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뿐」마사아끼사마 성언 2022년 신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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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232회 작성일 22-02-26 20:31본문
신년제 마사아끼사마 성언
2022년 1월 1일
「빛 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은 설날이라 새해의 일출을 보신 분도 계시겠지요?
저는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새해 일출을 봤습니다.
그래서 일출, 태양이라는 것으로 제가 생각한 것은「나뉘어짐」이라는 것입니다. 나뉘어짐.
명주님께서 세계 메시아교를 개교하신 것은 1950년. 그때까지는 메시아가 아닌 관음. 그리고 명주님께서는 관음이라는 것은, 선악 무차별의 구원, 어떤 사람이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관음은 선악 무차별. 하지만 이제 세계 메시아교가 되어서 이번에는 메시아가 나옵니다. 메시아가 되면 더 이상 선악 무차별이 아니라 앞으로는 선과 악이 확실히 나눠진다고, 그렇게 명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설날 일출을 보면서 그 나뉘어짐 이라는 것을 조금 생각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명주님의「앞으로 나누어 간다」라는 마음과, 한편 세상에서 확실히 지금까지 허용되어 온 것이 허용되지 않게 되는 측면은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는 어느 쪽인가 하면, 다양성이라고 하나요, 여러 가지를 인정해 가야만 하는 그런 흐름으로 되어 있지요.
그것은 물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표현하게 되어 있는 여러 가지의 삶의 모습을 평등하게 받아들여야만 된다 라는 것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종교라는 것도, 여러 종교가 있어서 좋으며, 그 여러 종교를 인정하고 가야만 한다 고 지금 되어 있지요, 지금.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오히려「나누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메시아교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 그런식으로 차츰 되었습니다.
그 부분이 명주님의 방향성과, 세상의 어떤 종교 어떤 사고방식도 인정해 가야만 한다 라는 방향성이, 반대인 것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실은 진리는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진리를 우리는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다양한 생각이 있어도 좋다.」라고 하며, 사물을 상대화하고,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교묘하게 피하려 하는 우리의 모습도 있지 않을까 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명주님과 방향성이 반대라면, 우리 신업의 진행방식은 어땠는가?
명주님께서는 관음시대에는 선악 무차별로서, 요는 폭을 넓혀서 어떤 사람이든 모여 들어도 좋다 라는 것에서, 메시아가 되시고 나서는 차츰 폭을 좁히셨습니다. 나누어 가셨습니다.
명주님께서는, 메시아교 신앙을 전하고 만약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면 쫓아다닐 필요는 없다, 오히려 차라리 내쫓으라고 하셨습니다. 전 인류를 구원한다고 해도, 신의 쪽에서는 구원할 사람과 구원하지 않을 사람을 이미 나누었으니 쫓아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명주님의 방향성과 명주님 승천 후 우리가 걸어온 방향성, 이것은 도대체 어땠는가 하면, 한마디로 말하면 반대였지 않았나 라고 생각합니다.
관음 활동 중 하나인「응신미륵」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활동은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요는 상대의 상태에 맞춰서 구원의 형태를 다양하게 바꿔간다 라는 것이지요.
선언찬사에도「광명여래로서 나타나 응신미륵으로 화하시고」라고 있듯이「화하시고」는「둔갑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의 본성이 아니라 오히려 그 본성을 감추고 둔갑한 모습으로 구원을 진행해 가자 라는 것입니다.
이「응신미륵」과 같은 것으로, 자주 명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은 「화광동진」, 이「화합하는 빛」이라는 것은, 인간들과 화합해 가자 라는 것이 아니라 (뭐 그런 의미도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여기는 빛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으로, 요점은 자신의 본성을 숨기는 것. 그리고 동진이라는 것은, 자신은 사실은 대단한 존재이지만, 자신이 굳히 티끌이 되어 속세의 티끌에 같이하고, 그리고 그렇게 하여 상대에게 맞춰 구원을 진행해 간다는 것입니다.
이 화광동진이라는 것은 원래는 불교 용어로, 이것은 좋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억제하고 오히려 상대에게 맞춰가자, 세상에서 말하는 것에 맞춰 가자 라는 방법.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세계 메시아교가 되었을 때, 관음은 물론 끝났지만, 이「응신미륵」이나「화광동진」이라는 것도 지나간 것이라고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의 본성을 숨긴다는 것은 요는, 메시아라든가 종교라든가 나뉘어짐 등, 이런 것을 숨기고, 세상이나 사회에서 말하여지고 있는 수준으로 자신들의 업을 낮추고 구원을 추진해 가는, 그런 시대는 끝났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찬가도 많이 있지요. 여러분께서『조.석배 찬가』에서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화광동진이나 응신미륵이 끝났다는 것과 관련된 찬가는 많습니다.
