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태어난다」의 진실 마사아키사마 성언 2025년 2월 3일 세계메시아교 입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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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22회 작성일 25-04-11 16:43본문
「세계메시아교 입춘제」마사아키사마 성언
2025년 2월 3일
「새롭게 태어난다」의 진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방금전 태국 세계메시아교의 차이와트 본부장(포교구장이기도 합니다만)과 키요코 부인의 결의 발표, 감사드립니다.
태국은 불교 국가인데, 오늘 메-슈사마의 성언에도 불교에 대한 것이 있었지요. 불교의 여러 승려들이 지금 메시아교를 위해 일하고 싶어한다 라고, 그렇게 메-슈사마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메-슈사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불교국가인 태국에서도 차이와트 부부 아래로 메시아교에 도움이 되고자 하여 모이는 분을 분명 메-슈사마께서는 준비해 주실꺼라 생각하는 한편, 우리는 진리를 태국에 가지고 가는 것이며, 메-슈사마께서는 불교는 멸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역시 진리에 비추어지는 저항은 있기에, 도와주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항이라는 것도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태국은 불교 이전에, 먼저 태국의 구세교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이 진리를 가져가서 그것에 비춰진 사람들이 메시아교에 모여 들면, 당연히 구세교에 있어서는 그것은 불편한 일이기 때문에, 불교라고 할까요, 주로 태국의 구세교로부터 여러 의미에서의 괴롭힘 같은 것을 두 분이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분에게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문자 그대로, 신변에 위험이 미치는 일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런 전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오늘 메-슈사마 성언은 수십 년 전의 것입니다만, 드디어 메시아의 진리를 불교권에 전하게 된 것이기에, 오늘은 그 출발의 날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가운데, 우리의 동료인 두 분이 이 신업에 쓰임받아 주십니다. 떨어져 있는 우리가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두 분을 일본에서 파견하기 때문에 우리의 헌금으로 두 분의 생활과 태국에서의 신업을 지원할 수 있으니, 여러분께 잘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반 정도 전, 차이와트 부부와 이야기할 기회를 받았습니다. 그때 차이와트씨가 여러 질문을 해 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는, 태국의 구세교 사람들은 쿄-슈사마는 소중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분들이 꽤 있지만, 역시 불교국가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있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쿄-슈사마에 대해서는 명확히 내세우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조금 목소리를 낮춰서 전해도 될까요, 그 편이 태국의 구세교 신도에게 호소하기 쉽다는 그런 내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제가 그에게 말한 것은, 아니, 그것이 약점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 약점을 포교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앞으로 가져와야 한다, 만약 그리스도가 약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가장 앞에 꺼내놔야 한다고, 그렇게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조금 목소리를 낮춰서 전달한다든가, 아니면 그것을 숨기려 하면 앞으로 계속 그렇게 될 겁니다. 일단 그 길로 들어가면(한번이라도 그렇게 하면) 계속 숨기며 가야만 하게 됩니다.
구세교의 행보는 그랬지요. 모처럼 메-슈사마께서「세계메시아교」로 나아가셨는데, 메시아라는 것을 앞에 내놓고 싶지 않다, 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는 것은 목소리를 낮추고 싶다든가, 의미적으로 메시아라는 말은 세상을 구한다는 것이니까 메시아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구세라는 말로 하면 되지 않는가 하며, 모처럼 메-슈사마께서 지어주신 세계메시아교라는 교단명을 메-슈사마 승천 후 세계구세교로 바꿨지요. 조금 숨기자 하며 바꿨습니다.
한 번 그것을 하고 나니, 다음은 종교도 숨기려고 하는 것이 되어 버렸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계속 종교를 숨기려 하며 걸어오지 않았습니까? 일본은 종교에 대한 저항이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종교색을 지우려고 해 왔습니다.
이렇게 한 번이라도 숨기거나 목소리를 낮춰서 첫발을 내디디면, 그 후에는 평생 우리가 우선하는 것은 메-슈사마의 마음이 아니라 사람들이 받아들이냐 받아들이지 않느냐가 된다, 그러니까 차이와트씨, 그것은 절대 안 된다, 오히려 가장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반대로 가장 정면으로 가져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그렇게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메-슈사마께서도 그러시지 않았나요? 일본도 기본적으로는 불교권입니다. 신도(神道)와 불교. 그 속에서 일본관음교단과 일본미륵 교회였던 것을 갑자기 세계메시아교라는 교단명으로 하시고, 게다가 메-슈사마께서는 불멸이다, 불교는 멸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 신도를 배려하면 그럴 수 없습니다. 신께서는, 이제부터는 세계메시아교로서 나아가라, 불교는 이제 멸한다고 말하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니 신이시여, 불교권인 일본에서 불멸이라고 하면 큰일나기 때문에 그만두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세계메시아교도 탄생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는 것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원래 본격적으로 종교단체로서 활동하기 전, 메-슈사마께서는 종교가 아닌 정화요법으로 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종교로서 걸어가기로 결단하셨고, 그랬더니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메-슈사마 곁을 떠났습니다. 뭐야 종교인거야 하며.
