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철하는 마음, 의로운 마음」마사아끼사마 성언 2021년 생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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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300회 작성일 22-02-06 13:36본문
「세계메시아교 생탄제」마사아끼사마 성언
2021년 12월 19일
「관철하는 마음, 의로운 마음」
나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세계를 상대해서라도 싸울 생각이다.
성언「종교문명시대(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방금 전의 비디오「세계구세교를 구한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저 자신 인상에 남은 것은, 명주님, 2대 교주님, 3대 교주님, 또 현 교주님의 모습은 물론입니다만, 특히 2대 교주님과 3대 교주님 아래에 모이신 신도 분들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인상에 남았습니다.
명주님께서 승천하시고, 사람에 따라서는 명주님 신앙을 그만두신 분도 계셨지요. 그런 가운데 명주님께서 유언으로 2대 교주님께 뒤를 맡기셨으며, 그리고 그것을 믿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명주님께서 돌아가셔도 명주님 신업은 끝이 아니다, 교주님 아래에서 계속되어 가는 것이다, 교주님께서 명주님 마음을 현계에 나타내신다 라는 것을 믿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은, 명주님께서는「앞으로의 일은 이사회 여러분이 모두가 합심해서 해 주십시오」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점입니다.
2대 교주님, 3대 교주님 아래에 모인 신도들도「이 분은 이사회에서 추대한 분이다」하며 2대 교주님, 3대 교주님 아래로 모였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명주님께서 2대 교주님께 뒤를 맡기셨다는 것은, 명주님께서는「교단의 중심은 앞으로는 교주이며, 지금부터 나는『교주라는 좌』를 통해 활동하겠습니다」라는 의지를 나타내신 것이기 때문에, 그 명주님의 마음을 믿으신 분들이, 영상에 있었던 것처럼, 2대 교주님, 3대 교주님 아래로 모였습니다.
그것은 이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진정한 명주님 신앙은 계속되었으며, 그리고 우리가 명주님을 알 수 있게 되었고, 명주님을 통해서 신과의 만남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는 것은, 명주님 승천후에「교주님」이라는 존재를 믿으시고, 그러한 신앙을 가져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여기에 모여있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 계셨기에 여러분이 계시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에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뿐만이 아니라, 지금 여러분께서 그 존귀한 신앙을 계승하고 계시기에, 앞으로도 명주님의 진정한 구원, 그리고 신과 만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이라는 것은 너무나 존귀한 것이고 감사하다고, 저는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명주님께서는, 어떤 단체에도 중심이 있다, 주인공이 있다고 말씀하시지요. 일본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천황 폐하입니다.
그리고 세계 구세교에서 그 중심, 주인공, 이것은 계속 교주님이십니다. 교주님.
그렇긴 한데, 그것이 부끄럽게도 교단이 분규가 일어나서, 지금「세계구세교」라 불리고 있는 사람들은, 오카다 요우이치 교주님은 주인공으로서는 필요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금후「세계구세교」에서는 도대체 누가 주인공일까요? 금후 누가 신도의 모범, 명주님 신앙의 모범이 되어, 그 분의 덕으로「세계구세교」라는 단체를 이끌어갈 것인가?
그것이 현재「세계구세교의 5대 교주」인, 토까이대학 명예교수 와타세 노부유키씨인가 하면, 아무래도 이 분은 앞에 나서지 않습니다. 규칙이나 교칙에「교주의 인증」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사회 사람들은 이 교주의 도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와타세 씨는 사실상, 이사회가 원하는 그런 절차를 밟아 주는 존재일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세계구세교」에서 그 주인공이라는 존재, 중심의 존재, 명주님 신앙의 모범으로서 신도들에게 추앙받아야 할 존재는 이제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게 누구냐 하면, 현재「세계구세교 관장」이라 하는 나가사와 요시유키씨입니다. 이 사람밖에 없습니다.
4대 교주님이 필요없다는 것은「세계구세교」는 지금「세계구세교 관장 나가사와 요시유키씨」라는 사람이 신도의 모범이며, 그 사람의 신앙으로「세계구세교」로 이어지는 전 세계 신도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됩니다.