이를테면「빛을감추고 세속에섞여있던 응-신-의 미륵의-신업은 이미끝이났도다」.
화광동진이나 응신미륵처럼 본성을 감추고, 상대방이나 사회에 맞추는 것은 이미 끝났습니다. 아니 물론, 명주님께선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통하게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것은 임기응변으로 해 나가야만 하는 응신의 중요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신업의 추진방법으로서는「응-신-의 미륵의-신업은 이미끝이났도다」이기 때문에, 본성을 숨기고 사회 등에 맞추어 신업을 추진해 가는 시대는「이미 끝이 났도다」이미 훨씬 전에 끝났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비슷한 것으로「화광동-진 응신의-신업이 가까스-로 끝났을-것이리 꿈결과도같-이」.
이제 본성을 숨기고 사회에 맞춰 신업을 진행해 가는 것은 지났을뿐만 아니라「꿈결과도 같이」이기 때문에, 과거의 산물, 이미 과거의 이야기라고 명주님께선 말씀하십니다.
또는「화광동진의 옷을벗어던지는 그-때-가 드디어-왔으니 모두각오하-라」.
그러니까 화광동진이라는 것처럼, 본성을 감추고 티끌이 되어 속세와 같은 수준으로 명주님을 설명해 간다는 옷을 이제 벗어 던저라 라는 것입니다. 「벗어던지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런 방법에서 탈출하는 것에는 용기, 각오가 필요하다 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드디어 왔으니 모두 각오하라」 드디어 그 때가 왔는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지금까지처럼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 명주님을 세상에 소개하고, 그리고 그것이 받아들여져서「아 다행이다, 다행이다」라고 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두 각오하라」라는 표현. 이것은 경고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 나아가는 방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자신들의 본성을 세상에 나타내면서 걸어가야 한다, 그러니 세상에 나올 각오가 너희들에게는 있는가 라는 경고입니다.
「황공하게도 응신의낡은옷을 벗어던지고 떨쳐일어났노라 거침없이메시아로」.
우리는 거침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에 맞쳐서 해 나가는 방법은 편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당연히 편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벗어던지고 여러분은 거침없이 일어나시겠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메시아」였습니다. 「응신의 옷」을 벗어던졌더니 그 옷안의 본체는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메시아의 구원, 메시아를 전면에 내세워가는 구원, 그 시기가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숨기기는커녕,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거침이 없다고 명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조금 비슷한 것으로「화광동진의 세상에묻혔던나 바로지-금 대지를 –박차고 춤추며나가리라」.
「대지를 박차고 춤추며 뛰어나간다」입니다. 이제 뛰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명주님께서는 기뻐하고 계시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줄곧 당신 안에 있는 메시아라는 존재를 숨겨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세계 메시아교가 되어, 드디어 밖으로 내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지를 박차고 춤추며 뛰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명주님의 기쁨과 기백. 심지어 이건 지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들으면「앞으로 그렇게 열심히 나아가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명주님께서 세계 메시아교를 개교하신 후 확실히 말씀하신 것이기에, 벌써 7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이러한 수많은 찬가에서 명주님께서는 본성을 숨기고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신업을 진행해 가는 것은 이미 끝났다고, 70년도 더 전부터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명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우리는 어땠는가요?
명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의 우리의 발자취로 말하자면, 종교를 감추고, 신을 감추고, 그리고 명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곳까지 낮추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명주님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 왔습니다.
자주「명주님을 세상에 내놓는다」라고 말했지요? 그리고 우리는 사회적으로 명주님께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명주님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라고 생각해 오지 않았나요?
하지만 지금의 찬가에서도 분명하지만, 명주님께서 세상에 내놓고 싶으셨던 것은 메시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쪽인가 하면, 메시아라는 종교적인 것은 명주님을 세상에 내놓은 것에 방해이다 라는 정도로까지 생각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세상에서 말하는 것으로까지 낮춰서 소개하고 명주님께서 인정받으면「명주님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고 말해왔습니다만, 그것은 완전히 착각입니다. 완전히.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상징적으로 말하면, 우리도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만, MOA 미술관이라고 하듯이 MOA의 활동이라는 것으로, 종교라는 방법을 숨기고, 세상에서 말하는 수준으로 명주님을 낮춰가는 방법입니다.