신도들이 떠나지 않도록, 신도들이 저항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 했다면 메-슈사마께서는 종교단체를 만들 필요도 없었고, 세계메시아교를 시작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받아 주는 것을 해 나아가자 라는 것이 될 뿐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는 평생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편리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아무리 메-슈사마께서 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고 해도「뭐, 그것은 옆에 놓아두자」라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숨기고 나아간 결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 진리를 숨기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어느 날 사실은 이렇다고 털어놓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 버릴 것인가?
이것은, 어차피 떠날거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짜 신도를 만들고 싶기때문에. 진짜 신도를 만드는 타이밍을 10년 뒤로, 20년 뒤로 늦출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에게 가장 약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가장 앞으로 꺼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바로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의 약점은 우리가 종교라는 점, 이것은 약점이지요. 그러니까 그걸 앞으로 내놔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것도 이것이 약점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내놔야 합니다. 그리고 비건식도 약점입니다. 왜냐하면 다들 뭐든지 먹고 싶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것도 앞에 내놔야 합니다.
내놓지 않는다면「미륵의 세상은 채식이다」라는 메-슈사마의 성언은 평생 버립시다 가 되는 것입니다. 약점이기 때문에, 냄새가 나는 것은 뚜껑을 덮으라는 느낌으로 취급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행보였습니다. 메-슈사마께서 모처럼 남겨 주신 빛나는 말씀을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는 취급을 하며 오늘날까지 우리는 와 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진짜 신도가 되는, 만드는 타이밍은 이미 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약점이라 생각되는 게 있다면 그것을 메-슈사마의 신도로서 걸어가면서 가장 정면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원래 메시아교는 그리스도교와 호응하는 단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불교권은 그만큼 우리의 가르침을 넓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브라질처럼 그리스도교권이면 또 전혀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호소해가느냐, 이것은 이것대로의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태국은 불교권이기 때문에 그만큼 포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교는 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는 것, 이것은 메-슈사마께서 75년 전 입춘에 말씀하신 일대 선언입니다.
메시아교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와 호응해서 인류를 구원한다, 서양에 그리스도가 있고 동양에 메시아가 있어, 이 양대 세력이 함께 싸워서 영원한 평화를 이룬다는 이것, 대단한 선언입니다.
우리는 흔히 지상천국건설은 메-슈사마의 비원(悲願)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이 메시아교는 그리스도교와 호응해서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이, 메-슈사마의 큰 비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 비원(大悲願)
그것을 왜일까요?
작년 연말에 재판이 끝나서 화해를 했지요. 하지만, 교단정화는 3대 쿄-슈사마 시대에도 있었는데 그때도 화해로 결말을 지었습니다. 그때는, 앞으로는 쿄-슈사마를 선두로 메-슈사마께 귀일하는 길을 나아가자는 것으로 화해했습니다.
화해하고 그 후에는 순조롭게 가는가 했더니, 결국 역시 주도권 분쟁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 흐름 속에서 쿄-슈사마라는 존재가 불편하다는 것이 나왔고, 그런 중에 8년 전 입춘, 2017년 2월 4일 구세회관에서 쿄-슈사마께서 교단의 실정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작년 연말에 화해한 것인데, 우리의 바람은 구세교내의 메-슈사마 신도끼리의 싸움은 이것으로 마침표를 찍고 싶다, 더 이상 싸움은 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8년 전부터의 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실은 이미 40년 이상 전부터의 교단 정화가 끝난 것이기도 합니다. 앞의 3대 쿄-슈사마 때 뒤죽박죽으로 끝났나 했더니 끝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꼴사나운 이야기입니다만, 집안끼리 8년간은 커녕 40년 동안 싸워 온 것으로, 이번에 이 긴 싸움에 마침표를 찍고 이제부터는 메-슈사마의 마음 한 길로 걸어가자, 메-슈사마 마음을 진정으로 실현하기 위해 걸어가자 라고, 그것이 지금 우리의 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새로운 걸음의 출발이 된 것이 이번 화해입니다. 우리의 지금까지의 40년간의 다툼에 마침표를 찍고, 메-슈사마 마음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출발이, 이번 화해였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우리의 재출발일로서 메-슈사마께서 선택하신 날짜가 언제냐면, 2024년 12월 24일입니다. 12월 24일.
이 날짜에 대해서 만약 우리가 정할 수 있다면, 예를 들면 메-슈사마께서 태어나신 12월 23일이 좋지 않을까, 아니면 최근 몇 년 교단의 제전일이기도 한 크리스마스인 25일이 좋지 않을까 하고 우리는 생각합니다만, 23일도 25일도 아닌 12월 24일이었습니다. 이 날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는 법원의 사정으로 그날이 된 것입니다.
