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first partner, KWANG IL 마사아키사마

마사아키사마 성언

HOME > 마사아키사마 > 마사아키사마 성언

「당신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마사아끼사마 성언 2021년 5월 월례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조회200회 작성일 21-11-17 11:39

본문

 5월 월례제 마사아끼사마 성언

202151

 

당신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교단의 역사는 분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구세교의 지금까지의 역사는 분쟁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지.

  여러분도 아시듯이, 명주님 승천후, 3대 교주님 때는 재판은 물론이고 성지와 거점을 서로 차지하려 하여, 경찰이 출동한 일도 있었습니다그 후, 일단 화해를 했습니다만, 또 다시 주도권 분쟁과 같은 일이 있어, 최종적으로는 교주님께서 계시는 것에 불만의 마음을 가지고 미행 같은 것을 하여 내쫒아 버리게 된 것이지요.

  우리는 자주교단 정화라고 합니다만, 본래 이 표현은 외부 사람이나, 또는 신, 명주님께서 우리들에게이것은 정화입니다.이 다툼은 사실은 좋은 일을 위한 겁니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이해합니다만, 구세교의 분쟁은 내분이기 때문에, 본래 우리가이것은 정화다라고 말할 입장은 아니지 않을까 라고최근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가족이 집 안에서 싸움을 하여, 이웃집들과 주민들에게 폐를 끼쳤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이것은 정화입니다. 좋은 일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보통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요역시집안내의 싸움으로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야만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단의 발걸음은 분쟁의 걸음이었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명주님께서는 도대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대승애라는 성언이 있습니다만, 거기서 명주님께서는 사랑을 주창하는 종교에는 반드시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종단 내의 다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럽에서는 십자군, 일본에서는 불교의 승려들끼리 싸운 일도 있다고,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십자군이라는 것은, 본래 기독교 신도가, 성지의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이슬람에 대해 일으킨 전쟁이기 때문에, 자세히 말하면 종교 내 라는 것과는 다릅니다만, 유대 기독교라는 큰 틀 속에서는, 그렇게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명주님께서는다툼이 있는 종교는 이미 종교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이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툼이 있는 종교는 이미 종교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이치이다

  이것, 우리는 어떻습니까?

  보세요. 세계 구세교입니다. 하지만 그 역사는 다툼, 내분의 역사라고 외부사람도 포함, 모두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명주님께서는다툼이 있는 종교는 이미 종교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는 싸움을 할 때도, 그리고 지금도명주님의 마음은 이렇다」 「아니다. 우리야말로 명주님의 마음을 안다명주님의 마음을 구해서라고 쉽게 말합니다만, 명주님께서 보신다, 우리는 실은 명주님의자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또는, 가르침이나 성언에 대해서도, 우리는가르침에 적혀있다적혀있지 않다」「명주님의 가르침은 본래 이렇다라고 쉽게 말하는데, 우리는이미 종교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기 때문에, 가르침. 성언의자도 말할 자격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나는 명주님의 신도다.라고 당연하게 생각합니다만, 이미 우리는 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실은 세계 구세교에 속한 신도 모두는(물론 저도 포함입니다) 이미 명주님의 신도라고 불리 울 자격은 없는 것이 됩니다.