조레이도, 세상에서 받아들여지는 표현으로 바꿉니다. 예술활동도 세상에서 말하여지는 방법으로 전달합니다. 농업도 세상에서 말하여지는 것과 같이 바꿉니다.
아무리 그런 식으로 명주님을 세상에 내놓아도 그것은 화광동진입니다. 명주님께서는 그런 방식은 끝났다고 말씀하십니다. 벌써 70년도 더 전에.
그런데도 우리는 메시아를 내놓는 것보다 사랑의 화신의 명주님, 이타애의 명주님이라는 그러한 명주님 상을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명주님의 바람은 우리가 세상을 위해 진력하는 것이다, 라고 해버리고, 그리고 이미 세상은 그런 일을 많이 하고 있으니,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 라고 말하고 있었으며, 그것으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도 명주님의 이타애의 정신을 가지고 하고 있다, 훌륭하다, 그런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뭔가 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신업이 나아간다, 명주님의 바람이 실현됐다 는 등, 그런 식으로 오늘날까지 우리들 전원이 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명주님께 대해 많은 교의를 위반해 왔습니다만, 이러한 방법들은 이미 첫걸음부터 방향성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명주님께서 정말 원하신 메시아라는 것을 내놓으려하신 교주님을 교의 위반이라 여기고, 교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이상하다고 해 오지 않았나요?
사실은, 대지를 박차고 춤추며 나가고 싶다는 명주님의 마음이 교주님 안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것을 교주님께서는 표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명주님께서는「세상에 묻혔던 나 바로지금」이라 하시며 세상에 묻혔던 곳에서 간신히 70년 전에 나왔는데, 우리는 다시 생매장하려 했습니다.
모처럼 명주님께서는 대지를 박차고 뛰어나오셨는데, 우리는 세상에 메시아도 내놓지 않고, 종교도 아닌, 신도 아닌 그것이 명주님의 신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뭔가요? 명주님으로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주님께서 저렇게까지 확실하게 관철해 주시는 것은, 명주님께서 교주님 안에서「나는 다시 묻혀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 이 메시아라는 것도 내부적으로「메시아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건 간단합니다. 「명주님만이 메시아다」라는 것으로.
하지만 명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메시아라는 것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00%.
메시아교를 개교하셨을 때 명주님께서 하신 인터뷰. 그것은 외부가 아닌 교단 기관지의 인터뷰인데, 거기서 기자는 세계메시아교가 개교한 것과 관련하여 명주님께 묻습니다. 「메시아라는 것은 보통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과 이 세계메시아교의 개교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취지의 질문.
그것에 명주님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시는가 하면, 예수는 서양에서는 확실히 메시아라고 되어 있지만 정의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시작. 이어서 명주님께서는, 20세기 전반까지는 신께서는 아직 그 진정한 힘을 발휘하시지 않았다, 하지만 드디어 20세기 후반부터 힘을 발휘하신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서양에서는 필시 그리스도도 본래의 실력을 발휘할 것이다, 동양에서는 메시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래와 같은 종교적 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더 대단한 신비한 힘이 나타난다 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건 예수에 관련된 직접적인 질문입니다. 게다가 메시아교 개교 직후의 대단히 중요한 타이밍에 하신 인터뷰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가 아니라면, 거기서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나만이 메시아다.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다」라고 하시지요.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세계메시아교가 출현하면, 신께서는 더욱 힘을 나타내시고, 서양에서는 그리스도도 앞으로 필시 본래의 실력을 발휘한다, 동양에서는 메시아가 힘을 발휘해 나갈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의「동양에서는 메시아」의「메시아」는 분명 명주님 당신의 신업을 말씀하시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메시아교의 신업, 서양에서는 그리스도가 점차 힘을 발휘해 간다, 이런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나입니다. 명주님께 있어서는 예수도 명주님 당신도 하나. 명주님께서 말씀하시는「메시아」안에 그리스도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때 분명히 말씀하셨지요. 사실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었다, 나만이 메시아이고, 앞으로 나만이 힘을 발휘해 간다고 말씀하시지요.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에 관한 직접적인 질문이기 때문에.
이런 찬가도 있습니다. 「할렐루-야 환호의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조용히강림하리 메시아그리스도」.