저는 이 나가사와 씨라는 분이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보다도 어느 쪽인가 하면, 교주님 말씀은 이 부분이 가르침과 다르다는 식의 비판의 글 같은 것만 많이 내고 있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뭐, 방대한 명주님 성언에서, 여기가 다르다, 저기가 다르다 라고 비판하는 문장을 만드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만약「세계구세교」에 있어서 그렇게까지 나가사와 씨라는 사람이 중요하다면, 만약 허락한다면 나가사와씨가 이런 자리에 와서, 나가사와씨 자신의 신앙과 삶의 방식을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후에, 교주님과 제가, 나가사와 씨가 정말로 명주님 마음에 맞는 걸음을 걷고 있는지 판단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세계구세교를 구한다」라는 제목입니다만, 명주님께서는「세계구세교」라는 이름은 한 번도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명주님께서는 승천하실 때까지「세계메시아교」,「구세」의 한자에「메시아」라는 음을 달아「세계메시아교」.
그래서 명주님께서 재세중이라면「세계구세교를 구한다」라는 비디오 제목을 봤을 경우, 모두「세계메시아교를 구한다」라고 자동적으로 읽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명주님께서 승천하신 1955년에서 단 2년이 지난 1957년에「세계구세교」가 되었습니다. 바꾸기에는 사정이 좋았습니다. 「구세」라는 한자에 음을 별도로 기재하지 않으면, 보통은「구세」라고 읽기 때문에.
그래서 1957년부터 2021년 오늘날까지「세계구세교」로 왔습니다. 지금「세계구세교」라는 한자를 보면, 세상을 포함해 누구나「세계구세교」라고 읽습니다. 하지만 명주님 시절에는 아무도 그런 식으로 읽지 않았습니다.
「세계구세교」는「세계메시아교」로 읽었습니다.
만약 지금 명주님께서 갑자기 현계로 오셔서, 세계메시아교를 모두가「세계구세교」라든가「구세교」라고 하고 있으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개명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명주님께 대한 공격이였다고 생각합니다.
명주님께서는「구세」라는 한자는「메시아」로 읽어주길 바라셨습니다. 게다가「세계구세교」라는 한자를 쓰고「세계구세교」라고 읽는 것은「동양적이고 재미없다」서양의「메시아」라는 말을 쓰고 싶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는,「세계메시아교」를「세계구세교」로 하고, 그것을 정착시킨 우리는 다같이 명주님을 속여서 골탕먹인 것이라고, 최근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개명한 목적, 의도는 압니다. 요는「메시아는 대단히 종교적인 울림이 있는 말이다」「예수 그리스도도 메시아로 여겨지기 때문에 타종교를 자극하는 말이다」「그러므로 이것을 정면으로 내거는 간판으로 해서는 안된다」「원래 메시아의 활동은『세상을 구하는』것이기 때문에, 세계메시아교가 아니라 세계구세교로 해도 좋지 않은가」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단 그렇게 해서 명주님 마음에서 멀어지면, 그 다음은 제한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종교조차도 없어져 갑니다. 처음에는 메시아부터 시작했습니다. 명주님께서는「메시아」를 내놓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아니『메시아』라 해도 그 활동은 세상을 구하는 것이니 메시아라는 말은 내놓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음은「 『세상을 구한다』는 것은, 요는 세상을 더 좋게 하는 것이니 종교가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점점 갑니다. 이제 완전히 명주님 사정보다 인간 측의 사정입니다.
그게 뭐냐면, 우리들도 다 함께 관여하고 있습니다만, 상징적으로는「MOA」입니다. MOA미술관이나 MOA활동. 요는 명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거나 받아들여지고 있는 곳까지 낮추어 진행시켜 나가자 라는, 그런 방법이지요. 우리에게 있어서 이것은 전혀 남이 한 일이 아닙니다.