좀 전에 저는 메-슈사마의 대 비원은 메시아교와 그리스도교가 서로 호응해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확신하고 있냐면, 이 12월 24일이라는 날짜입니다.
그것은, 메-슈사마의 생탄일은 12월 23일. 24일은, 메-슈사마께서는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중요한 날짜인 크리스마스인 25일에 한 걸음 다가갔습니다. 한편 그리스도교 쪽도 25일에서 한걸음 더 메-슈사마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12월 25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일로 알려져 있고, 12월 23일은 메-슈사마 생탄일. 서로가 한 걸음씩 다가간 가운데가 24일입니다. 12월 24일.
아니, 억지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화해를 맺는 날은 1년의 언제라도 될 수 있었습니다.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 8, 9, 10, 11 언제든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6,7년동안 계속된 재판의 끝이 딱 12월. 게다가 12월 상순도 중순도 아니고 20일도 27일도 아닌 24일입니다.
1월이든 2월이든 3월이라도 좋지 않았습니까? 12월 초순이라도 좋지 않습니까? 이 날짜, 우연인가요? 우연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1년 365일이 있는 중에, 이 8년이니 40년이니 계속된 교단정화를 이제 끝내자 하시며 메-슈사마께서 정하신 날이 딱 12월 24일입니다. 너희들은 다시 출발하라고 메-슈사마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날은 12월 24일이었습니다.
메-슈사마의 생탄으로부터 하루 그리스도의 성탄에 다가간 날. 예수님도 메-슈사마의 생탄에 하루 다가온 날.
그래서 이 날짜에 분명 메-슈사마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메시아교는 그리스도교와 호응해서 인류구제를 한다는 것이 나의 마음이다, 라는 메시지 외에는 생각할 수 없지 않습니까?
당연히 이것은 그리스도교 쪽에 밀어붙일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쪽은 특별히 메시아교와 호응하라는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메시아교 신도인 우리로서는 화해의 이 날짜에 대한 의의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날짜로 비추어 보면, 너희들이 재출발하고자 한다면 나의 바람은 메시아교와 그리스도교가 하나가 되어 인류를 구원해 가는 것이다 라는 메-슈사마의 마음은 이미 명확합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이렇게까지 메-슈사마께서 분명하게 당신의 마음을 나타내셨는데, 만약 그 마음에 따르지 않는다면 또 교단 정화는 일어나겠지요.
메-슈사마 신도를 연결시키는 것은, 그리스도교와 호응하는 것에 쓰임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고 해도, 그것은 쉽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와 호응하여 인류를 구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여기까지 메-슈사마 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 이상, 이제부터는 확실히 해 가실꺼라 생각합니다. 즉, 이 메-슈사마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이나 단체는 자연스럽게 쇠퇴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세계구세교는 비교적 평범한 단체이지만, 이 세계구세교는 쿄-슈사마를 미행·도청·도촬했습니다.
미행·도청·도촬하여 쿄-슈사마는 교의위반을 하고 있다며 쿄-슈 추대를 취소하고 쫓아내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쿄-슈사마를 쫓아냈더니 이번에는 그 쿄-슈사마를 따라 많은 신도들이 나와버려서 종교활동비를 감당할 수 없다며 이번에는 쿄-슈사마에 대해 18억엔(한화 약180억원)의 손해배상 재판을 일으켰습니다. 구세교는 쿄-슈사마께 18억엔의 손해배상 재판을 일으킨 것입니다.
자신들이 미행·도청·도촬하고 내쫓았습니다. 그랬더니 신도들이 떠나버렸습니다. 그러자 쿄-슈 오카다 요이치, 당신들 때문에 손해 본 만큼의 돈을 지불하라고, 구세교는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쿠쯔끼(능묘)도 있습니다. 하코네의 오쿠쯔끼라는 장소. 정면에 서서 바라보면 오른쪽 묘소에는 돌아가신 메-슈사마의 유해를 묻었습니다. 그 왼쪽 옆은 2대 교-슈사마의 묘소. 2대 교-슈사마의 경우는 화장을 했기 때문에 이른바 뼈라고 할까요, 재를 묻었습니다. 이것이 오쿠쯔끼라는 장소입니다. 아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물론 메-슈사마는 위대한 분이시지만, 이 세상적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오카다 가문의 배려로「세계구세교에게 있어서 크고 중요한 일이라면 자 당신들이 메-슈사마의 유해를 묻어도 됩니다」라고 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2대 교-슈사마님의 유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슈사마와 2대 교-슈사마라고 해도, 그것은 쿄-슈사마께는 조부와 조모이시기 때문에, 쿄-슈사마는 세계구세교에 대해 조부와 조모를 그곳에 묻어도 된다고 하는, 이 세상적으로 말하면 오카다 가문의 대단한 배려가 있어서 구세교는 그렇게 했는데, 세계구세교는 그 오카다 가문 그 자체를 구세교에서 쫓아냈습니다.