  게다가 이것은, 지금 말씀드린 명주님 성언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도 똑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특히 일본에서는 신종교는 의심의 눈으로 봅니다그 신종교인 우리가 교단 내의 다툼을 하고 있다면, 아무리 우리가우리는 바르다. 나쁜 것은 상대편이다.라고 주장한다 해도세상 사람들이 본다면양쪽 다 똑같지 않겠나?」「종교에서 다툼이라니 도대체 뭐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여러 활동이 있지요. 예술활동, 꽃꽂이 활동, 또는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들, 그것은 명주님 찬가의가여운 것은 문화의 옷을 두르고 야만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일을 하며문화의 옷을 두르고있는 척을 해도, 결국 우리의 본성은, 미행. 도청. 도촬 이라는야만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 미행. 도청. 도촬 이라는 것, 이것을 우리는,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런 행위는 명주님을 신앙하는 우리의 동료들이 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도 같은 죄를 지은 것입니다저 사람들이 했다라는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라, 아무리 문화의 옷을 입고 보통 사람들처럼 하고 있어도, 결국 우리의 본성이라는 것은, 미행. 도청. 도촬을 하는 존재가 아닐까요그런 모습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명주님께서는 구체적으로그것을 일부 사람들에게 맡기시고 그런 행위를 시키신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본성을 알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우리 마음 안에는나는 관계없다라고 마음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략 30년 전의, 3대 교주님 정화 때도, 잘 모른다, 미행. 도청. 도촬 이라는 행위와 나와는 관계없다. 라는 식으로우리는 생각하고 싶어했습니다하지만, 교단 내에서 계속 다툼을 반복해 온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누가 명주님께저는 종교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존재입니다라고 진심으로 사죄한 적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명주님 찬가에죄 많은 저의 몸 제 집안을 용서하소서. 대자대비의 크신 그 마음으로라는 것이 있습니다명주님 당신께서저의 몸 제 집안은 죄가 많다고 말씀하십니다그리고 그 죄를 신의 크신 자비의 마음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하십니다.

  우리들은, 명주님께서 그렇게 많은 죄를 범하셨을까 라고 생각하지. 게다가 명주님께서는 여기서, 명주님 자신의 죄 만이 아니라명주님 집안의 선조님에 대해서도 그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하십니다. 명주님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과 이어진 분들에 대해서도, 대표로서 사죄를 하고 계십니다.

  명주님께서 그런 자세라면, 우리는 더욱더, 세계 구세교의 우리의 선배, 선도자들이 한 일에 대해서나와는 관계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이것은 제 모습이었습니다」「싸움을 하는 그런 저의 모습 이었습니다라고, . 명주님께 사죄드려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누군가가, 그런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우리는 바르다」「우리야말로 바르다하며 재판이다 뭐다 하면서 계속 나아갈 것인가 - 그것은 확실히 그 필요성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질서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 필요성이 있다 해도, 역시 신앙자로서 신. 명주님께 사죄드려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주님께서는 최 만년에 뇌일혈의 정화를 받으신 후반복해서앞으로는 사죄가 아니라 회개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여기서 명주님께서 말씀하시는사죄회개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회개는 생명에 관한 것, 이것이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사죄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저는 명주님께서 뇌일혈의 정화를 받으신 후, 분명 생명에 관해 무언가를 느끼신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명주님께서는아 정말로 생명에 대해서 신께 진심으로 회개해야만 한다.라고 느끼셨을 꺼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교단 역사에 대해서도, 지금까지는 그냥 형식적으로 사죄해 온 분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이런 다툼을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라는 식으로.

  그렇지만, 우리는종교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면 큰일인 것입니. 그것은 이미 명주님 신도가 아니라는 것이며, 만일 명주님께서 우리와의 줄을 끊으신다면, 그것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줄을 끊으시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이것은, 사실은 죽음의 선고와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교단내의 다툼에 직접 관여하고 있든 관여하지 않았든, 그것은 명주님께너는 종교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큰 일 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고 우리는 회개해야만 합니다.

  단, 회개라는 것도, 우리는 그것을 만만하게 보고, 용서받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본래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교주님께서는 물론 명주님께서도, 모든 일에 대해서 회개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지요. 그것을 우리는 최종적으로는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된 회개로서 만만하게 여기는 점도 있습니다만, 명주님 찬가에최후의 심판의 법정으로 끌려가서 회개한들 어찌할 방법이 없으리라라는 것이 있습니다최후의 심판의 법정, 법정이라는 것은 재판소입니다그곳으로 끌려가서 그 때 회개한들, 이미 어찌할 방법이 없다이미 속수무책이다. 라는 그런 찬가입니다.