「MOA미술관이라면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편하겠다」라고 생각해 오지 않았나요? 하지만「메시아교」가「구세교」로 되고, 게다가 그런 종교도 아닌 활동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명주님 마음으로부터, 너무나도 멀리 멀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고방식을 아무런 저항도 없이 받아들이고, 오히려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데 적절하다 정도로 생각해 오지 않았습니까?
명주님께 있어서의 신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신이신데, 그것을 신도(神道)적인 신으로(신도(神道)나 불교는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신도(神道)적인 신으로 바꿔놓거나 해 오지 않았습니까?
이렇듯,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에 명주님을 낮춰버리고, 그 안에 자신도 들어가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래서 뭔가 조금 명주님 마음이 실현되겠지 라는 식으로 생각해 오지 않았습니까? 우리 모두.
그런 모습이 되어버린 우리가 잘못 디딘 첫 걸음은 세계메시아교를「세계구세교」로 해 버린 것. 이것이 가장 처음의 잘못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신(前身)인「주의 빛 교단」이 지금, 카타카나(일본의 외래어 등의 표기법)로 써서「세계메시아교」로 하고 있는 것은, 한자에 후리가나(보통 한자를 읽는 법을 표시하는 문자)인「세계구세교」로 해 버리면, 또, 언제 장래 누가 후리가나를 따서 「세계구세교」로 해 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명주님께서 내놓고 싶으셨던 음은「세계메시아교」이기 때문에 이젠 절대로「메시아」로부터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명주님께 대한 사죄를 담은 의사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세계메시아교」라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세계메시아교를 세계구세교로 한 것에 의해, 명주님의 뜻이나 명주님께서 남기신 것 그 자체보다도, 교단의 운영이나, 사람들에게 전하기 쉽다든가,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쉬운, 인간측의 사정을 주체로 한 모습으로 쭉 들어가 있었습니다.
조레이. 조레이도 그렇습니다.
명주님께서는 이미 육십 수 년 전입니다. 육십 수 년 전에「조레이는 제 2의 문제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레이에 대해서는, 교주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데「조레이는 제 2의 문제」라고 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명주님이십니다. 「앞으로는 상념의 세계이다. 조레이는 제 2의 문제이다」라고 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명주님이십니다. 명주님께서 세계메시아교 시대에 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명주님의 마음을 받지 않는 세계구세교에 있어서, 이것은 사정이 나쁩니다. 포교, 선교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 조레이는 편리하기 때문에. 그래서 확실히 말하면 세계구세교에서는 명주님 마음이 어떤지는 등은, 더 이상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주님께서 이 명주님 마음에 어떻게든 응답하시려고「명주님께서 조레이는 제 2의 문제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사실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신의 손이 있고, 우리는 마음에 여러 가지를 느끼는데, 그것을 신께서 받아 주고 계시지 않는가? 그 사랑의 손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있지 않는가?」라는 것을 호소하시자, 그 교주님께 대해서 교주님은 조레이를 부정하고 있다 라고 합니다. 그것은, 그런 사람들은 명주님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교도 있지요. 교주님께 그리스도교인 친구가 있어서, 그리스도교에 대해 배우고 있다, 그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 논법, 정말로 괜찮은가요?
오늘 생탄제 다섯수의 찬가. 친절하게「명주님 찬가」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확실히 그리스도교를 부정하고 싶은 분들은 오늘의 명주님 찬가는 교주님께서 지은 찬가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싶을 정도이지요. 다섯 수 전부「할렐루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주님께서 저렇게까지「할렐루야」라고 말씀하셨나 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는, 일상 생활이나 대화 속에서「할렐루야」라고 말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명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데 만약 명주님 신도중 누군가가 갑자기「할렐루야!」라고 한다면「그건 명주님 신도로서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는 우리가 있지 않나요? 그 정도로 우리는 명주님 마음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명주님께서 그렇게「할렐루야」라고 말씀하시는데 일상생활에서「할렐루야」라고 한 번이라도 말한 적이 있을까요?