메-슈사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유해가 있습니다. 그것을 구세교는 「이 몸은 우리 것이다」라고 하며 유해를 오카다 가문에서 빼앗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구세교가 한 일, 하고 있는 일, 이건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아니, 여러분 이것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면 보통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단체가 여러분 가족의 죽은 아이라든지 남편이나 아버지의 몸을 빼앗고,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이 묻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인 유족에게, 당신들은 여기서 나가 달라고 합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유해 같은 것을 빼앗고, 게다가 오카다가 사람은 모두 나가달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그럼 조령제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되나요? 구세교는 조령제사가 중요하다고 하고 있지요? 그런데 쿄-슈사마께서는 못 가십니다. 조부와 조모의 공양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조령공양을 하면 그 자손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호소하고 있는데, 메-슈사마 자손인 오카다 요이치라는 인물을 이렇게 취급하여 내쫓고, 그러면서 어떻게 구세교는 조상 공양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까?
저도 지금까지 이 이야기는 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일어났고,일어나고 있습니다. 구세교가 하는 일은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 이전에 사람의 길로서의 문제입니다.
그런 단체를 메-슈사마께서 기쁘게 축복하실리 없기에, 자연히 쇠퇴해 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편, 반대로 세계메시아교가 걷는 길에 들어가고 싶다는 분들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글로리』의 브라질 순교 특별호에 실려 있는데, 브라질에서는, 통칭「메시아 관음」이라는 단체가 법인을 전부 해산하고 통째로, 산토스 본부장 아래에 있는 브라질 메시아교에 합류하려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브라질에서 제가 입신식을 했을 때도, 메시아 관음에서 많은 분들이 입신을 하셨는데, 이것 대단한 일입니다. 한 개의 다른 단체가 법인을 해산하고 메시아교에 들어온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브라질의 일입니다만, 화해 날짜로 볼 수 있듯이 이렇게까지 메-슈사마 마음이 명확한 이상, 일본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은, 우리 세계메시아교는 메-슈사마 신앙의 마지막 구원의 밧줄이자 구원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구원의 빛은 메시아의 존명에 있는 빛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구해 메시아교에 오는 일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 응, 그것은 대단한 이야기이다」라고 하는데, 거기서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지요. 메시아교는 그리스도교와 호응하는 것은 좋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지금「기도, 식, 음악」이라는 활동을 메-슈사마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이「식」이라는 것에 관해서는 메-슈사마께서「미륵의 세상은 채식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근원입니다만, 저는 그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께 마지막으로 바쳐진 유일의 공물이기 때문에, 더 이상 동물의 살과 피는 먹을 필요가 없다, 신께 바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메-슈사마께서는 미륵의 세상은 채식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고, 그렇게 저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메시아교의「식」의 실천도 예수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오늘 들은 성서「창세기」입니다만, 에덴동산에서의 신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습니다.
6일째「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온 지면 위에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를 내는 나무의 열매가 있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그것이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되리라.」(「창세기」 제1장 29절)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씨 맺는 모든 채소」이기 때문에, 곡물같은 것이네요. 「씨를 내는 나무의 열매가 있는 모든 나무」는 과일이나 견과류 같은 것이고요. 동물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제1장 28절)라고 하기 때문에, 동물은 먹지 말고 관리하라. 그리고 너희가 먹을 것은, 이것을 먹으라고 명하십니다.
여기, 에덴동산에서 신께서 사람에게 명하신 식사는 완전히 채식입니다. 채식이자 비건식.
성서의 이 뒤 이야기로는, 성서를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뒤에 아담과 이브가 뱀의 꾀임에 빠져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고, 거기서 아벨과 카인이 나왔고 그리고 노아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신께서는 인류를 멸하시려고 대홍수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이 대홍수 후에, 신께서는 인간에게「육고기를 먹어도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후의 이야기입니다.
신께서, 에덴동산에서 인류에게 허락하신 식사는 비건식입니다. 그 옛날 인류의 식사와「미륵의 세상은 채식」이라는 것은 미래의 식이기 때문에 메-슈사마께서는「인류의 미래의 식은 채식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인류가 이상세계에서 먹어야 할 식과 가장 처음 에덴동산에서 신께서 인간에게 먹도록 하신 식의 내용은 똑같습니다.
둘 다 비건식입니다.
그래서 미륵세상의 식은 에덴동산의 식이기도 합니다.
물론 진짜 천국이라는 것은 식이나 그런 것을 초월한 곳입니다만, 하지만 현계에서 사는 우리가 어떤 식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의 길로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미륵의 세상은 채식」이라든가「식」의 활동이라고 하면, 전혀 그리스도교와 관계없는 것 같습니다만, 관계없지 않고 우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바쳐진 공물이라는 것과 관계가 있으며, 게다가 그리스도교인이 성전으로 우러르는『성서』에서 에덴동산이라는 중요한 장소에서 신께서 인간에게 허가하신 것은 채식.
