께서는, 신께 대해 죄있는 우리의 모습을 예수님을 통해 표현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것을 용서한다」「너희의 그 모습을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교주님의 교도하에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지금 말한 것처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수님 안의 조상님이라는 것을 생각하고는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웃사랑이라는 말도 자주 듣지요.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것도 보통 이웃사랑이라는 것은 남에게 좋은 일을 하자는 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것이 아니라진정한 이웃이란 그리스도교에서는, 그것은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웃사랑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에게 좋은 일을 하자고 해도, 우리 안에는 여러 가지가 섞여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남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우리는 아닙니다.

  만약 이웃사랑을 베풀 수 있는 우리였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오를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래서 사실은 이웃사랑이라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속죄의 피를 받아들인다, 한마음이 되어 받아들인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한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메시아교는 예수 그리스도와 명주님이라는 이 위대한 두 분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모순투성이로 살아왔습니다. 때문에 숨겨야만 했습니다. 어째서 메시아나 종교를 숨길 필요가 있는 건가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교주님께서 지금의 길을 열어주시고, 그리고 오늘과 같은 제전명의 제전을 거행하는 데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당연히언젠가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명주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에 가까워지는 것에 관해서는, 그 후 계속해서 변화가 있다는 것이 상정되지요. 그것은 명주님 승천 후에는, 교주님 아래에 있는 우리 손으로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명주님 재세 중에는, 변화에 이어 변화에 이어 변화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명주님을 본받아, 보다 더 명주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 걸음 앞, 반 걸음 앞으로라도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은 오늘이 진짜 마지막입니다만, 올해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데, 바로신을 두려워하다는 것입니다. 신을 두려워하다.

  교주님 말씀 중에대단히 황공하옵게도라고 말씀하시며 시작하실 때도 있으며, 또 명주님께서도신을두려이 바른길을지키는 인간만듦이 나의소망이요 사명인것이로다라는 찬가를 지으셨듯이, 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보통 심판의 신을 두려워한다는 그 두려움이라면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요는 나쁜 짓을 하면 하늘의 신이 보고 있다는 그 두려움은 우리가 신에 대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께서는 사실은 이미 심판을 내리셨고, 그리고 그 심판은 용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용서한다 입니다. 지금부터 네가 좋은 일을 하는지 나쁜 일을 하는지 보고 있겠다가 아닙니다.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도, 산타 할아버지가 착한 일을 하는지 보고 있다 라는 식으로 말을 하지요. 저도 집에서는 그런 느낌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만(일동 웃음).

  하지만 신께서는 이미 선악을 가리시고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심판을 내리셨습니다그리고 그것은용서한다라는 심판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행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신께서는 -어떠한 죄라도 사하시며입니다.

  「-어떠한 죄라도사하시며 그-어떠한 죄여도물으시는 천지의신이시여」.

  어떠한 죄여도 물으신다는 것은 우리는 바로 이해할 수 있지요. 하지만, 어떠한 죄라도 사하시고 이기 때문에, 어떤 죄도 용서하십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억지로이런 일도 용서받나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주위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든가, 법률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제대로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 라는 것은, 물론 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이런 나인데라는 그것입니다. 이런 저인데 신께서는 용서하시고 맞아주시네요」「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시네요라는 그 생각.

  우리 수십 년 인생의 모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신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 사실은 그 신의 큰 사랑을 느꼈을 때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황송하다라는 그 경외심이 생긴다면, 그것이 진정한 신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께선 어떤 일이든 하시는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실은, 이런 나의 모습도 전부 사랑으로 감싸주셔서 용서해 주셨네요라고 생각했을 때, 만약 내 마음속에,, 황송하다라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이 사실은신을 두려워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습니다만.

  우리가신을 두려워하다라는 것을 듣고 이미지를 그리는 것은, 나쁜 짓을 했을 때괜찮을까?하는 그 정도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계시는 신께는 황송하구나,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인생에서 오늘날까지 많은 일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올해도 많은 일이 있었지요. , 왜 저런 일을 해 버렸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이렇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있지요? 있습니다.

  물론 그것들에 대해 궤도 수정은 필요합니다. 다음에는 이렇게 하지 않도록 하자든가. 하지만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언제까지나 그것을 반성하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께서는그것은 내가 너를 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꼭 필요해서 너를 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우리의 실패라든지 후회할 만한 것들을 통해서 여러 생각들이 우리 마음에 떠오르지 않습니까? 신께서는 마음을 쓰셔서 구원을 진행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니까 쓰여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해버렸다, 말할 생각도 없었는데 말해버렸다, 알고 있었는데 해버렸다, 이런 것 있지 않습니까? 신께서는 그 모든 것을내가 필요해서 너를 쓴 것이다그리고책임은 내가 진다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것입니다. 물론 최근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일도 좋으며, 올해 일어난 일도 좋습니다만, 그것에 대해 신께서는반성 후회는 필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에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에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으며, 앞으로의 미래도 잘못은 하지 않는다. 좋은 일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신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좋은 일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신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전부 신께서 하신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부조화로 보이는 일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구원을 위해 우리가 떠맡아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신께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신께서는 오늘날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며, 우리에게 있어 나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믿기 어렵지요. 믿기 어렵지만 신께서 전부 다 하신다면 절대로 그렇습니다. 신께 대한 신앙심으로 말한다면 그렇습니다.

  때문에 신께서는지금까지의 일을 후회하지 말라」「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괴로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나는 사랑으로 너희를 좋은 일을 위해서만 쓰기 때문에라고 말씀하십니다.

  확실히희망이라는 말은 오래 사용한 말이긴 합니다만, 정말 우리에겐 희망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좋은 일밖에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올 한 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생,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신의 손에 전가하고, 그리고당신이 저를 써 주셨군요」「전부 당신의 용서 안이었네요라고 신께 말씀드리고, 그리고 또 내년에도 신께서 우리를 위해 좋은 일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사랑으로 임해 주시고, 좋은 일을 일으켜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그 신을 신뢰하고 그리고 또 우리는 예수님과 명주님 두 분을 받아들이고 믿는 동료이기에 올해도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지내왔듯이, 내년에도 또 함께 걸어갑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