오늘 성언도 명주님께 있어서는, 예수도 명주님자신도 일체로서 보고 계십니다. 명주님은「그리스도교 학교에 가는 게 뭐가 나쁘냐. 예수를 배례하는 것은 나를 배례하는 것과 같다. 나를 배례하는 것은 예수를 배례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명주님께서는. 명주님 생탄일이 12월 23일,
예수 생탄일 12월 25일, 반드시 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메시아교를 세계구세교라는 이름으로 바꿔버리고, 이제 종교조차도 아닌 길이 옳다고 생각할 정도로 명주님 마음으로부터 멀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명주님께서는 어떻게든, 우리를 진정한 길로 되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것으로 교단에 대혼란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세계구세교 시대의 역사는 형편없는 걸음이었습니다. 내분에 이은 내분. 성지를 서로 빼앗고, 경찰이 출동하고, 재판, 재판, 뭐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명주님께서 엄한 사랑의 채찍으로「세계 메시아교로 돌아가라」「나의 마음을 알아라」라는 것을, 혼란을 통해 가르쳐 주시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우리는 갈데까지 갔습니다. 우리의 동료가「교주님을 미행.도청.도촬한다」는 데까지 가버렸습니다.
이 행위는 신앙인은 커녕, 사람으로서 가야할 길에서 벗어나 버린 행위입니다. 거기까지 타락해 버렸습니다. 우리들 자신이. 이 일은 다른 사람을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에 대해서도「몇번이고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라든가「이제는 긍정적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라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것은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남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역시 우리가 마주 봐야만 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요?
잘 생각해 보면, 이 미행·도청·도촬이라는 것도, 그것을 한 사람들은 이 행위가 겉으로 드러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싶지는 않지요.
그래서 잘 생각해 보면 그들이 하려고 했던 일은, 실은 교주님의 사적인 시간을 숨어서 뒤따라 다니며 촬영하고, 뭔가 약점 같은 걸 발견하면, 그 정보를 뒤에서 교주님께 내밀고, 그러면 교주님께서 위축되어 가만히 계시겠지, 달라지시겠지, 이것으로 우리가 하는 말을 듣겠지, 하는 그런 목적이었습니다. 그렇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숨어서 뒤쫓을 필요는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미행, 도청, 도촬이라는 행위 그 자체도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수법. 자신들에게 불편한 사람, 방해가 되는 사람이 있을 때 취한 그들의 수법. 저 사람은 있으면 불편하다, 어떻게 할까, 그렇다, 숨어서 뒤쫓아다니자, 그리고 뭔가 정보를 입수해서 약점을 잡고, 그것을 빌미로 우리가 말하는 것을 듣게 하려는 이 수법. 이것이 사실, 더 나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왜냐면「세계구세교」입니다. 세상을 구해야 할 존재의 사람들. 그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이 수법.
그럼, 만약 교주님께서 그것에 굴복하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러한 방법을 취하는 사람들과, 그것에 굴복하는 약한 교주님이였다면, 그 아래에 있는 우리들은 끝입니다. 그런 교주님과 그런 사람들 아래에 있는 우리들은 이제 끝입니다.
보통 책임임원이니 이사니 이런 높은 입장이 된다는 건, 다른 신도들보다 명주님과 가까운 존재라서 그런건데, 그 사람들이 그런 수법을 취하고, 그리고 교주님께서도 그것에 굴복한다, 그럼 그 아래에 있는 우리들은 이제 끝입니다.
그렇지만 교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수법을 취하는 사람들 아래에 있게 되지 않도록 일어서 주시고, 단호히 싸워 주고 계십니다.
또 여러분께서도, 그 교주님 마음에 응답하신 여러분, 바른 길을 가기로 결심하신 여러분이신 것이죠.
그래서 저는 지금「세계구세교」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교주님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거의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정보는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도 여전히 교주님께로 오지 않는다면, 저는 명주님의 이름으로, 그런 사람들을「명주님 신도」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왜냐면 명주님께 너무나 죄송하지 않습니까? 그런 일을 실행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것을 용인하고 있는 교단, 그 아래에 있는 신도들, 그 사람들을「명주님의 신도이다」라고 하는 것은, 너무 명주님께 죄송하지 않을까요. 그런 일을 하거나 그런 행위를 인정하고 교주님께로 오지 않는 신도는, 더 이상 명주님 신도가 아닙니다.