그래서 식의 실천 그 자체가 그리스도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도, 식, 음악」중에「음악」은, 당연히 메-슈사마께서 우리에게 할렐루야 코러스를 부르게 하심으로써 그리스도교와 호응하는 모형을 보여주셨듯이, 메시아교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노래를 많이 가지고 있으니 가능하면 그리스도교인들과 함께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식, 음악」이라고 하여 마지막「기도」라는 것에 대해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기도 그 자체라기보다는 기도의 바탕에 있는 진리라고 할까요, 그것에 관해서입니다만, 역시 그리스도교와 호응한다고 하면 그것은「새롭게 태어난다」라는 주제입니다. 「새롭게 태어난다」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
이것도 메-슈사마께서는 메시아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아 강탄이지요. 또 예수님께서도 누구나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신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그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뭔가가.
이「새롭게 태어난다」라는 것, 그리스도교인 분들은 이미 극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물과 영으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인이 되기 위한 세례인 물의 침례를 받고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간다, 그것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라고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새롭게 태어난다」라는 것은 그렇게 달콤한 것이 아닙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역시 신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와 호응하여 인류 구원한다는 것 중에서, 메-슈사마께서 남겨 주신 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의 신비를 붙잡고, 그리고 그리스도교 사람들을 눈 뜨게 해야 합니다.
새롭게 태어난다 라고 하기 때문에, 그저「물세례를 받았습니다」정도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메-슈사마 성언(「1953년 4월 8일 강화」)에도 있듯이, 메-슈사마께서는, 어머니이신 부처님과 아버지인 아미타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관음인 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당연히 부(父)적인 것과 모(母)적인 것이 하나가 되어야만 태어납니다. 아이는.
당시 메-슈사마께서는 이 일에 대해, 여러 가지 깊은 의미가 있지만, 아직 자세히 말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메-슈사마로서는 태어난 아이는 관음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최종적으로는「메시아」로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부분에 도달했지요.
부처님과 아미타의 자녀가 관음이라는 것으로부터 최종적으로는 태어난 아이는 메시아라는 부분에 가셨습니다.
당연히 이 이야기는 비유입니다. 실제로 부처님과 아미타가 메-슈사마 밖에서 결혼하여, 네 저는 관음으로 태어났습니다 가 아닙니다. 이「새롭게 태어난다」라는 것은 메-슈사마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분명 메-슈사마의 겉모습은 남성적이지만, 메-슈사마 안에는 여성적인 것이 있었기 때문에, 메-슈사마께서는 그것과 하나가 되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메-슈사마, 오늘 찬가에서도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경과 위가 엮이어 존귀한 아이가 태어났다고,그렇게 쓰여 있습니다.(「경과위-가 엮이고조화되어 존귀하-신 신의은혜품으신 아기태어나셨다」).
데구치나오 와 데구치오니사부로 사이에 나이다 라는 것도 있습니다. 부성적인 데구치 나오와 모성적인 데구치 오니사부로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자신이라고 메-슈사마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새롭게 태어난다」라는 것을 정말 신비롭습니다.
지난 달 신년제 때 저는,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너는 새롭게 태어났다」라고 들었을 때 만약「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새롭게 태어난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그렇다」라고 생각되지 않는, 거기에 격차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격차를 구원하러 온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마음의 움직임으로 가장 많은 것이「나는 아직『그렇다』라고는 생각들지 않습니다, 격차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격차를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이 마음의 움직임, 이것이 가장 많습니다.
다음으로 많은 마음의 움직임으로는, 뭔가 이 세상에서 기쁜 일이 있었을 때「나는 그 순간『그렇다』라고 생각들었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때『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조금 맛볼 수 있었다. 이것이 중요하다」라는 움직임, 이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많은 것은, 처음에 말한「그렇다」라고 좀처럼 자신은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격차의 구원의 신업을 열심히 한다는 것.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 마음의 움직임, 둘다, 이것이라면 계속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천년이 지나도 이천 년이 지나도「나는 좀처럼 그렇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격차를 구원하겠습니다.」가 되며, 또는 자신이 기분이 좋을 때 기분이 나쁠 때를 주체로 한다면, 기분이 좋을 때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 나쁠 때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면, 이것도 천년이나 이천 년이나 그대로 계속 갑니다.
아니, 확실히「새롭게 태어난다」라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실제로 구름을 잡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메-슈사마께서는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씀하셨을 때 조금은 신체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 이상은 없었습니다. 새롭게 태어났다 라는 결과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히 이것은 신비로운 일이긴 합니다만 사실입니다,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은.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냐면, 어쨌든 새롭게 태어났을 때「그렇다」라고 하는 본체는 말하자면「자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메-슈사마께서도 또 쿄-슈사마께서도 여러 번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본체는 영의 몸이지요. 신으로부터 받은 메시아라고 이름 지어진 혼이 우리의 본체입니다.