  또한심판의 불의 섬뜩함이여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해도 이미 늦었노라이것도 명주님 찬가입니다. 신의 심판의 불이 너무나도 섬뜩하, 그 때 하늘을 바라보고 신께 기도드려도 이미 늦었다는 찬가입니다.

  모두 엄한 찬가이지요. 우리는 용서받는다는 것을 전제처럼 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신께서는 어떻게 하실지, 사실은 모릅니다.

  적어도 우리는, 이 찬가에 있는 것처럼 명주님께서는 신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은 알아두어야만 합니다그래서 우리도 회개하는 것을 만만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회개합니다.라고 말씀드려도, 신께서이미 늦었다라고 하신다면, 그것이야말로 이미 끝인 것입니다심판의 불에 완전히 타버려서 멸망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들은.

  이렇듯 엄하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만, 실은 신의용서의 마음우리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큽니다.

  그래서, 그렇다고용서받는다.라고만 생각을 하게 되면, 신께서 용서한다.라고 하셔도 아무런 감동도 없지 않을까요?

  그게 아니라나는 자칫하면 불에 완전히 타버릴지도 모르는 존재이」「신께서 보신다면 용서하기 어려운 존재이다라고 생각하고그런 중에 용기를 가지고 신께회개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그것에 대해 만일 신께서너를 용서한다.라고 말씀해 주신다면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교주님께서신께서는 우리를 무죄로 해 주고 계십니다.라고 말씀해 주셔도, 어떤 감동도 없지 않습니까내가 도대체 어떤 죄를 범했지?라고 생각할 정도이지요그렇듯 우리는, 저도 포함해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자각이 너무나도 적습니다.

  하지만 사실은신께서!라고 하신다면 큰일이다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고, 그리고 그 마음으로 신 앞에 서고, 신께서너를 용서한다.」 「무죄다라고 해 주신다면, 그 기쁨이라는 것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의 입장에서는 실은용서한다.용서하지 않는다.없습니다. 지금도 잠깐 말했듯이, 신께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큰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주고 계십니다. 지금도.

  보세요. 우리는 적어도 지금 살아 있습니다.

  살아서 그리고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호흡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요이런 호흡법이 있다」「이런 식으로 호흡을 하면 좋다하며, 호흡도 인간의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후우-하고 숨을 내쉬고또 들이마십니다. 내쉬면 당연한 듯 숨을 들이마실 수 있지요.

  이 숨을 들이마실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깁니. 숨을 들이마실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숨을 내쉰 후신께서너에게 나의 생명을 주겠다.하시며, 한 숨 한숨, 매 번 매번, 우리에게 임해 주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요그래서 내쉬면, 매번 숨을 들이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다, 숨을 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앙자로서 바른 자세일까요?

숨을후우-하고 내쉬고, 그리고 들이마시지요당연한 것처럼 들이마십니다. 당연한 것처럼이것은 신께서 24시간, 우리의 호흡하나 하나, 우리가 숨을 내쉴 때마다너에게 나의 생명을 주겠다.라고 하시며 숨을 주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숨을 들이마실 수 있기 때문에.

  게다가 이것은 우리들에게만이 아닙니다. 신께서는 바른 사람에게, 바르지 않는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자신의 사랑의 숨을, 매 호흡 매 호흡 넣어 주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사랑의 크기는 인지로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사랑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명주님께서도인간의 사랑신의 사랑이 있다고 말씀하시지요. 신의 사랑은 대승애이며, 세계애이며, 인류애이며, 이타애 라고 하십니다.

  그럼 이사랑이라는 것도 우리는, 명주님께서이타애라고 말씀하시고, 세상에서도이타애라는 것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도 간단하게 내 것처럼 하고주변 사람들을 위해 뭐라도 하자그것이 명주님께서 말씀하신 이타애이다.라는 식이 되어 버리는데, 하지만 명주님께서는 한편으로는, 주위 사람에 대해서 갖는 그런 사랑인주위애, 인간의 사랑이며소승애이다아무리 강해도, 결론적으로는 악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대체로 계속 이타애, 이타애라고 해 왔습니다만우리의 존재가 신과 같은 이타의 사랑을 가질 수 있을까요?