지금 왜 저에게 이런 말을 하도록 명주님께서 명하셨는지, 그 깊은 부분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명주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어하실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명주님 신도라고는 부를 수 없는 상황의 그런 사람들은 가능한 한 없는 것이 좋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명주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그런 행위는 회개해야만 한다」「회개하고 진정한 길로 오라」라고 강하게 바라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들이「나는 명주님의 이름을 더럽힌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해 버렸다」라고 깨닫고, 그리고 회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명주님께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그러니까 확실히「듣고 싶지 않다」는 것은 압니다. 미행이 어떻니 숨어서 어쨌니 하는 것은 좋은 이야기는 아니니까. 하지만 구원을 위해서(명주님 신도라고는 이제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아야만 할 일, 들어야만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판도 있지요.
교단이 재판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여러분이 어떻게 파악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뭐랄까, 자신들이 옳다느니 옳지 않다느니 그런 쩨쩨하다고 할까요, 그런 것 때문에 우리가 재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저쪽은, 만약 재판에서 이긴다면「됐다! 명주님, 2대 교주님, 3대 교주님으로 이어지는 교주님을 내쫓았다」「명주님 손자를 내쫓았다」라고 기뻐할까요? 명주님 신도로서 그런 일로 기뻐한다는게 있을 수 있나요? 그런 것은 명주님의 신도로서는 이제 갈데까지 다 간 모습이 아닙니까? 더는 떨어질 곳이 없을만큼 다 떨어진 모습이 아닙니까?
하지만 만약「세계구세교」가 교주님께 다시 이어진다면, 아직 회개의 기회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세계구세교」에 있어서의 유일한 구원의 밧줄은, 그들이 재판에 지는 것, 이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그들에게는 유일하게 남은 구원의 밧줄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재판에서 이기든 지든 간에 교주님 아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흔들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재판을 하는 것도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제가 지금, 여러 가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하면, 우리는「명주님」이라 하면, 여러 이미지를 가집니다만, 우리는 명주님의「의로움(義)」「의로움(義)을 관철하는 마음」을 잘 잊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오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관철하는 명주님, 의로운 명주님, 이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명주님 찬가에도「오직세상에 강한것은자기를 잊어버리고 올바른-길-을 관철하는사람이리」라고 있습니다.
이것도 막연하게 받아들이면 막연한 이해로 끝이지만, 자기를 잊어버리고 올바른 길을 관철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의 사정이 있으니까요, 내 사정이. 아직 이런 일이 있다, 이것이 아직 있기 때문에 좀처럼 관철이 안 된다, 이것이 해결되면, 이것이 끝나면 관철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올바른 길을 알고 있다면 우리 사정을 내팽개치고, 설령 어떻게 되더라도 그것을 관철하는 것에, 신과 명주님께서「그래, 그렇다면 얼마든지 내 힘을 원조해 주겠다」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우리는 거기서 인간의 형편에 걸려서 자기를 잊지 못하고, 나에게는 이런 사정이 있다고 관철하지 않으면, 절대로 신. 명주님께서는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교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데, 옳은 일을 위해 나서 주신 것이 아닙니까? 관철해 주셨지 않았습니까?
「선과악-의 차이조차모르는 인간만드는 가르침-그것은 거짓진리이노라」
당연히 미행과 같은 행위는 인간으로서는 악입니다. 그것을 모른다면 아웃입니다. 우리가 그 정도로 무지하기에, 그 정도로 가짜 진리를 지금까지 믿고 있는 모습이었지 않을까요?
「신-앙-의 가장중요한일은 예의범절을 지키는데있음을 알지어다신도여」
현계에 있어서 예절의 중심은, 구세교에 있어서는 교주님입니다. 명주님께서는 이 찬가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교주님께 예절을 다하는 것이, 실은 신앙에도 관계가 있다」라고 타일러 주십니다.