그래서「당신은 새롭게 태어났습니다」라고 들었다면 그것을 듣고 있는 나의 입장은 어떤 입장인가요? 현계에 있는, 현세의 몸의 임시 모습의 자신입니까? 만약 현세의 몸의 자신의 입장을 우선하면, 그것은 좀처럼「그렇다」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계의 자신이라는 것은 조상님의 여러 마음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본체는 메시아라는 이름지어진 영의 혼이기 때문에,「당신은 새롭게 태어났습니다」라고 들으면, 이 혼은 신 그 자체이기 때문에「맞습니다!」가 될 뿐입니다. 「맞습니다」입니다.
우리의 본체는「그렇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할까요,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신께서는「너는 이미 신이다」라고 말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우리로서는「천국에 있는 영의 몸이 나의 본체이기 때문에, 그럼 나는 그 천국에 되돌아가 그 몸과 하나가 되어『그렇다』라고 말하겠습니다.」라는 것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면 이야기는 간단하지요.
간단합니다. 「천국에 내 본체가 있네요. 되돌아가겠습니다. 나의 본체인 신의『그렇다』와 하나가 되겠습니다」라면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분명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간단합니다, 간단하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부분은 남녀의 문제입니다. 남녀의 문제. 왜냐하면 자신 혼자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하나가 되어야만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표현도 있으며, 메-슈사마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말을 사용하셔서, 부성과 모성이라는 표현을 주체로 하십니다. 성서에서는「남녀가 한 몸이 된다」라고 하는 것처럼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표현을 주체로 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아이의 입장을 주체로 한다면, 부성과 모성이라는 표현이 될 것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라는 표현이 되겠지요. 둘 다 같은 것입니다만.
그렇듯 우리의 안쪽에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메-슈사마, 갑자기 어디선가 여자를 데려와서「새롭게 태어났다」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은 메-슈사마 안에 모성적인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롭게 태어날 수 없다면, 유일하게 남은 것은 이것뿐입니다. 남녀의 문제.
왜냐하면 에덴동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이브가 뱀의 꾀임으로 아담에게 그것을 전달했고, 그것이 결국 문제가 되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원죄라고 해도, 이것은 남녀 간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원죄를 극복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지요. 원죄라는 죄를 극복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의 피에는 에덴동산에서 남녀관계나 부성과 모성의 관계에서 어긋나 있던 것을 복원해 주시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 갑자기 어려워지지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요. 그래서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이것은 어려운 것이다」라는 것이 작동합니다. 지금 우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어려운 이야기다」라고.
그런데 전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있지 않습니까? 「새롭게 태어난다」고 해도 인류의 삶,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까 세속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이 세상에는 부모 자식 관계도 있고 부부 관계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원만하게 가기 위해서는 부모 자식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부부사이가 좋지 않으면, 절대 그 가족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아니, 저는 이혼 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가족이 하나로 나아가려 한다면, 아무리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강한 유대감이 있어도 부부사이가 일치하지 않으면, 그 가족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부사이가 일치하면 그 부부의 슬하에 있는 자녀는 이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그것을 극복할 힘이 생깁니다. 그런데 부부가 싸우면 그 아이가 어려움을 극복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정도로 이 남녀간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우리 생활에 있어서.
그러니까 남녀간의 문제라든지, 부부간의 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이 세상에서 있지요. 그런 것을 이 세상에서 맛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은 그곳에 신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부부 사이의 어긋남을 내가 시정해 주지 않았는가」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길 중에, 우리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것입니다. 남녀간의 문제. 뭐,아버지와 어머니의 문제이지요.
그런데 그것은 자신 안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남성이라면 영의 쪽에는 여성, 이 세상에서 여성이라면 영의 쪽에는 남성이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단지「세례 받았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겠습니다」가 아닙니다.
천국에는 우리의 반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반쪽을 찾지요. 열심히 연애하여 자신의 반쪽을 찾지 않습니까?
아니, 그것은 말이죠, 지상에서의 표현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남성인데 여성적인 요소가 강하게 나오는 분도 계시고, 또 여성인데 남성적인 것이 강하게 나오는 분도 계십니다. 당연히 나옵니다. 왜냐하면 안쪽에 반대의 성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안에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 계시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분들을 만나면「내 안에도 여성적인 것이나 남성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대체로 심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남자다 나는 여자다 라고 하고, 그것을 믿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심판하고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마 반쪽이 내 안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지상에서 열심히 반쪽을 찾고 있듯이, 또 찾은 것처럼, 영의 세계에도 그 반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지상의 반쪽은 자신의 말을 들어 주지 않거나 하지요.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서 뭔가 변해 버렸다든가(일동 웃음).