신께서는 누구에게도 차별이 없습니다우리는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어도, 그 사람이 나에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말을 하면 바로 화가 납니다. 우리는 그 정도의 존재입니다.

  하지만 신께서는, 우리가저 사람은 정말로 이상하다라고 느끼는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이라도 차별 없이 항상 당신의 사랑과 생명을 주고 살려주고 계십니다.

  「이타애라는 것은, 타인을 이롭게 한다는 것인데, ()라는 것은, 전 인류를 말하는 것이지요그 전 인류를 평등하게 이롭게 할 정도의 사랑을,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 있는가 하면, 우리는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 있습니다하지만, 지구의 반대편에는 누군가는 자고 있습니다그 분들도 지금 신께서는 생명을 주시고 살려 주고 계십니다그 정도로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이타애, 그것을 우리는 가질 수 없는, 우리는 지금까지 사랑을 내 것처럼 하며 살아와 버린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무릇, 우리는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신께서는 살아계신다라는 말을 들어도실감이 안난다.」 「증거가 없다라고 하지요우리는 지금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지만, 이 생명이 라는 감각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의식이라든가 마음의 움직이라든가, 이런 것은 도저히 우리들은 만들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실은, 우리의 의식은 우리의 의식이 아니라, 신의 의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살아있다라고 느낍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우리 안에서 신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살아있다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살아있다라고 느끼고 있는 것 자체가신께서 계신다는 실감이며 증거입니다인간의 힘으로는 살아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살아있다, 이것이 신께서 계신다는 그 무엇보다 실감이, 증거입니다. 보세요. 지금 우리는 살아있지요그것은 신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신께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 나는 신을 믿는다.」 「나는 믿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믿는 마음믿지 않는 마음도 그것을 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절대적으로 신이십니다. 믿는 마음」「믿지 않는 마음어느 쪽이든 인간의 힘으로는 그 마음이 생겨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명주님의 1953년 찬가올해부터는 가시밭길을 뒤로 하고 번영의 길을 나아가리.

  이것은 1953년의 찬가인데, 이것은그랬었구나.라는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1953년만의 일이고, 지금의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라고 할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명주님께서 이런 찬가를 우리에게 남겨주셨다는 것은, 명주님께서는 우리에게너희들은 가시밭길을 걸어가겠는가번영의 길을 걸어가겠는가. 지금 결정하여라.라고그렇게 임해 계신 것입니다.

  지금이라 해야 할까요 오늘이지요. 오늘

  가시밭길 - 그것은 신의 사랑을 내 것으로 하여 주위와 싸우거나, 신의 의식을 나의 의식으로 하고 내가 사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다, 내가 행하고 있다고 하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히 가시밭길입니다. 모든 힘은 신께서 가지고 계시는데, 인간의 힘으로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가시밭길이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 구분구리까지 이루었다 해도 - 말은 그렇게 하지만 구분구리까지도 인간의 힘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구분구리까지 가게 하는 힘은 누가 가지고 계십니까? 신이십니다.

  이렇듯, 그 가시밭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번영의 길을 걸을 것인가? 번영, 영광, 신의 영광. 모든 것은 신의 영광입니다나의 생명도 신의 영광의 나타남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이것은 신의 영광의 나타남입니다.라는 그 번영의 길을 걸을 것인가? 오늘, 가시밭길을 택할 것인가번영의 길을 택할 것인가, 어느 쪽인지 결정 하거라. 라고 그렇게 명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오늘 너희가 신의 목소리를 듣거든, 신께 등을 돌렸을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히브리서 제315)