교주님께 예절을 다할 수 없다면, 신께 예절을 다하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자기들의 그런 형편에 따라, 이 교주는 마음에 든다, 이 교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면, 신께 대한 예절 등은 도저히 다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께서는 뭐든지 하시는 분입니다. 요즘 세상의 뉴스를 보면 알지 않습니까? 그러한 모든 일, 언뜻 보면 인간의 형편 따위는 도외시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주님에 대해서조차 자기들 형편대로 받아들이고, 내쫓았다면, 그렇게 뭐든지 하시는 신께 대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당신께서 뭔가 필요가 있어서 해 주고 계시는군요」라는 예절 등은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물질에-만 의지하여오로지 붙잡으려고 애써도달아나는 행복이란두글자」
확실히, 물질, 법인격, 성지, 시설, 교회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원한다고 해서 미행 같은 일을 하거나,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을 인정하고, 그런 사람들한테 간다면 끝이지 않습니까? 「물질」을 원해서 그런 일을 한다면 신앙인으로서 끝이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모르나요?
「멸하여가는 거짓된-인간의 허무함이여 빛의길에등-을 돌렸기때문이리」
「빛의 길」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명주님의 길입니다. 그리고 명주님의 길은 세계 메시아교이므로 명주님의 길은 메시아의 길입니다. 그리고 이 메시아의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은 교주님이십니다. 그것은「빛의 길」이라는 것은「교주님 아래에 있는 메시아의 길」입니다.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메시아교를 개교하심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도 받아들이고 계시기 때문에, 메시아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와 명주님 두 분이십니다. 그것은「교주님 아래에 있는 예수와 명주님의 길」 이것이「빛의 길」입니다. 이것을 외면하면「멸해 간다」고 명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멸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세계구세교」분들은, 만약 재판에 이겨서 교주님께로 이어지는 길이 없어진다면, 남아 있는 것은, 명주님의 심판(이라 할까요, 명주님께서는 이미 그 사람들을 포기해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은 신의 심판뿐입니다.
신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히브리서 제10장 26절~31절 참조. 말씀 마지막에 게재). 그것은 물론 회개하거라 라는 사랑 때문이긴 합니다만, 무서운 일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빛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세계구세교를 구한다」영상의, 2대 교주님, 3대 교주님 때의 영상에 나온 신도들처럼, 맑고 높고 존귀하고 흔들림 없는 신앙을 바치고 계십니다.
오늘은 명주님 생탄제입니다. 명주님께서는 어떤 탄생일 선물을 가장 기뻐하실까요? 그것은 명주님께 있어서의 가장 큰 보물은, 신도인 여러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관철하는 마음」 그것을 가장 기뻐하실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 교주님 아래로 모여서「조레이는 제 2의 문제」「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라는, 명주님께서 오랜 세월 바라신 것에 하나하나 응답드리고, 그리고 그 길을 관철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불리한 일이 있더라도「빛의 길」「옳은 길」을 관철하면 신, 명주님께서 얼마든지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명주님 생탄제인 오늘, 명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신앙을「가장 좋은 생일 선물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반드시 기뻐해 주실꺼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제전 전에 피아노 연주가 있었습니다만「오 홀리 나잇」이라고, 예수가 태어난 날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예수가 태어난 날은 축하해야 할 날입니다. 하지만 명주님께서 태어나신 날도 축하해야 합니다. 그 두 분이 합쳐서 한 분. 예수와 명주님 두 분이 합쳐서 한 분, 이것이 명주님의 길입니다. 명주님의 길이자 세계메시아교의 길이자, 빛의 길. 그 빛의 길을 걸어가는 앞에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과 행복이 사실은 이미 보이고 있습니다. 그 길을 우리는 지금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여러 일이 있겠지만, 우리는 맑고 관철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의로운 마음을 관철하는 우리의 앞길에 신은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함께 빛의 길을 일직선으로 걸어갑시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 진저.
「히브리서」제10장 26절~31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