하지만 우리 영의 반쪽은, 우리가 바라고 바라는 존재입니다. 우리들은 계속 반쪽과의 만남을 바라지 않았습니까? 사춘기가 되면 바라고 또 바랍니다. 이성과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 영과 관계가 있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연애는 지상만의 일인가요? 메-슈사마께서도 신과의 연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식으로 결혼한다고 하면, 교회에 목사님이 있고, 한 쌍의 남녀가 목사님 앞에 섭니다.
지금 우리의 상태라는 것은「지상」이라는 교회 밖 같은 곳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상태. 하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는 목사님이신 신과 우리의 반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아름다운 교회에서 기다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20대도 지나고, 30대도 지나 내 미모를 잃어버려 이제 연애는 못한다」가 아닙니다.(일동웃음) 이런 비유를 지금 제 자신이 좀 즐기고 있습니다만.
하지만 천국으로 돌아갑니다 라는 것으로 그 아름다운 교회 안에 들어가면, 거기에는 자신의 반쪽이 기다려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남성이라면 그 교회의 문을 열었더니 아름다운 여성이 기다려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식 때 서로 엄청 예쁘게 꾸미지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아름다운 존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그래서 그 반쪽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겨서, 남녀 둘이서 신께 돌아왔습니다,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혼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신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 하면「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받아들이느냐?」고 물어보십니다. 그에 대해 여러분은「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만약 그 상황이 온다면,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둘이서 그렇게 신께 말씀드리면, 신께서는「그렇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너는 새롭게 태어났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슈사마께 일어난 일입니다. 이 일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부(父)적인 것과 모(母)적인 것이 하나가 됐기 때문에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는 것은 메-슈사마께서는 영의 세계인 천국에 가셔서 당신 안에 있는 모성적인 것, 여성적인 것과 하나가 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연애를 하는 기쁨은 확실히 큽니다만,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기쁨이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영의 반쪽이 있는 곳, 천국이 오늘 배독한「요한계시록」(제21장1절~8절)에도 있었듯이, 새로운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며 이 새로운 예루살렘은 이미 우리 안에 세워졌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우리의 반쪽이 기다리는 아름다운 교회가 이미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새 예루살렘인 교회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2절)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다 이루었노라」(6절)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그 새로운 예루살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반쪽과 만나고, 신께서 계시고 그곳에서 남녀 하나가 되어 새롭게 태어난다는, 인류에게 있어서의 최고의 행복을 이룰 수 있는 장소인 새로운 예루살렘, 천국이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예루살렘을 지상에 나타내려 하는 것이 메-슈사마의 성지입니다.
메-슈사마의 성지의 활동이란 것은 (「1952년 10월 18일 강화」), 동쪽에서 계속 서쪽으로 갑니다. 먼저 도쿄의 하시바. 거기에서 계속해서 서쪽으로 나아가 하코네, 아타미, 교토, 그리고 거기에서 더 서쪽으로 가면 이번에는 큐슈. 큐슈에서 중국(국명)으로 가고, 마지막은 예루살렘. 가장 서쪽 끝인 예루살렘.
거기에 도달하면 거기서부터 진짜 세계의 지상 천국이 시작된다, 세계가 통일된다고 그렇게 메-슈사마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메-슈사마 찬가의 첫 번째. 「세상을이긴 메시아는아무런 거침이없이 서쪽의도성으로 들어가실좋은때」. 이「서쪽의 도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계속 서쪽으로 나아가면 마지막에 세상을 이긴 메시아가 거침없이 서쪽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입장했다는 것을 노래한 찬가이지요. 「서쪽의 도성」.
오늘 이사장님께서 발표하신 세계메시아교 성지의 장소는 어디인가요? 못 들은 분도 계실지도 모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 이 장소는 니시노미야(西宮)시입니다. 효고현 니시노미야,「니시노미야(西宮)」「서쪽의 궁」입니다.
아니, 억지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것, 저것, 이 결론을 가지고「니시노미야(西宮)에서 찾자」가 아니기 때문에(일동웃음). 지금 제가 하는 말을 먼저 생각하고, 그리고 나서「좋아, 이사장님. 니시노미야에서 찾아봅시다」가 아닙니다.(일동웃음).
그렇지 않고, 이것은 전국의 땅을 찾다가 우연히 이렇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교토의 서쪽으로 가야 한다든가 그런 것이 아닌, 전국을 찾아 최종적으로 메-슈사마께서 선정하신 장소가 니시노미야(西宮)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12월 24일은 우연이다, 우연히 메-슈사마의 생탄일과 예수님의 성탄의 중간의 날에 화해했다, 이 날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전국의 여러 시 중에서 우연히 니시노미야 라는 장소가 되었다, 이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이런 것들은 우연이 아닙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는 그럼, 앞으로 정말로 큐슈나 중국, 혹은 메-슈사마께서 말씀하신 몽골이라든지, 그런 곳에 성지를 지어가고, 그래서 더 서쪽으로 나아가 예루살렘까지 도달하여, 그것으로 비로소 세계가 통일되는 것이다, 지상천국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몇 천 년이나 걸립니다.