이거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메시아 그리스도」입니다. 메시아와 그리스도라는 각각의 존재가 따로따로 내려오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명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이자 메시아인 혼을 받으셨고, 또 그것은 예수에게도 깃든 혼이며, 그리고 지금 교주님께서는 명주님을 모범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그「메시아 그리스도」라는 혼을 받아라 라고 전달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미션스쿨에 대한 성언도 있었습니다. 신도가 명주님께 자신의 아이가 그리스도교계의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에 명주님께서는 그것이 뭐가 문제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신도는 학교에서는 그리스도를 배례하고 집에서는 관음님을 배례하는 것이 좀 그렇다고 합니다. 여기서의 관음님은 사실상 명주님입니다. 이에 명주님께서 뭐라고 하셨는가? 「그리스도나 관음님이나 똑같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서양의 관음님, 관음님은 동양의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하나입니다. 무조건 하나입니다. 명주님께서「메시아」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의 활동을 무조건 하나의 것으로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걸 생각하면,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메시아강탄 본축전」 오늘 찬가에도「나의꿈-이 실현되려하는날 다가오기에 가슴벅차오르는 오늘날이로구나」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의「나의 꿈」의「꿈」을「메시아강탄 본축전」이라고 바꿔 읽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명주님의 꿈이 드디어 실현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메시아강탄 본축전은 확실히 축하할 일입니다. 큰 축하, 큰 경사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한번 그것에 관련되거나 참례하는 이상 이젠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메시아강탄 가축전을 명주님께서 거행하시고 지금까지 본 축전은 아직 거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 축전의 의미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명주님 모습에 따르는 것이다, 그것을 결심하는 것이 본축전이다, 라고 신앙적으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지상에서 메시아강탄 본축전을 한다면 이제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 메시아강탄 본축전에 참례한다는 것은「나는 교주님 아래 예수 그리스도와 명주님과 이어져, 메시아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길을 걷겠습니다」라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입니다. 메시아강탄 본축전이라는 것은.
그래서 이 본축전에 참례했는데도 불구하고, 만약 그 후 이 길을 더 이상 가지 않는다면, 이제 다음 기회는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히 대단히 축하할 일입니다만, 각오는 필요합니다. 그것은, 일단 그 자리에 있었던 이상, 신께서는「그럼 지금부터는 너를 그러한 존재로 간주한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의 자식이 되는 길이기 때문에 기쁨의 길이기도 하지만, 신께서는 진정한 부모이기 때문에 엄격함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길에 들어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각오가 있는가 어떤가? 그저「아, 대단하다」라고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주님께서 많은 것을 교도해 주신 가운데, 명주님만이 메시아이기 때문에 교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이상하다거나, 그리스도교와의 교류는 이상하다고 생각해 오지 않았나요?
그럼, 만일 그렇게 비판한다면, 우리는「명주님만이 메시아인 메시아강탄 본축전」을 열면 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개인이나 좀 작은 단체에서 그런 본축전을 개최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상당한 규모의 큰 단체가「명주님만이 메시아인 메시아 강탄 본축전」을 거행한다면, 그것은 세상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정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부정입니다. 그리스도교와의 대치 선언입니다. 진짜 메시아는 어느 쪽이냐고 싸우는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명주님만이 메시아인 메시아강탄 본축전」을 거행한다는 그 각오가 있고서 교주님을 비판한다면, 백보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마저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으면서도 교주님께는「명주님만이 메시아인데 그리스도교와의 교류는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태도는 비열합니다.
정말로 교주님에 대한 비판의 자세를 관철한다면「명주님만이 메시아인 메시아강탄 본축전」을 각오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 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 확실하게「우리는 그리스도교와 적대하는 종교입니다」라고 선언해 주면 좋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메시아교를 개교하셨을 때「그리스도교와 적대한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고 하셨습니다.
명주님께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게 하나의 나뉘어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명주님만이 메시아인 메시아강탄 본축전」을 열고, 예수를 부정하고 그리스도교와 대립해 갈 것인가, 아니면 예수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교주님 아래 명주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메시아강탄 본축전」을 열 것인가.
왜냐하면 이「메시아」라는 것에 대해 명주님께서는「종래와 같은 종교적 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종래와 같은 종교적 관념의 메시아란 무엇입니까? 그것은「메시아는 한 사람밖에 없다」라는 사고방식입니다.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세계 메시아교의 탄생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도 힘을 나타낸다고 말씀하셨으니, 메시아교의 신업은 예수와 함께 나아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메시아에 관한 것, 예수에 관한 것, 이것은 이번 교단 정화로 구분되었습니다.
그런데 명주님께서는「선악의 나뉘어짐」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신께서 선악을 확실히 나누신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관음은 선악 무차별, 그러나 메시아는 선과 악을 분명히 나눕니다.