  「오늘 너희가 신의 목소리를 듣거든, 신께 등을 돌렸을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실은 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듣지 않았습니까? 저는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신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빛의 존재가 우리 안에 계신다.이것을 우리는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정이 좋지 않은 일은 없습니다우리는 내 힘으로 살고 싶다, 내 힘으로 이루고 싶다그리고 평가를 얻고 싶다, 덕을 얻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전에는이렇게 나쁜 일은 없다라고 생각하고, 신께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나는 내 스스로 살아간다하고, 나는 신을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하며, 오늘날까지 가시밭길을 걸어 온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지금 한 번 더 기회가 왔습니다그것은 명주님께서 교주님을 통해신은 너희들 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러니 오늘, 그 목소리를 들었다면, 이전에 우리가 신께 등을 돌렸을 때처럼 또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아니요, 나는 앞으로도 내 힘으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하는가하지 않는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목소리라는 것도, 춘계대제에서 말씀드린 명주님 찬가 감사 하도다 당신(구주)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의 몸과 혼은 힘이 늘어나도다.명주님께서도당신이라는 분의 목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그래서오늘 목소리를 듣거든라든가 감사 하도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라고 하듯이, 신의 목소리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하지요.

  분명 쉽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만, 저는 신께서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틀림없는 사실로서 신께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 주고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신께서는 우리들에게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 

  적어도 이것을 말씀해 주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아니요,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해도 좋습니다하지만 사실 오늘, 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너를 영원히 사랑한다.라는 신의 목소리를. 그것을 지금까지도 계속 들었으며 사실은 오늘도 들었습니다.

  「죄 많은 이 몸도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크고도 큰 행복도 풍부히 주시도다.라는 찬가가 있지요.

  우리는 죄가 많습니다. 죄가 많지만, 신께서는 그런 우리를 심판한다. 심판하지 않는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이미나무라지 않겠다라고 하십니다. 나무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큰 행복을 풍부히 주신다고 하십니다얼마나 큰 신의 사랑입니까? 그렇지요?

  그럼 이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행복이라 하면, 물론 물질적인 행복도 있지만, 실은 이행복이라는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

  하지만 이 세상의 생명, 이 세상의 숨은 언젠가는 없어집니다누구라도 수명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가 받고 있는 큰 행복이라는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영원한 생명이며 영원한 숨.

  우리가 아무리 죄가 많아도, 신께서는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풍부히 베푸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종교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라는 것은, 우리가 신 옆에 있을 자격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께서는 그런 우리에게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그러니 나의 영원한 생명으로 살거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행복을 손에 넣고 싶다,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신의 영원한 생명을 받고 싶다고 생각해야만 하지 않을까요? 만일 그렇게 바란다면신께서는 정말로 기뻐해 주실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바로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좋은가?합니다만, 실은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든 안하든, 이미 신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너를 사랑하고 있다」「너를 쓰겠다. 괜찮은가?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때문에 우리는이런 제가 나타난들 어떻게도 안 됩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쓰임 받고 싶습니다.라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요? 명주님께서인간의 사랑은 작다라고 하셨듯이우리가 나타난들 어떻게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통해 신께서 나타나주신다면, 이렇게 감사한 일은 없습니다.

  본래 우리는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좋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께 쓰임 받는 것 이외에는 없지 않을까요?

  신께서는, 지금도, 이 순간에도, 넘쳐나는 사랑과 힘을 가지고전 인류에게 생명과 숨을 베풀어 주고 계십니다그리고 우리 안에 언제나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그 신의 사랑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바라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요? 신의 사랑 아래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 인생을 걷고 싶습니다.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요?

  확실히 우리는종교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존재입니다게다가 교단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정말로 자각하고 회개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실은, 큰일 날 일을 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저는 무엇을 잃더라도 명주님과 맺어지길 바랍니다. 명주님을 통해 알게 된 신의 생명과 신의 사랑, 이 생명과 사랑으로 살고 싶습니다.라고 진심으로 바란다면, 우리는 종교인으로서의 자격을 한번은 (사실은 이미 몇 번이나) 상실한 존재라 해도신께서는 그것을 일절 나무라지 않으시고용서한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듯, 오늘 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라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번영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고, 그 신의 사랑으로 함께 살아갑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