하지만 메-슈사마께서는 이미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지상천국의 시작」이라는 것이 이미 너희 안에 있고, 너희는 이미 예루살렘에 도달했다, 그것을 받아들여라, 서쪽의 도성인 예루살렘, 새로운 예루살렘, 하늘의 예루살렘은 이미 너희 안에 있으니 그것을 받아들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오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토에서 더 서쪽으로 나아가 실은 이미 예루살렘까지 도달한 상징으로서, 이 니시노미야(西宮)라는 장소를 메-슈사마께서 선택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사명은 큽니다.
이것 교토 동쪽이면 전혀 관계없었습니다. 하지만 교토에서 서쪽의 「니시노미야」시이지요? 그런데 메-슈사마께서는「서쪽의 도성」은 예루살렘이라고 말씀하시지요? 메-슈사마의 마음은 확실합니다. 세상을 이긴 메시아가 거침없이 서쪽의 도성에 들어갈 좋은 때가 왔다 –이것이 지금입니다. 지금,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실은,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야기, 조금 전의 메-슈사마 찬가를 오래 전에 배독했을 때 바로 믿었어야 했는데, 그것을 믿지 않고 40년이나 걸려서 싸우고, 예수 그리스도와는 관계없다, 메시아와는 관계가 없다, 그리스도교와 호응 같은 것 하고 싶지 않다, 종교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한심스러운 우리에게 메-슈사마께서 12월 24일이라는 날짜와 또 니시노미야(西宮)라는 장소를 준비하시고, 그리고 지금「이래도 아직 나를 받아들이지 않겠는가?」「우연이라고 계속 말할건가?」「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겠는가?」「예루살렘이나 최후의 심판 그런 말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너희는 앞으로도 계속 우연이라고 말하며 계속 살아갈 것인가?」라고 하시며, 이렇게 확실히 알 수 있는 형태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메-슈사마께서는.
왜냐하면「니시노미야」라는 음 만이 아닙니다. 바로 서쪽의 도성인「니시노미야(西宮)」라고 한자로 씁니다. 메-슈사마께서 보신다면 이래도 너희는 아직 우연이라고 하겠는가, 하십니다.
메-슈사마의 마음은 이미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할까요, 분명히 하고 계셨습니다. 분명히 하셨음에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 메-슈사마께서는 이렇게 알기 쉬운 형태로 12월 24일이라는 날짜와 니시노미야(西宮)시라는 곳을 택하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고 계시며, 너희는 어떻게든 내 마음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라 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쪽에 이미 그런 멋진 세계가 있습니다. 있으며, 그리고 우리의 반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바라는, 남성이면 여성, 여성이면 남성이라는 존재가 기다려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메-슈사마, 이 일에 대해서 몇 십 년이나 전에, 지금은 자세히 말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것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신비로운 메-슈사마의 성언의 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녀관계 같은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미 세워진 새로운 예루살렘의 상징으로서의 메시아 성당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 성당에 왔을 때, 실은 내 안에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고, 그 안에 있는 나의 반쪽인 또 하나의 혼과 만나고,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 신의 자식이 된다는 우리의 운명을 생각해 낼 수 있기 위한 메시아 성당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는, 메-슈사마께서 승천 전년에 메시아로서 새롭게 태어나신다고 말씀하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우리는 몇십 년 동안 그것을 건너 뛰고 무시해 오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쿄-슈사마께서 일어나주시고, 우리는 인도되고 인도되고 인도되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1954년의 4월 19일이랄까, 메-슈사마께서 메시아 강탄을 발표하신 6월 5일이네요, 거기서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로 다시 돌아가서, 메-슈사마께서 진정으로 이루고자 하셨던 이 신업을 맡고 있는 것이 여러분인 동시에, 그 신업에 쓰임받는 것이 「메-슈사마 신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전혀 메-슈사마 마음과 관계없는 일을 해 나갈 뿐이니까요.
메-슈사마께서 세계메시아교 개교를 하시고 75년째 되는 오늘, 쿄-슈사마께서 일어서신 지 8주년인 오늘, 그리고 또 세계메시아교가 부활한 지 5주년인 오늘, 메시아 성당의 건설 예정지가 발표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메-슈사마께서 지금 우리에게 맡기려 하시는 이 큰 사명에 전력으로 쓰임받으라는 것이기도 하고, 진정한 구원의 복음, 진정한 기쁨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가라는 출발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메-슈사마 찬가의 마지막은「때는지-금 기원말이되었다 새-로-운 기원에시작되는 지-상-천-국」. 그러니까 이것은 오늘입니다. 지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메-슈사마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시는 이 말씀에 힘을 모아 어떻게든 보답하고, 메시아 성당을 건설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과 빛과 구원과 희망을 나누어 주는 길(새롭게 태어나는 길입니다), 이 길을 함께 걸어가고자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