메시아를 받아들인 사람은 선이고,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악이다 라는 설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다 라고「명확한」것이 아니라서 조금 이해하기 어렵지요. 그것은「메시아를 받아들인다」라고 해도, 그 정도는 가지각색입니다. 그렇게 생각될 때도 있고 생각되지 않을때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선악을「확실히」나누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확실히」 그것은 누구의 눈으로 봐도 알 수 있도록, 또 명주님께서는 동시에 메시아교 내의 신도도 나뉘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2할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고, 그렇게 만년에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 선악을 확실히 나눈다 라든가, 메시아교의 신도를 나눈다라든가, 이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되지요. 저는 이러한 것은 이미 지나간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실은 그렇지 않고, 최근 「이런 일인 건가」라고 생각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몇 번이나 말씀드렸듯이 이 미행· 도청·도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행·도청·도촬이라고 하는 행위는, 세상에서는 이러한 이유라면 인정하겠다 라는 것은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종교인입니다. 신의 심판, 신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악입니다. 미행·도청·도촬은 악입니다.
명주님 찬가「남의눈―을 속이는건이―미 남의물건을 훔치는것같—은 일로되는것이리」 미행·도청·도촬은 남의 눈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미행같은 행위는 명주님께 있어서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과 같다, 즉 도둑이라고 하십니다. 도둑질은 분명히 악입니다.
그러면 바로 여러분은「그 얘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하시겠지만, 명주님께서는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기 위해, 신문사 경영까지 하려하신 분입니다. 명주님께서는 옳은 일을 관철하는 것이 근본에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만일 여러분 중에「이 얘기 이제 그만 듣고싶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명주님의 정의의 마음을 잊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하거나 용인하고 있는 단체에 소속되어, 그 단체를 인정하는 것은, 결국 명주님께서 그러한 도둑과 같은 행위를 인정하고 계신다는 것이 됩니다(명주님께서는 인간의 눈을 속이는 것은 도둑과 같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하지만 명주님께서 그런 행위를 인정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 때문에, 미행·도청·도촬이라고 하는 행위. 이것은, 명주님 신도라면 정당화할 여지는 제로입니다. 제로. 물론 회개는 남겨져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래서 이번 교단 정화에 의해, 명확하게 선과 악을 나누었다고 생각합니다. 미행같은 행위를 실행한 사람, 인정하는 사람, 또는 어쨌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면서도, 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집행부와 이어진 전종자, 신도. 이것을 나누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이번 교단 정화는 그것만 나눈 것처럼 보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런 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그것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명주님께서는 이타애를 대단히 소중히 하셨지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라, 남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미행이라는 행위는 절대 이타애 정신의 발로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이 취한 방식. 자기들에게 있어 곤란한 사람들이 있을 때 그들이 취한 수법. 그것은 대화나 이런 걸로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교주님, 잠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교주님의 사적인 시간을 교주님께서 눈치채지 못할 사람을 골라 따라다니며 촬영하고, 거기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들이 말하는 것을 듣게 하려는 이 수법,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거기에 이타애는 절대로 없습니다.
「아니,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안됐다」고요? 상대방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런 방법을 취하는 것이 허용되는건가요? 허용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미행 같은 행위는 명주님의 신도라면, 어떠한 이유가 있든 정당화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을 정당화하게 되면, 이미 명주님의 신도로서는 아웃입니다.
그래서 미행·도청·도촬이라는 행위를 인정할 것인가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 이것을 나눔으로써, 명주님께서 말씀하신 근본적인 이 「이타애」라는 것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 이것을 나누었습니다. 명주님의 이타애라는 가르침을 받을 것인가 받지 않을 것인가, 이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행위를 하거나 인정하면서 명주님의 이타애를 사람들에게 설하거나, 이타애는 중요하다고 말한들, 그것은 그저 기만입니다.
신앙자가 그런 행위를 행하는 곳이 지상천국인가요? 그러니까, 그런 행위를 실행하거나 인정함으로써, 그런 사람들은 지상천국 건설을 탁상공론이 아닌, 실제 삶의 태도로서 이룬다는 것을 이미 포기해 버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도 나누었습니다.
지상천국 건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태도로 주위사람들을 감화시켜 나가서, 인류모두가 정말로 맑은 존재가 되어가자고 하는 것도 포기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성지는 지상천국의 모형이지요. 그런 미행 같은 걸 하면서, 와 성지다, 미술관이다 말한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또는, 이것은 미행의 내용에 들어갑니다만, 명주님께서는 종교의 힘으로 세계 평화 실현이 가능합니까 라는 물음에 대해「반드시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스도교인들과 힘을 합쳐 진지하게 싸워 간다면 세계 평화는 실현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교주님께서 그리스도교 친구들과 교류하고 있는 것이 안 된다면, 그럼 세계 평화도 포기할건가요? 세계 평화 실현.
그러니까, 미행·도청·도촬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주님께서 말씀하신「세계 평화의 실현」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단순히 다른 종교와 손을 맞잡고 더 좋은 세상으로 해 나아가자 하는 것의 부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미행·도청·도촬이라든지 그와 관련된 수법입니다. 자신들에게 곤란한 사람이 있을 때 취한 수법, 이것은 작은 문제처럼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받아들이지 않는가를 나눈 것에 의해, 결과적으로 무엇이 나눠졌는가 하면, 그것은 명주님의 이타애의 정신을 받아들이는가 받아들이지 않는가, 지상천국건설을 추진하는가 하지 않는가, 세계평화 실현을 위해 살아가는가 가지 않는가, 타종교와 손을 잡고 세상을 더 좋은 장소로 해 가는가 가지 않는가, 이것도 나뉘어졌습니다.
그것은, 그것이 나뉘어졌다는 것은, 이번 교단 정화에 의해 사실상, 명주님의 신도인가 아닌가가 나뉘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타애라든가, 지상천국 건설, 세계 평화입니다. 그것을 전부 없애면 더 이상 명주님 신업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미행·도청·도촬을 받아들이는가 받아들이지 않는가로 나눈 것은 대단히 알기 쉽습니다. 신을 믿는가 믿지 않은가. 이것은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50% 믿고 있다, 저 사람은 70% 믿고 있다 든지, 그렇게 되어 버리기 때문에.
하지만, 그게 아니라, 미행같은 행위를 받아들이는가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가 명주님의 신도이고, 누가 명주님 신도가 아닌지, 이것이 명확하게 나뉘어진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런 행위를 인정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명주님께 「이 사람들은 명주님의 신도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은 더 이상 명주님 신도가 아닙니다.
물론 회개하면 별개입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행한 것에 대해 뭔가의 이유로 정당화하고 회개하지 않고, 교주님은 이상하다, 우리가 옳다, 그래서 쫓아냈다 라고 한다면, 더 이상 명주님 신도가 아닙니다.
재판 등에 관련된 걸 말씀드리자면, 어느 쪽에 정당성이 있는가 라는 것으로「자칭」이라는 말을 씁니다만, 이에 관해서는 정말로 그냥 「자칭」입니다. 「자칭. 명주님 신도」.
더 이상 명주님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멋대로 명주님께서 쓰신 신체를 배례하거나, 명주님께서 남기신 재산을 사용하고 있는, 단지 그것 뿐인 이야기입니다.
교주님께서는「메시아」라는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게다가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라「우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더 이상 피할 방법이 없어졌습니다.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말하자면 우리 안에 있는 사신이 큰일이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막고 싶다, 가둬야만 한다 하고 당황하며 일부 사람들에게 저런 행위를 떠맡긴 것이지요.
그러니까 명주님 찬가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선과악-을 갈라놓아주시는 큰- 신력을 휘두시는메시아 신업황공하도다」.
메시아가 나타나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에 의해 저런 비열한 행위를 분명하게 드러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궁지에 몰림으로써 그런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선과 악을, 누구의 눈에도 알 수 있도록 확실히 보여주시고, 그리고 선택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명주님께서는, 대체로 대부분의 사람이 어중간한 상태로, 언젠가 결정해야만 할 운명이 된다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결정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아직 결정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빨리 결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나눠주셨습니다.
그래서「우리는 선이고 저 사람들은 악이다」로 이야기가 끝나면 편합니다. 「됐다, 우리가 옳다, 선이다, 명주님께서 받아주고 계신 신도다」 라고 끝나면 편하지요.
물론 여러분의 결단은 정말 존귀합니다만, 거기서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가 하면, 실은 끝낼 수 없습니다.
「그럼 선인인 우리들이 앞으로 일년간 열심히 합시다!」라고 끝마치고 싶지요. 하지만 그렇게도 안 됩니다. 악의 분야의 일,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전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제가「선악 무차별」이라는 걸 듣고 떠올린 이미지는, 흐린 날씨 같은 느낌입니다. 해가 안 떠서 흐립니다. 그 시대는, 태양도 나오지 않아서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확실히 알지 못해도, 신께서 「나에게 오라」라고 불러주신 것에「네」라고 답하면 그것으로 구원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께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신께서는 이번에는 태양을 내보내려 하시어, 구름 사이로 메시아의 빛인 태양을 비추셨습니다.
이렇게 빛이 나오자, 이번에는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하지요. 그러자 비로소 이것은 선이고 이것은 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의 상태입니다. 그림자를 보고, 저 사람들은 나쁘다, 미행·도청·도촬은 악이다, 예수를 부정하는 것은 악이다, 그리스도교와 호응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악이다 라고 하며, 자신들은 선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지금, 이 상태입니다.
구름 사이로 태양이 나온 것에 의해, 지금 그림자를 확실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태양 측, 저 사람들은 그림자 측,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여기서 끝낼 수 없습니다.
명주님 찬가에「천-심-에 해가혁혁하-게 빛-나-면 땅에서있는자의 그림자조차못보리」라는 것이 있는데「천심」은 하늘 한가운데, 그 하늘 한가운데 태양이「혁혁하게」라는 것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땅에 서 있는 자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라는 찬가입니다.
이 찬가는 어떤 의미일까요?
지상의 태양 빛으로는 그림자는 보이지요. 적도직하에서도 그림자는 보입니다. 적도직하의 태양이라도 그림자가 사라질 정도의 밝기는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 찬가에서「해(日)」, 태양은 물질적 태양이 아니라 영적 태양 바로 그것입니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태양이 하늘의 한가운데, 천심, 하늘의 마음, 하늘의 중심, 그것은 우리들의 중심에서 찬연히 빛나고 있습니다. 「땅에 서 있는 자」, 이 경우의 땅에 서 있는 존재는 우리 안에 많은 분들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여러 요소가 (많은 분들의 모습이) 영적 태양에 의해 비춰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미행·도청·도촬은 나쁜 일이다, 저 사람들은 말도 안된다 라는 식으로, 지금 그 그림자를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신이 선악의 판단을 하고 저 사람들은 나쁘다, 이 사람들은 좋다 라고 그저 말하고 있습니다. 딱 그런 상황입니다.
하지만「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빛이 비추고 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자신들은 선이다, 저 사람들은 악이다 라고 하며, 단지 그 그림자를 계속 보고 있기만 한다면, 자신들은 선인 측, 하지만 저런 나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로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은, 그것을「아, 이 나쁜 사람들의 모습, 이 그림자는 내 모습이었군요」「신이시여, 이 나의 모습을, 명주님과 함께인 메시아의 존명으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나의 모습을」입니다. 이타애가 없는 모습이라든가, 세계평화를 거절하는 모습이라든가, 그런 나의 모습.
그래서 그것을 신께서 받아주신다면, 그것은 이번에는 그림자가 아니라 빛입니다. 지금까지 전부 그림자라고 생각했던 것, 나쁘다, 나쁘다고 생각했던 것, 이 모든 것이, 만일 신의 빛으로 감싸인다면 이번에는 전부가 빛입니다. 그럼 더이상 그림자는 없습니다.
확실히 우리 안에는 많은 자들의 죄가 있습니다. 이것을 교단의 일로 말하자면, 물론 이 미행의 문제입니다만,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매일매일 여러가지 일로 그림자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와 상대하며 마음에 안 든다든가, 가족, 자녀, 직장, 그런 것으로 그림자를 계속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이 문제는 곤란하다, 저 사람들은 말도 안됀다, 나는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뿐이라면, 단지「선과 악을 구별했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빛의 쪽에 있다고 하는 자기 만족에 젖어, 그림자의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로 끝입니다.
하지만 그림자마저 없애는 빛이 있습니다. 그림자는 지상의 빛으로는 없앨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의 빛으로 감싸이면, 우리 자신 안에 어떤 어두운 마음이 든다 해도, 어떤 어둠이 있더라도, 그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은 빛으로 비춰주겠다고 신께서는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이 찬가는, 그저 사실로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안 됩니다. 언젠가 그림자는 없어진다 로는 안 됩니다. 그게 아니라, 내 자신이 이 그림자는 나의 모습이네요 라고 신께 의사표시하지 않으면, 그저 그림자를 보고, 나는 선이고 빛, 상대방은 악이고 그림자라고 하는, 그런 삶의 태도로 계속 갈 뿐입니다.
지금까지의 인류의 발자취,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모습, 그 모든 것이 선과 악처럼 되어 있지요. 하지만 그 모든 것,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게 하는 빛과 사랑에 감싸이면 모든 것이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건 좋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쁜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어떻게 합니까? 그것과 나는 관계없다며 위선자처럼 살아간들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 와 있기 때문에.
새해의 일출. 새해의 일출이 나오면 축하한다, 감사하다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1월 2일이 되면 더 이상 새해의 일출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1월 1일에 나온 첫 일출을 보고 감사함을 느끼는 그것을 훨씬 넘어선 감사한 빛이 우리 안에 계속 있습니다.
그 빛이 항상 우리를 비춰주며, 어떤 어둠이 있더라도 그 그림자를 없애고 빛으로 해 주겠다, 빛으로 감싸주겠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용서해주겠다 라고, 신께서는 말씀해 주십니다.
「용서」라는 말을 들으면「그래도 나는 저 사람은 평생 용서할 수 없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그것도 용서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평생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갖는 것조차도 용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해 첫날의 일출을 보고, 1년에 1번 감사하다 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봤을 때 적어도 1년에 1번 정도는「사실은 이렇게 눈부시고 감사한 빛이 내 안에 있구나」 「내 안에 있는 어떤 어둠도, 어떤 그림자조차도 없애주는 대단한 빛이 항상 내 안에 있구나」라고 생각하신다면 어떨까요?
그것이 진짜의 조레이 빛입니다. 쭉 꺼지지 않는 빛, 그것이 진짜의 조레이 빛입니다.
새해 첫날만으로 끝내거나 하루만으로 끝내거나, 또는 조레이 손을 들고 있을 때만 나오는 빛이 아닙니다. 그것을 안 이상, 아이가 입원을 해야만 한다, 걱정이다, 조레이를 해 줘야 하는데 하며 걱정할 일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 빛을 인정하지 않으면 계속 걱정, 걱정, 걱정이 됩니다. 조레이를 안 해줘도 괜찮을까 라고 계속 걱정할 뿐입니다.
교주님께서 제전에서 조레이를 하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교주님께서 조레이를 해 주신 것은「너희 안에 빛이 있지 않느냐」「신의 손이 있지 않느냐」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정도면 알지 않으셨나요?
여러분 안에, 그런 것을 믿는 마음이 길러져 왔기 때문에, 명주님께서는「다음 무대로 가거라」「지금까지의 일을 내던지고 다음 무대로 가거라」라고 말씀해주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대지를 박차고 춤추며 나가리라」라는 찬가처럼.
이 새로운 진정한 빛은, 손을 들고 있을 때만 나오는 그런 작은 빛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께서는 전 인류 안에서, 항상 조레이를 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빛의 말씀」이 있지요.
「신은 빛이시므로, 빛이 있는 곳에 평화와 행복과 환희가 있으리. 무명암흑에는 투쟁과 가난과 병이 있으리니. 빛과 번영을 바라는 이여 오라. 와서 메시아의 존명을 찬미하라. 그리하면 구원되리라」
이것에 전부 들어가 있습니다. 「빛의 말씀」에 전부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신은 빛이시므로」라고 들으면, 빛에 비춰지고 있는 쪽만 생각해서, 나았다든가 낫지 않는다든가, 과학적으로 수치가 이렇다든가 하는 것만 말하고 있지요.
하지만 명주님께서 빛을 보여주고 계신 것은「오라」이기 때문에, 빛이 있는 곳으로 오너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빛을 봤다면 빛이 나오는 곳으로 돌아오너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춰지는 쪽만을 보고, 그림자라든가, 병이 나았다든가, 낫지 않았다 든가 합니다.
명주님께서는 병이 낫거나 해서 빛을 알게 되었다면 빛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너라 라고 하십니다. 그림자 같은 것이 있어도 메시아의 존명을 찬미하라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그리하면 구원되리라」이기 때문에 구원됩니다. 그림자가 빛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빛의 말씀」에 다 들어있습니다. 구원의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새해 일출을 보고 그저 감사하구나 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그림자가 있어도 없애주겠다 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지금 아직 하늘에 태양이 떠 있습니다만, 태양을 봤다는 것은 진짜 태양을 생각해 내라는 것입니다.
네 안에 있는 여러 그림자를 진짜의 조레이 빛으로 감싸주고, 사랑과 빛으로 네 안을 전부 채워주겠다, 그림자를 일체 없애 주겠다 라는 신의 마음을, 오늘 우리는 생각해 냈습니다. 또한 그렇게 모든 것이 빛에 감싸이는 것이 구원의 신업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신께서는 전부 해 주십니다. 그림자가 있어도 없애주시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제는 보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올 1년, 우리는 정말로「나는 그러한 빛에 감싸여 있습니다」라는 기쁨 속에서 걸으며, 또 만약 허락된다면,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에게(왜냐면 이렇게 훌륭한 구원은 세상에 없습니다.)그것을 나누어주는 신업에 쓰임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